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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hms Jun 20. 2021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의적 답변.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5번

Shostakovich - Symphony No.5 in d minor Op.47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5번


매일 밤, 소련의 한 예술가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발걸음에 귀를 기울이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사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짧은 비명의 소리를 내지르기도 전에 빠르고 쉽게 목숨이 사라졌던 터라, 그는 언제 자신이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에 매 순간을 지옥 속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거의 자살할 지경까지 갔다. 위기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다른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공포에 사로 잡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었다. 내 과거는 줄이 죽죽 그어져 지워져 버렸고, 내 작품과 내 능력은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미래도 그보다 전혀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사라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고 그 길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나는 무슨 맛있는 음식인양 그 가능성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 9. 25. - 1975. 8. 9.) / 출처. wikipedia

 

 1934년, 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불륜, 살인, 자살 등 비극적인 요소와 풍자와 음란한 내용이 담긴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소련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 작품에 대해 당대 소련의 지도자였던 ‘스탈린’은 친히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를 관람하러 등장했습니다. 하필이면 그의 자리는 금관악기와 타악기 바로 윗자리였고, 하필이면 그날따라 음악은 더 시끄럽게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연주 도중 스탈린은 연주회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한 사설이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음악이 아닌 혼돈’. 이 것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저격하는 글로, 러시아 국민과 그들의 숭고한 사회주의 열망 앞에서 오물을 갖고 농탕질을 한 쇼스타코비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주 뒤, 그가 작곡한 발레 <맑은 시내>의 음악에 대해서도 혹평이 이어지기 시작하였죠. 


『프라우다』에 실린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혹평. / 출처. russellger

 
 국가의 주목을 받았던 예술가가 하루아침에 범죄자라니. 연이은 혹평에 쇼스타코비치는 사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염세주의 성격의 <교향곡 4번>의 초연을 취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교향곡 4번>까지 연주를 하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세상에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소련은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1934년 12월, 스탈린의 후계자로 알려진 ‘세르게이 키로프’가 암살되었고, 이에 비밀경찰들은 스탈린의 정책과 다른 주장을 펼치는 '트로츠키 파'의 학생이 키로프를 암살한 것이라 발표함과 동시에 검열과 숙청을 시작하였죠. 사실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스탈린은 의도적으로 키로프의 암살을 지시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스탈린은 자신의 눈에 띄는 모두를 없애기 시작하였고, 1939년까지 대규모의 숙청을 이어나갔습니다. 사상자만 2,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 당시를 생존자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회상했습니다. 


레닌(왼쪽사진, 좌)의 뒤를 이은 스탈린(우). 그의 '피의 숙청'은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냈다. / 출처. wikipedia



 1937년, 4월 쇼스타코비치는 새로운 교향곡 5번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곡이 초연되기 며칠 전 한 기자는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의적 답변'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새로운 교향곡의 발표를 사람들에게 알렸죠. 관객들은 한순간에 범죄자가 된 예술가의 새로운 교향곡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두들 관심을 모았죠. 


 음악은 강한 저항으로 나타나는 어두운 음향의 1악장과 기묘하고 풍자적인 2악장 깊은 슬픔의 3악장을 지나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풍성한 팡파르와 끊임없이 질주하는 현악기의 음향을 통해 찬란한 승리의 결말을 맞게 됩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이 음악에 대해 사람들은 뜨거운 발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이 작품은 1시간이나 넘도록 박수를 받았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초연을 지휘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좌)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우) 


 권력층들은 이 작품의 고통과 비극을 지나 승리감에 도달하는 것에 주목하며, 이 작품의 각 악장은 '소비에트적인 인격의 형성'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낙관적인 비극'이라 불리는 이 음악으로 쇼스타코비치는 다시 주목받는 음악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연에 참석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거울같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만일 그가 말이나 언어로 이를 표현했더라면 당장 숙청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은 추상적인 예술이다. 특히 바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당시 소련 당국은 완전한 바보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없었단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라는 이상적인 이론 속에서 고통을 당하던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음악의 추상성이 더욱 생생한 현실을 묘사해 주게 된 것이다.”


 초연에 참석한 또 다른 음악가는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짐작도 못할 거예요. 당신이 지옥 한가운데 있는데, 주변의 예술이란 것들은 텅 빈 미소를 지으며 여기가 천국이라고 속삭이죠. 그때 불현듯 '아니야, 우리는 고통받고 있어, 그것도 아주 심하게 고통받고 있다고!'라고 외치는 음악을 만난 거예요. 당신의 말을 들어주고 당신을 대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기뻐서 울고 싶어지는 거예요." *

초연 직후, 이 곡에 대한 반응에 대해 쇼스타코비치는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의적 답변이라고 하니 매우 기쁘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쇼스타코비치는 이 교향곡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앞부분의 암울한 부분은 바로 스탈린 치하에 짓눌린 민중을 나타낸다.’

‘무슨 기뻐 날뛸 일이 있다고 환희에 찬 피날레를 작곡한다는 걸까?’

 쇼스타코비치는 소비에트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창의적인 답변을 아슬아슬하게 내놓았습니다. 바보들만이 듣고 싶은 것들을 들었을 뿐입니다.  


https://youtu.be/7uXKoXlwuzA

임헌정 지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youtu.be/cg0M4LzEITQ

다비트 아프캄 지휘,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https://youtu.be/gg29L7gsyug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 지휘,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참고 문헌 : <증언> ,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시대의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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