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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여자들의 우정

                                                                                                                                                                                                                                                                                                                 

28세 삼순이는 고등학교때부터 친하던 친구 4명이 있었다.

풋풋한 시절부터 힘들었던 고3시절까지 함께 했던 터라 

그들 5명의 우정은 끈끈했다.

그러나 각자 다른 대학을 하게 되었고 틈틈히 만나기는 했지만 

만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먹성좋고 똑똑한 <정희>는 명문대에 들어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직장으로 들어간 구청에서 만남 남자와 연애를 하느라 바쁘다.

보이시하고 잘 웃는 <은경>은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에 들어가 

서울근교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밤낮없이 일한다

여성스럽고 소심한 <윤미>는 유치원 교사로 일을 하다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전업주부가 되었다.

쾌활하고 푼수같은 <혜정>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레스토랑 매니저로 생계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삼순이는 그 중에서도 <은경>과 가장 가까운 사이었는데 

어느날 여행가는 문제로 대판 싸우고 연락이 뜸해졌으며, 

회사 출장으로 <정희>의 결혼식까지 못가게 되자 모임에 한두번씩 빠지게 되었고

그 친구들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33세 미혼인 수연은 OO 대학교 베이비복스라 불리우던 

미모의 여자무리 5명 중의 한명이다.

청순하고 내숭많던 <유방>. 귀엽고 고집세던 <소팔>. 

웃음많던 글래머 <지삼>. 눈치없고 예쁘장한 <민자>

<유방>는 플로리스트로 일을 하다 일찍 결혼해서 

딸을 낳아 전업주부가 되었고

<소팔>은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 

결혼 후 한의사가 된다며 공부를 하고 있으며

<지삼>은 미국으로 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애 셋딸린 아줌마가 되었고

<민자>는 수연이 소개해준 남자와 최근에 결혼해서 

이웃사촌으로 살고 있다.

<유방><소팔><지삼>은 결혼하고 아기가 있는데다가 

집도 각각 근교에 살고 있어 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만나려면 아기들 때문에 돌아가면서 

집으로 가서 만나기는 했으나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최근 결혼한대다가 아기도 없는 <민지>와 가장 가깝게 지냈는데 

결혼한 후로는 항상 남편과 함께 만나는게 다일뿐.

예전처럼 밤새 티비를 보며 노가리를 까거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속을 털어놓는 일은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수연은 <민자>와 사소한 오해로 말다툼을 하고 

2주간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기간이 있었고,

그녀는 그때 마침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게 되었다. 

속이 상한 그녀는 친구에게 위로받고 싶어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한다.

' 누구한테 전화하지....?'

나도 얼마전 대학동기 여자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나만 싱글.

나머지 3명은 모두 결혼을 했고, 모두 아이가 있다.

오랜만에 만나 무척이나 반가운 것은 잠시.

거실에서는 각자의(?) 아이들끼리 싸우고 울고 

칭얼거리는 전쟁같은 상황

친구들이 앉아있는 식탁에서는 시어머니욕. 남편욕. 아기용품 이야기..

나는 대화의 주제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그렇구나~속상했겠다야~하는 

진부한 리액션이나 몇번 하다가...

4시간만에 하나의 질문을 받았다. 

"미스박!! 방황 그만하고 결혼해야지?? 일만 하다 죽을꺼야??"

순간 살짝 언짢았지만 나는 

"너나 남편이랑 싸우지말고 잘살어~이년아!!! "하고 웃으며 받아쳤다.

그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오자 

나는 문득 친구들과 공유할 것이 없구나하며 

생각이 많아졌던거 같다.

어릴 적 우리는 함께 몰려다니며 떡볶이를 먹고, 

부모님이 안계신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우정이 있었다. 

공부가 힘들때면 편지 한통으로 서로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술을 마실 때 토하면 등을 쳐주기도 하고 

군대 간 남자친구에 대한 넋두리를 받아줄 친구도 있었으며,

어학연수 갔다올때 격렬하게 환영해주고 

헤어진 남자친구 때문에 울때 같이 미쳐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화려했던 그룹들은 사라지고, 

용건이 없는데도 스스럼없이 누를 수 있는 전화번호 목록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얼마전 SBS <K-POP스타>라는 오디션 프로에서 

심사위원 박진영 왈,

"아는 사람은 많아지는데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점점 없어진다"라는 말을 듣고

참 많은 공감을 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는 하고, 

진심으로 대하기는 하지만

왠지 '우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뭔가가 빠진 느낌이 든다. 

친구들은 이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내가 친구로서 그 사람의 삶에 끼어들 자리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30대 싱글 여성. 우리는 이제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것일까?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들의 우정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걸까?

친구로 남으려면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라이프스타일로 살아야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여자들에게 진짜 우정이란 무엇일까? 

친구란 무엇일까?

영화 <친구>에도 나왔지만 

친구의 사전적 의미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다.

띄엄띄엄 오래 사귄 사람이나 

가깝게 알게된지 얼마 안된 사람은 친구가 아닌가봉가?? 

됐고. ㅋㅋ

우리는 친구에게 위로받기도 하고. 친구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싸우기도 하고, 실수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하며 

질투나 시샘을 하기도 한다.

친구를 통해 배우거나 깨닫기도 하고, 

친구와 선의의 경쟁을 하기도 한다.

연애나 부모자식간의 관계처럼 

친구 또한 여러가지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며 

나의 삶 속에 존재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는 친구를. 우정을 

참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쉽게 생각하기가 쉽다.

부모자식 관계. 남친. 남편 등에 대해서는 

참 많은 의미부여를 하면서

정작 나와 가장 오래 가는 동반자의 존재로 

친구에 대한 성의는 참 부족할 때가 많다.

물론 세상에서 가족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하지만 나의 삶을 구성하는 것이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이렇게나 중요한 그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소홀한 것 아닐까. 

소중한줄을 모르는 것 아닐까.

한 시대에 태어나 비슷한 처지와 상황, 경험을 해나가는 친구.

나와 같은 여자이자. 동년배이며, 경쟁자이자 자극제가 되면서도 

내가 유일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친구의 소중함을 잘 아는 현명한 여자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의지하려고 하지도 않고

친구를 자신의 히스테리나 화풀이나 넋두리의 대상으로만 보지도 않으며,

그 어떠한 이익이나 목적없이

내가 필요할 때. 그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하는 관계를 추구하는 것 아닐까.

완벽한 친구관계란 없고, 물론 친구와 비슷한 길을 가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우정이라면.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상황과 여건을 벗어나 

내 사람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결혼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내가 누구의 아내가 되든. 누구의 엄마가 되든. 

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친구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지 더욱 느끼리라.

문득 그렇게 생각하니 

잡담을 늘어놓을 심심풀이 친구는 줄어들었지만..뭐 어떤가.

아기용품 추천해주는 친구는 그 친구대로.

결혼하라고 잔소리하는 친구는 그 친구대로.

친구들의 존재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며칠 뒤, 그때 그 대학동기 모임에 왔던 한 친구가 

따로 전화가 왔다.

"미스박... 솔직히 나 너 부럽다.

 아직까지 싱글이고, 너 자신으로 사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 애 낳고 나서 내 자신이 없어진거 같고 아줌마 같기만 해서 우울해...

 넌 말이야..니가 당당하고 만족한다면 

 남들이 결혼 어쩌구 하는말...너무 신경쓰지 말고

 정말 니가 원할 때 해. 

 지금 모습도 충분히 멋져"

친구의 진심어린 말을 듣고 나는,

"남편도 있겠다. 예쁜 아기도 벌써 둘이나 있겠다..니가 더 멋져~이년아!! "

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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