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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어느 한 친구의 이야기

                                                                                                                                                                                                                                                                                                                 

서울에 혼자 살고 있는 은영은 4년전인 28살에 3살 연하남 공자를 만났었다. 

은영은 모대기업을 다니는 예쁘장하고 유쾌한 여자였다.

은영은 내년 봄에 있을 큰 전시회를 담당하고 있었고 전체 스탭 회의를 하기 위해

외주를 주는 모든 협력사의 스탭을 자신의 회사로 초청했다.

15명 정도 모인 그 회의에서 은영은 누군가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상.조명을 제작하는 한 테크니컬 회사의 칙칙한 부장님들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젊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핸섬한데다가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 보였다.

은영은 애써 그 눈빛을 외면하는 척하며 도도하게 회의를 진행했지만 

속으로 '에이...오늘 괜히 안경 쓰고 왔어..' 라고 생각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니 그때 회의에서 본 젊은 남자의 이름은 '공자' 은영보다 3살이 어린 남자였다.

공자는 나이는 어렸지만 천역덕스러운 면에 유머감각도 뛰어나, 은영은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비록 일을 함께 하는 사이긴 했지만 공자와 금새 친해지게 되었다.

준비하던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전시회는 지방에서 약 10일 정도 진행되었는데 은영과 공자는 

일도 함께 하고, 지방의 맛집도 함께 찾아 다니고, 숙소도 같은 곳을 썼기 때문에

사실상 24시간을 붙어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꿈만 같던 10일이 지나고 전시회도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전시회가 끝나자 은영은 공자와 공식적으로 만날 기회가 점점 사라졌다.

괜히 울적하고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자존심에 연락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공자에게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회사 앞인데 잠깐 나올 수 있어?"

은영은 너무 기뻤고 한걸음에 달려나갔고,

회사건물 뒤편의 주차장에서 훤칠하고 핸썸한 공자가 싱긋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은영과 공자는 공자의 차 안에서 공식적으로 첫 데이트를 했다.

그날 이후 공자는 자주 은영의 퇴근시간에 맞춰 와선 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들은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은영은 공자가 3살 어리긴 했지만 전혀 동생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자상하고 오히려 성숙하기까지한 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연애를 하게 되자 은영은 공자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공자는 전문대를 1년 다니고 중퇴를 하고 한동안 방황을 하며 당구장에서 일을 하다가

친구의 아버지 소개로 지금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집안의 경제사정도 어려웠고 성실한 편이었으나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바람에 

성에 차는 다른 직업을 구하기는 어려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은영은 그가 안쓰러웠고 앞으로 잘 되거라며 기운을 북돋아주었지만,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은영은 아주 저 깊은 속마음으로

공자와 결혼까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 스쳤다고 한다.

어째든 지금은 너무 좋고 멋있고 설레이는 그와 연애하는 행복감에 빠져 은영은 정말 행복해했다.

특히 공자는 여자를 감동시킬 줄 아는 남자였다.

강남에만 죽 살아 연극은 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은영을 대학로 소극장에 데려가

로맨틱한 연극을 보여주고 연극 무대에 등장시키는 깜짝 이벤트를 하기도 했으며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끔 책이나 꽃. 음악CD. 향수 등등을 

직접 포장까지 해서 선물하고 손편지까지 써주어 은영을 감동의 도가니에 확그냥 막그냥.

은영의 생일.

왠일로 공자가 일이 너무 많아 은영의 생일을 깜빡했다며 너무 미안해 했다.

원래 일상에서 잘 해주는 사람이라 화를 낼 일은 아니었지만 왠지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은영.

대신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 가자-라고 하며 자동차 시동을 켰는데

공자의 스포츠카 네비게이션에서 갑자기 동영상이 흘렀다.

팝송을 배경으로 그동안 공자와 은영이 만나오면서 함께 했던 추억들의 사진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음악을 입히고 마지막에 공자의 생일축하편지가 자막으로 흘러나오는...

은영은 너무 감동받아서 마음이 먹먹해졌고

공자는 이거 준비하느라 힘들었다며 씨익 웃는다.

