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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원나잇 스탠드

이토록 성이 개방적인 요즈음에, 원나잇스탠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조차 촌스럽다 할지 모르겠으나, 마치 모태솔로와 동급 취급을 받기까지 하는 곳곳에 숨어있는 원나잇스탠드 무경험자들을 위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처음 보는 사람과의 하룻밤 정사, 원나잇스탠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남녀관계의 고민을 들어주는 인기 방송에서 사연이 나온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어쩌다 섹스를 했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없어요. 어쩌죠? 클럽에서 눈이 맞아 MT를 갔는데 알고 보니 상사의 여자친구였어요. 어쩌죠? 핵심은 문제해결이지, 처음 보는 사람과 잤네 어쩌네 하는 판단 따위는 있지도 않다. 심지어 진행자들은 그 설레고 낯선 경험에 감정이입하며 부러워한다.


원나잇스탠드(One-night stand)라는 말은 19세기 중반 이후, 극단이나 공연단이 순회공연을 하며,마을의 인구수가 적어서 단 하루만 하는 공연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다. 하룻밤 정사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20세기. 이제는 일회성 공연이 아니라 일회성 섹스의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는 나이트나 클럽, 여행지 등에서 즉석만남을 통해 만난 이성과 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범주를 넓힌다면 단란주점, 원조교제 등의 금전적 관계,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화상채팅이나 인터넷 카페를 통한 만남, 소개팅이나 미팅을 통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대놓고 얘기하든 암묵적이든 서로 동의 하에 육체적 관계만 맺고 쿨하게 뒤돌아보지 않는 것. 


여자후배 K는 대학생 초반에는 술 두 잔 마시면 뻗는 순진한 여대생이었다. K는 20대 초반 한 남자를 정말 사랑했고 3년 동안 시달리다가 일방적으로 까이더니, 그 이후부터 갑자기 자유분방한 성생활의 사만다가 되어, 서울 시내 나이트는 다 꿰고 있는 소위 나이트 죽순이가 되었다. 주말에 나이트에 가서 매번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이 삶의 큰 활력소였던 그녀. 감정적인 관계 따위는 구질구질하다고 말하며, 수많은 남자들을 통해 다양하고 왕성한 성생활을 즐겼다. 최고의 오르가즘도 원나잇스탠드하면서 느꼈다나 어쨌다나. 마치 남자와 섹스의 전문가가 된 듯 한 그녀를 보면서 난 속으로 비판 하면서도 조금은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어째든 그녀는 놀랍게도 30대 초반까지도 라이프스타일의 소신을 보여주다가 원나잇스탠드를 했던 남자 중 한 명과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 둘은 3년 전에 결혼해서 아주 잘 살고 있다. 원나잇스탠드 하다가 인연을 만난 건지 속궁합이 너무 좋아 잘 이어진건지는 몰라도 그때 난 생각했다. “그래…무엇이든 꾸준히 해야 해”    


며칠 전 아는 남동생 S군(29세)이 논현동 7080 클럽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본인과 친구 둘이 술을 마시며 기웃거리는데 옆 테이블에 다소 원숙해 보이는 여자 둘이 눈빛을 보내온다. 어차피 이 날은 원나잇스탠드를 작정하고 나온 날인지라 예쁘고 도도한 여자들보다는 성숙미 넘치고 마인드 오픈된 여자들이 타깃. 남자 둘, 여자 둘 짝도 맞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 술을 한잔 더했는데 알고 보니 이 누나들. 71년생(45세)이란다. 같이 있던 친구 놈이 얘기를 듣자마자 몸이 안 좋다며 줄행랑을 쳤다. 젠장. 그때 둘 중 맘에 드는 누나 A가 자기네 집으로 가서 한잔 더 하잖다. 그래 뭐 한참 누나면 어때 눈 질끈 감고 갈 데까지 가보자. S군은 누나들을 따라 집으로 갔고, 누나 A와 누나 B는 같은 오피스텔에 산다는 얘길 들었다. 셋이 누나 A집에서 양주를 좀 마시다가 누나 A의 침대로 들어갔고 누나 A와 뜨거운 밤을 보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원나잇스탠드 스토리. 다음날 눈을 떴는데 옆에 누워있던 건 누나 B. 헉 대체 어제 그 양주에 뭐가 들어있었던 거지…자타공인 밤의 황제로 불리우던 S는 소위 ‘서클브레드’를 당한 충격에 바닥에 널부러진 CK팬티를 허겁지겁 주워 입고,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 들러 에이즈 검사를 했다고 한다.   


온전히 육체만을 교류하는 원나잇스탠드를 통한 결론은 없다.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K양과 S군의 전혀 다른 상황전개처럼 말이다.


“원나잇스탠드라고 다 같은 건 아니야. 나는 돈을 주고 여자랑 자는 것과는 엄연히 별개라고 생각해. 내가 여자랑 자고 싶은데 성 매매는 하기 싫다면 클럽이나 나이트를 가서 여자를 꼬시거든. 술을 사준다거나 예쁘다고 칭찬을 한다거나 하면서 말이야. 적어도 여자랑 섹스를 하기 위한 시간. 에너지 등의 노력은 쏟는다는 거야. 그게 불법은 아니잖아?”


“이건 법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도덕에 대한 얘기지. 배고프면 컵라면을 사 먹듯 인스턴트식의 섹스를 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지. 정신적 관계없이 그저 성욕만 해결하는 행위는 금전 관계가 있든 없든 법을 떠나 도덕적인 부분에서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도덕이 아니라 가치관에 대한 얘기란 말이야. 양심에 가책을 느낄만한 행위를 한적이 없고 동일한 욕구를 가진 성인 여성과 합의하에 본능을 충족시키는 건데 그게 양심의 가책을 느낄만한 일은 아니잖아?” 


빠르게 개방적으로 변화하는 성에 대한 인식과 다양해진 성담론 속에서 원나잇스탠드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쉬쉬하던 성이 개방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원나잇스탠드가 대세이며, 트렌드이다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감정적인 소모 없는 하룻밤 섹스는 세상이 개방적으로 바뀌었고 젊은이들의 성의식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흥분이 없고 설렘이 없어서 때문 아닐까. 깊은 열정과 사랑을 찾기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서로 지지고 볶는 구질구질한 수고보다는 하룻밤 육체적 본능이라도 채우고 싶어하는 영악하면서도 고독한 삶을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설레는 하룻밤 정사를 꿈꾸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구질구질하지만 진짜 사랑을 꿈꾸는 이중성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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