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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용서

                                                                                                                                                                                                                                                                                                               

나에게는 두명의 친구가  있었다.

친구A는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란 친구였고

또다른 친구B는 문제가 많은 가정에서 경제적인 압박을 받으며 자란 친구였다.

B는 A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면서도 한번씩 사소한 것에도 A에게 가시돋힌 말을 했었다.

가령 "넌 어려움을 몰라서 그런거야. 잘 모르면서 함부로 얘기하지마"

"그러니까 니가 눈치 없다는 얘기를 듣는거야. 센스 좀 키워라 쯧쯧"

무던한 성격의 A는 그런 얘기를 들어도 못들은척. 혹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편이라

나는 그저 성격이 단순한가보다..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날 A와 얘기를 해보니 A는 B에 대한 큰 미움을 마음속에 심어두고 있었다.

"내가 일일이 대꾸를 안해서 그렇지. 난 B가 너무 싫어.

 같은 동기고 하니까 만나는 거지. 개인적으로는 B 만나고 싶지도 않고 너네 아니면 만날 일도 없어"

내가 봤을 땐 B도 그저 어려운 환경과 치열한 삶 때문에 말이 고깝게 나가지 못할뿐

다른 면으로는 굉장히 친구를 살뜰이 챙기는 사람이었고, 본성이 그리 나쁜 친구는 아니었다.

B는 가끔 나에게도 가시 돋힌 말을 했었는데 그럴때마다 난 대놓고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하며 싸우고 금새 풀었다.

어떻게 보면 내심 B가 안쓰러워 보이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하는 말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서 그런지

같은 말을 들어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면 귀에 잘 안들어왔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A가 B에 대한 컴플레인을 하고 극단적인 표현을 할 때마다 A에게 말했다.

"기분 나쁘면 B에게 말을 정확하게 하던가.

  아니면 B를 이해해봐. 걔도 마음의 상처가 있어서 말을 좀 그렇게 하는 것 뿐이지.

 속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앤지는 너도 알잖아.

 그리고 너에 대한 열등감을 느낄 만큼 본인 상황이 힘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꺼야.."

이후 몇가지 갈등이 되는 사건이 있었고 B는 A에게 사과를 했지만

A의 마음은 이미 굳게 닫혀버렸다.

B는 A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A는 B에 대한 마음을 열지 못했고 그 둘은 점점 멀어져갔다.

심지어 그룹 모임을 할 때에도 A는 B가 있다고 하면 모임에 불참하며 말했다.

"어릴때야 친구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나이 먹으니까 내가 왜 구지 그런 친구랑 만나야되는지 모르겠어.

 내가 싫은데 억지로 만날 필요는 없잖아"

나는 둘 나름의 골이 많이 깊어졌구나...생각하며

B의 애티튜드도 문제가 있지만 B가 사과를 하는데도 그것을 수용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A의 아량도

너무 박하다는 생각을 했었던거 같다.

그런데 얼마전 내가 좋아하는 한 친구 C와 내가 갈등이 생긴 사건이 있었다.

다같이 즐겁게 파티를 하는 와중에 농담이 오고 갔고,

내가 웃자고 던진 농담에 C는 당시 웃어 넘겼는데 이틀 뒤 곰곰히 생각해보니 빡이 쳐서

파티를 함께 한 단체 카톡방에 다음과 같은 문자를 남겼다.

C ㅡ 그때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냐

나 ㅡ 그때 기분이 나빴구나.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C ㅡ 내가 바본줄 아느냐

       웃기지 마라

       앞으로 연락하지마라

나 ㅡ .........

나는 순간 벙쪘고,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문자가 잘못왔는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전혀 할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 친구한테 다른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의아했다.

워낙 허물없는 사이인데다가 왠만한 갈등은 대화를 하면 다 풀릴 정도의 의식을 갖춘 친구였기 때문에

바로 전화를 할까...하다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당시에는 괜찮다가 이틀 뒤에 그것도 단체 카톡방에 이러는 친구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본인의 순간 욱하는 감정을 일방적으로 쏘아붙이는 그 친구의 행동에 나 나름대로 실망이 컸던 거였다.

속으로 무슨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겠거니..하면서도

그래도 그렇지 왜 저렇게 심하게 말을 하지..

얘가 이런 얘였나...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나는 C에게 연락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며칠 뒤에 그 단체 카톡방에 C가 문자를 남겼다.

"얘들아..내가 심하게 얘기해서 미안해..

 새해 복 많이 받자"

나는 한편으로 "뭐야...정신병있나.."하는 생각도 들고, 이해가 가지도 않았고

그 멘트에 답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의 미숙한 행동에 실망했고

이후 사과하는 대처방법 또한 실망스러웠다.

내 상식으로는 본인이 기분 나쁜게 있다면 당사자와 직접 얘기를 하고

싸우거나 풀거나 사과를 받거나. 그리고 본인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또한 상대방한테

만나서 또는 적어도 전화통화로 풀어야하는 것 아닌가..

왠 카톡질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나..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또 며칠이 지난 후 그 친구는 본인의 감정적인 태도가 정말 미안했던지 나에게 따로 문자가 왔다.

ㅡ 미안하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 행동이 부끄럽다..

화풀리면 연락하라고ㅡ

나는 답장을 더이상 미룰수가 없었다.

ㅡ 니가 기분 나빴다면 내가 미안하다.

하지만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고, 우리 사이엔 적어도 대화를 하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너의 일방적인 행동이 나도 반면 참 실망스러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ㅡ

몇번의 훈훈한 문자를 주고 받았고,

이후 나는 C에게 전화를 하여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오해를 풀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풀리지가 않는 것이다.

