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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hms Jun 19. 2021

세르게이, 나 실은 권총으로 자살했어.

프로코피예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Prokofiev - Piano Concerto No.2 in G minor, Op.16
프로코피예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1913년 4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세르게이, 당신에게 최근 소식을 전해 주려고 이 편지를 쓰네. 나 실은 권총으로 자살했어. 너무 속상해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길.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럼 안녕. 막스.”

 새로운 협주곡을 완성하기 직전,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프로코피예프는 큰 슬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의 마지막을 완성하여 자신의 친구에게 바쳤습니다. 바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베토벤과 쇼팽의 피아노 음악을 연주하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프로코피예프는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습니다. 그는 5살부터 작곡을 시작하고, 8살부터 오페라를 작곡하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죠. 또한 그의 훌륭한 피아노 연주에 언론들은 그를 ‘무서운 아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13살에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한 프로코피예프는 작곡과 피아노를 중점적으로 공부했습니다. 10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학년을 대상으로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가리는 ‘안톤 루빈스타인’ 대회에서 프로코피예프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습니다. 1등 상을 수여받은 프로코피예프는 부상으로 그랜드 피아노를 받으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프로코피예프. / 출처. Classic FM, Pinterest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던 음악원의 재학 시절, 프로코피예프는 동급생 ‘막시밀리안 
슈미트호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음악 외에도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막시밀리안은 프로코피예프에게 ‘쇼펜하우어’를 비롯한 서구의 철학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주며 프로코피예프에게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었죠. 프로코피예프는 누나에게 ‘슈미트호프는 나의 절반’이라 언급할 정도로 막시밀리안과의 관계를 굉장히 소중히 여겼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초연을 마친 후, 프로코피예프는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음표를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13년 4월, 작곡에 한창 몰두할 무렵 프로코피예프는 막시밀리안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자살을 암시하는 그의 편지에 크게 놀란 프로코피예프는 막시밀리안이 보낸 주소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핀란드에 도착한 프로코피예프는 이곳저곳을 뒤져가며 막시밀리안을 찾아 헤맸습니다. 결국 차가운 시신의 막시밀리안을 발견한 프로코피예프는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Édouard_Manet - <Le_Suicidé> / 출처. wikiart


 막시밀리안의 죽음으로 슬픔과 충격에 빠졌지만, 프로코피예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친구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였죠. 자신의 연주로 세상에 선보인 이 곡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대부분이 욕이었죠.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한 쌍의 부부는 연주 도중 자리에 일어나 연주회장 떠나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음악은 우리를 미쳐 버리게 할 거야, 도대체 우릴 놀리는 거야?



 한 언론은 불협화음의 연속이 가득한 음악에 “이런 미래파의 음악 같은 건 악마에게나 줘 버려. 우리들은 즐거움을 찾으러 왔어. 집에 있는 고양이도 이런 음악은 만들 수 있을 거야.”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관객들과 언론들은 이 음악에 혹평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몇몇 비평가와 예술가들은 이 음악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1914년 프로코피예프가 연주하는 이 협주곡을 듣게 된 러시아 발레단의 총책임자인 ‘디아길레프’는 프로코피예프에게 ‘발레 뤼스’를 위한 작품을 의뢰했습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Sergeyevich Prokofiev) /출처. Houston Symphony


 ‘러시아의 리스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프로코피예프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미국의 언론에서는 그를 ‘강철의 손가락과 손목’이라 부르기도 하였죠. 그의 음악은 틀린 음처럼 들리는 불협화음과 반음계적 색채, 예상할 수 없는 조성과 화음의 진행, 넓은 음악과 거대한 울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리듬과 쿵쾅쿵쾅 연주하는 피아노의 타악기적 사용이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어렵고 어지러운 기교와 음악 속에서 깊은 서정성이 나타나기도 하죠.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기교적인 난제가 가득한 작품입니다. 피아노의 활용을 극대화한 작품에는 불협화음의 음악과 섬세한 감정 표현이 가득 담겨 연주자들은 어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주로 악장의 마지막 부분에 독주자의 기교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카덴차’가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 곡의 1악장은 제시부가 끝나자마자 ‘카덴차’로 악장의 대부분을 이어나갑니다. 우수와 고뇌의 음악은 점차 증폭되어 깊은 감정의 요동까지 치닫게 됩니다. 이에 사람들은 막시밀리안의 죽음에 대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죠.   


 끊임없이 빠르게 표현되는 기계적인 리듬의 표현이 나타나는 2악장, 무거운 발걸음 같은 관현악의 저음과 극적인 표현이 나타나는 3악장, 반복되는 론도 형식을 갖고 있는 거칠고 힘찬 4악장에서는 피아노의 강렬한 타악기적인 모습을 통해 화려한 결말에 치닫게 됩니다. 


 젊은 날, 가장 순수했던 날을 함께 보낸,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았던 친구의 죽음은 프로코피예프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그의 마음을 돌아보면 1악장의 길고 깊은 호흡이 더 어렵고 가슴 아프게 들려올 거라 생각됩니다. 


https://youtu.be/PyqJW6lVaWY

피아니스트 유자왕,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https://youtu.be/eGQZxPXTT3M

피아니스트 조성진, 2019 BBC Proms

https://youtu.be/XHmpsJN4oOk

피아니스트 손열음,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https://youtu.be/V55LkRdE5gM

피아니스트 김다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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