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뇌의 존재 이유
뇌는 행복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뇌과학 책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뇌는 행복이나 평화를 위해 설계된 기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진화해온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해지고, 스트레스를 느끼고, 때로는 위협을 회피하기도 하는 이유도 결국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의 일부였던 셈이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 뇌의 진화 속도는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수십만 년 동안 사냥하고 도망치며 적응해온 뇌가 갑자기 정적인 공간에 앉아 이메일을 답장하고 스크롤을 내리는 시대를 살아야 하게 된 거죠. 이 괴리 속에서 뇌는 혼란을 겪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다양한 ‘마음의 문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뇌는 ‘더 잘 행동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뇌는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정보를 취합하고, 그에 대한 최선의 반응(=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생각, 상상, 계획, 회상 같은 모든 정신 활동은 사실 모두 더 잘 움직이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입니다. 저명한 신경과학자 로돌프 리나스는 “생각이란 내면화된 움직임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즉, 뇌는 행동을 예행연습하기 위해, 혹은 행동 전에 안전성을 검토하기 위해 ‘생각’이라는 도구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뇌의 핵심 전략: 예측
이 행동 중심 뇌에서 가장 중요한 작동 원리는 바로 ‘예측’입니다. 뇌는 끊임없이 세상을 예측합니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내부 모델’을 만들고, 지금 이 순간의 자극을 그 모델에 대입해 상황을 이해하려 하죠. 예측이 맞으면 뇌는 안정감을 느끼고, 예측이 틀리면 뇌는 그 오차(Prediction Error)를 수정하며 모델을 업데이트합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분석하지 않아도 되고, 낯선 상황에도 빠르게 반응할 수 있어 생존 확률이 높아집니다.
도파민은 ‘기대’에서 비롯됩니다
예측과 관련된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도파민입니다. 흔히 도파민을 ‘쾌락의 호르몬’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도파민은 기대와 동기를 조절하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특히 도파민은 보상이 예상될 때, 즉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하는 순간에 가장 강하게 분비됩니다. 그런데 그 보상이 기대에 못 미쳤다면? 다음번에는 도파민 분비가 줄어듭니다. 반대로 기대하지 않았던 보상이 주어진다면, 도파민은 더 많이 분비되고 그 행동에 다시 끌리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보상 예측 오류(Reward Prediction Error)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극에 익숙해지면 금방 흥미를 잃고, 새로운 일을 찾게 되는 경향이 생기는 거죠. 특히 도파민 시스템이 민감한 사람일수록 더 강한 자극, 더 빠른 보상, 더 새로운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이 작동 원리가 현대 사회에서 문제를 낳습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겪는 많은 감정과 마음의 문제는, ‘나의 성격 탓’도, ‘의지 부족’ 탓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뇌의 생존 전략이 시대의 속도와 충돌하면서 생긴 현상에 더 가깝습니다. 지나친 예측은 걱정이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두려워하다 보면 회피가 습관이 됩니다. 스트레스는 본래 낯선 환경에 대비하기 위한 반응이지만, 지속되면 몸과 마음 모두를 해치게 됩니다. 뇌는 행동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가만히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면 뇌는 점점 위축되고 무기력에 빠집니다. 도파민은 활력을 주는 시스템이지만, 현대 사회의 과잉 자극 속에서는 금세 지루함 → 자극 추구 →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의 작동 원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의 뇌가 세상과 충돌한 방식에 있다.” 이 관점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는 대신, 그 감정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틀을 얻게 됩니다. 뇌는 생각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뇌는 더 잘 ‘행동’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를 위한 도구로서, 상상하고, 회상하고, 계획하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그 도구들이 무너지거나 과잉 작동할 때, 우리는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다르게 질문해보세요. “내가 지금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그 질문의 저편에는 언제나, 뇌의 오래된 작동 원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다음 편에서는, 뇌의 주요 구조(편도체, 전전두피질 등)를 쉽고 따뜻한 언어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뇌과학 책이나 강연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나보고 싶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