서로 사과하고 풀었는데도 이 친구가 예전같지 좋지가 않은 것이다.

종종 연락하는 건 괜찮은데 예전처럼 매일매일 통화하고 일상의 소소한 부분까지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구지 비유를 하자면 내가 참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의 전혀 다른 면모를 보고 

오만 정이 떨어져 감정이 식는...뭐 그런 거와 같았다.

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납하기 힘든 그 선을 C가 넘은 것일까.

이 친구에 대한 실망이 너무 큰 나머지 기대감이라는게 확 낮춰진 것일까.

그때 문득 몇년전 아주 친했던 한 친구 D 생각이 났다.

그 친구D와도 난 꽤 오랫동안 만났었는데 그 친구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모습과 결정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걸 목격하고 나서

큰 실망감에 난 결국 그 친구D와 연락을 끊게 되었다.

그 이후 몇번 가까운 친구들이 물어보곤 했다.

"그래도 D랑 상당히 친했는데...다시 연락 안할꺼야?

 생각나거나 하지 않아? 이제 풀만한 시기도 됐잖아"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솔직히 안보는게 더 편해.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과 가깝게 지낸다는게 난 더 싫어"

진심이었다.

그토록 친하던 D였는데 나는 이후 D에 대한 생각조차 나지도 않았고

사악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내심 후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에 C라는 친구의 끝없는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을 했지만

나는 C에 대한 정이 떨어져 있었다.

오래전 관계가 파토난 그 D라는 친구의 생각까지 들면서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어쩌면 내가 '용서'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인건 아닐까."

달라이라마는 말했다.

"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을 당하게 한 유대인까지 용서했다는데

나는 왜이리도 사소한 것에도 용서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보통때 왠만한 것에는 아주 큰 관대함을 발휘하거나

적당히 불쾌한 일이 생기면 쌓아두기보다 얘기를 하거나 싸워서 함께 툴툴 털어버리는 성격인데

내가 절대 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 바운더리를 넘게 되면 

지레 혼자 마음 속으로 "아 이 사람은 이것밖에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혼자 실망하고 혼자 질려하며 점점 거리를 두는 패턴이 있었던 것 같다.

친구 뿐만이 아니라 남자를 만날 때도 비슷한 경우가 몇번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라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라고 하는데

나는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는 넓은 아량을 베푸는 척 하면서

내가 세팅해놓은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잘못이 발생하면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 못됐던 것이다.

직성이 안풀리는 것이다.

대놓고 꾸짖거나 내가 그 사람을 멀리하는 벌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 스스로에게 참 실망스러웠다.

내 기준은 내가 만들어놓은 것이며,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하는데도 나는 그랬던거 같다.

더 무서운건 단순히 그 사람을 용의주도하게 벌을 주는 것을 떠나

아예 그 관계의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차라리 낫다라는 결론을 내리는게 나의 모습이었다.

왜나면 내가 예수님과 같은 성인도 아니고, 착한사람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명백한 잘못이 있는데 왜 그것을 용서하는 감내를 나만 해야하는지에 대한 불만도 내재되어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적식의 냉혹한 잣대를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이대고 있었던건 아닌지.

성경에선 "누가 너의왼뺨을 때리면 네 오른뺨도 돌려 대라"라고 하는데 난 그게 너무 싫었다.

왜 그래야 되지. 

"누가 내 뺨을 치면 그게 얼마나 아픈지 상대방에게 똑같이 뺨을 쳐줘야 그 사람도 깨닫지"라는 식의 논리가

내 머릿속에 있었던 거 같다.

참고 용서하는 성인이 된다고 이 현세에서 누가 알아줄 것이며, 어짜피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 속에 묻어두는 것은 병과 화가 된다고 굳게 믿었다.

혼자 당하고 인내하느니 그럴바엔 받은대로 똑같이 해주고 내 정신건강이나 챙기자ㅡ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나는 쿨한 편이었고 상처를 쉽게 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남들이 착한 사람 병에 걸려서 쉽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당당하게 표현함으로써 약간의 정의감같은 것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이것은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많은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남이 보기에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나를 보기에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나의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때론 함께 싸우기도 하고 때론 정의에 맞서기도 해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론 누군가의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30년을 넘게 살았지만 나 자신의 상처 받기가 싫고

자존심을 위해서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을 참 몰랐던 것 같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의 기준이 얼마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가혹하며, 자기자신을 용서하는 것에도 인색하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부쳤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용서할 수 있는가.

나의 추악한 심보. 나의 가증스러운 모습. 나의 사악한 생각들.

아마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이런 글을 쓰는 나의 생각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나 싶다.

남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있다는 사랑의 시작이리라.

지금부터라도 남을, 나 자신을 좀더 쉽게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연필로 쓴 것들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당장 없다면

남과 내 자신의 허물을 지우기 힘든 펜으로 쓰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조금 더 성숙하면 아마 나만의 지우개로 지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연필로도 너무 꾹꾹 눌러써 지워도 자국이 남는다면 그것은 삶의 경험과 추억으로 볼 수 있는

인격의 절정체가 되기를 원하며...

얼마전 읽은 책의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용서'에 대하여 쓴 글귀가 

이제서야 조금더 마음에 와닿는다.

"사람은 완전히 용서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모든 사람을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

  지금까지 겪었던 야만적이고 어리석고 잔인한 모든 말과 행동을 모조리 용서해야 한다.

  용서는 100퍼센트 이기적인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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