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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지금 나의 직업이 후회될 때

                                                                                                                                                                                                                                                                                                                

내 친구 영자는 디자이너이다.

고등학교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니며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하자마자 본인의 자랑스러운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국내 조경 디자인회사에 취직을 했다.

화려하고 감각있는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그녀의 현실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못했다.

관공서나 대기업의 시다바리 역할, 자신의 디자인을 기획하기보다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컨셉 쥐어짜기. 말만 그럴듯하게 지어내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끝없는 야근과 체계가 없는 회사의 시스템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버텨보자는 식으로 어느덧 일한지 1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승진도 했지만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그토록 원했던 디자이너의 길을 가고 있는데 현실은 왜 이렇게 버겁고 힘들기만 할까.

그녀와 소주 한잔을 하는 어느 날, 그녀가 말을 했다.

"나...진로를 바꿔볼까봐. 업계도 점점 힘들어지고...일을 하면서도 왜이렇게 즐겁지가 않은지.. 

 이젠 이게 내 길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워"

또다른 친구 한명은 무용을 전공했다.

어릴적부터 남달랐던 무용 실력에 여러번 상을 타기도 했고, 

유명한 교수로부터 강습을 받아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춤'과 함께 보내며 오로지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외국 대학원까지 가서 석사를 수료하고 돌아왔지만 

집에서 무용을 공부하는 아이들 몇몇을 가르치며 돈을 벌던 생활을 청산하고

다음주에 결혼을 한다.

재우라는 친구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감각적이며 성격이 쾌할한 친구이다.

그는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그저 점수에 맞추어 무난한 학과에 진학했을 뿐,

자신이 회계업무에 맞지 않을거라는 판단에 공무원 시험을 2년간 준비했다.

하지만 높은 경쟁률로 결국 실패했고 더이상 집의 도움을 받을 수 없던 그는

대기업 회계팀에 입사를 해서 3년 정도 경력을 쌓았다.

그래도 좋은 회사에 입사한 것이 자랑스러울만도 한데 그는 어째 일을 할수록 점점 무기력해지고 우울해보였다.

하루종일 엑셀표만 보는 것에 신물이 난 그는 결국 회사를 때려치웠고 

나이 34살에 다른 일을 찾아보려 하지만 갈피를 못잡고 2년째 놀고 있다.

요즘은 아이의 적성을 찾아주기 위해 일부러 어릴 때부터 다양한 배움과 경험을 접하게 한다고 한다.

음악에 소질이 있는지. 운동신경이 뛰어난지. 요리를 좋아하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그림을 잘 그리는지..

그래서 적성에 맞는 자신의 길을 최대한 빨리 찾아 남들보다 더 빨리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참 부럽다.

나는 어릴 적 화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

방송 PD가 되고 싶기도 하고..어찌나 꿈이 자주 바뀌는지.

하지만 정작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명확한 목표 없이 막연하게 입시전쟁에서 살아남기 바빴으며

대학교 1학년때는 술먹고 노느라 바빴고.

2,3학년때는 연애하느라 꿈이고 나발이고.

4학년때가 되어서야 내가 직업을 무엇을 가져야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하는 것과 관심있어하는 것이 무얼까...

그렇다고 24살의 나이에 어릴적 꿈인 뮤지컬 배우를 다시 시작할 용기는 나지도 않았고,

머리가 크고 보니 현실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문제는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특별히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 아주 관심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현실적으로 돈벌이도 잘 되면서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는게 뭘까...합의점을 찾기 바빴다.

어째든 20대의 처절한 고민 끝에 지금 직업을 선택했고 

나는 나름 만족해하며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가? 이 일을 사랑하는가? 

 돈을 벌어도 되지 않는 상황이 되더라도 난 이 일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성공할 수 있고.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일은 원래 내가 원하던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 자신이 물어본다.

"너 지금하고 있는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니..?"

이 질문에 정직하게 Yes! Of Course!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말 좋아하는 일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

비즈니스 사회에서는 경력이 중요한데 이미 이 길을  여태 걸어온 마당에 

지금 와서 이 일이 안맞는다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고 해서

우리는 얼마나 큰 도전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껏 쌓아온 10여년의 경력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할 용기가 있을까?

진작에 그 길을 가고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일텐데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확신도 서지 않는 길을 계속 가는 이 두려움과 무기력함은 어떡할 것인가?

진퇴양난이다.

나의 선택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순간 나의 선택이 실수였다고 느껴질 때, 그것이 만약 나의 일과 직업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는 편이지만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기 위해 넘어야 하는 수많은 산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무조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삶을 새롭게 바꿔봐! 

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일과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은 있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어디를 갈 것인지 정하고 항해하는 사람.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가는 사람.

순탄하고 잔잔한 항해를 사람.

온갖 역경과 풍파를 겪는 사람.

어디를 갈 것인지 정하고 항해하는 사람은 당연히 헤매는 사람보다 더 빨리 도착할 확률이 높다.

순탄하고 잔잔한 항해를 하는 사람이 더 기분좋게 도착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우리가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성공이고, 삶의 끝이라 생각한다면

도착 이후부터가 진짜 행복한 삶일까? 

누구보다 빨리 순탄하게 도착하는 것이 의미있는 삶일까?

우리는 삶을 살면서 방향을 잡기도 하고 파도를 만나 때론 방향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방향을 잡아보기도 하고, 도착지를 바꿔보기도 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도착지를 계획하고 쉽게만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떡보다 남의 떡이 커보이기만 하고 나의 현실은 초라해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도착지점에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배를 운전하는 기술을 배우고, 닻을 세우는 기술을 배운 것이 헛된 것이 아니란 얘기다.

방송국에 다니다 33살의 나이에 한의사가 되겠다며 도전한 친구는

왜 진작에 한의학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후회한 것이 아니라

방송국에 다닌 경험을 살려, 컨셉을 잘 잡은 한의원을 차리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했다.

광고대행사에 다녔던 한 친구는 컵케익을 만드는게 너무 행복하다며

퇴사를 하고 작은 컵케익 가게를 차렸는데

광고대행사에서 쌓은 인맥을 통해 컵케익 강좌까지 하게 되었고 인기 강사가 되었고,

미혼모들 교육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치과의사는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는데

직장인 밴드를 하며 알게 된 불우한 아이들 단체에 무료진료를 하는 의미있는 활동을 한다.

이처럼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을 위한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우리가 나갈 수 있는 방향은

저 넓은 바다처럼 무궁무진하며, 제각각 다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묵묵히 습득하면서

만족한다면 더 열심히 하면 되고

불만족스럽다면 

내가 좀더 의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가치있게 할 수 있는 것.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에게 끝없이 질문하며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된다.

잘못된 길을 온것 같다고 후회하고 좌절할 필요 없다.

더 쪽팔린건 내가 10년이나 한 일인데 전문지식이 부족한 것이다.

심지어 미래사회는 멀티플레이어의 시대, 잘하는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하지 않았던가.

결국 지금 하는 일 또한 나에게는 분명 필요한 경험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건 나를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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