담배 한대 피고 이제 출발하자며 공자 왈, "보조석 서랍에서 라이터좀 꺼내줄래?"

은영이 보조석 서랍을 열어보니 놓여있는 선물박스.

오픈해보니 그녀를 위해 준비한 목걸이. 뙇!!!!!

그 목걸이 상자를 열고 있는 동안 공자는 차에서 내려 미리 준비한 케익을

트렁크에서 꺼내 불을 붙이고 가지고 와 한마디 "생일 축하해 자기야 ^^" 허허허허헉

남자에게서 이런 이벤트를 처음 받아 본 은영은 좋아서 입이 찢어졌고

그녀에게 보여준 그의 노력과 성의에 감동받아 공자가 더 좋아졌다.

이후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만나던 그들.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은영은 더 좋은 회사에 스카웃 제의를 받아 이직을 했고 본인의 차도 샀으며

풋풋한 사원에서 때깔 좋은 직장여성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러는동안 공자는 그 회사에서 계약을 겨우 연장하여 1년을 더 다니고 있었고

마침 집안 사정도 더욱 악화되어 아끼던 스포츠카를 팔고(공자에게 그 스포츠카는 보물이었다)

아반떼 중고를 뽑아 몰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그날 저녁 은영과 공자는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은영은 공자에게 전화를 했다.

은영 ㅡ "공자~ 우리 이따 몇시에 볼까? 저녁 먹고 하려면 빠듯하니까

            자기가 우리 회사 앞으로 데리러 오면 되겠다. 괜찮지?"

공자 ㅡ "당신 회사 앞에 차 댈데 없던데...알겠어 일단.

            그럼 시간 맞춰서 꼭 나와~"

은영 ㅡ "오키!!"

저녁이 되서 공자는 약속한 시간에 은영의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은영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공자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 이놈의 팀장님이 회의를 끝낼 생각을 안하는 것.

은영은 공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ㅡ 미안해ㅠㅠ 회의가 길어져서..어뜩하지?? 금방 나갈테니까 좀만 기다려줘

예정시간보다 20분이 늦게 나간 은영.

공자는 주차할 공간이 도저히 없어 뺑뺑 돌고 있었고 금요일 저녁이라 트래픽까지 걸려 그들은 겨우 상봉.

은영 ㅡ "자기야 미안해ㅠㅠ 많이 기다렸지"

공자  ㅡ "늦을거 같으면 미리 얘기하지. 이게 뭐냐 뺑뺑 돌고..아씨.."

은영 ㅡ "미안..늦을지 몰랐어. 팀장님이..."

공자 ㅡ "아 됐어. 밥 못먹을거 같으니까 그냥 바로 영화관 가자"

은영 ㅡ ............

결국 그들은 그날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았다.

공자가 은영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것이다.

원래 그 얘기를 할려고 했던건지. 싸우다보니 홧김에 나온건지 은영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힘들다고 헤어지고 싶다고 얘기하는 공자에게 은영은 질문했다.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니..진심이니.."

공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은영은 덤덤한 척하며 

"그래. 니 생각이 그렇다면..

 잘 지내고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너 덕분에 내 20대가 더 추억에 남을 거 같애"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 은영은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어째든 그녀는 당시 충격을 심하게 받아서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그때 했던 말은 딱 한마디였다.

"대체 뭐가 힘들다는건지. 왜 헤어지는 건지 모르겠어"

이성적으로 이별을 했기 때문인가.

아무튼 은영은 헤어졌다고 해서 네이트온에서 이름을 삭제하거나

함께 했던 사진이나 물건들을 다 버리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슬프지만 이또한 자신에게 소중했던 시간이었다고 하며 

그녀는 차분하게 자신의 상처를 아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은영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공자도 다른 여자를 만났을 것이리라.

공자와 헤어진 이후 은영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해주는 남자, 맹자를 만났다.

맹자는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했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공자와 비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른 스타일이었다.

공자가 매끈한 꽃미남 과였다면 맹자는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덩치만 큰 짐승과였다.

맹자는 이벤트는 커녕 다정한 말 한마디 하기는 것도 쑥스러워하고 민망해하며

무뚝뚝하고 말도 많지 않은 언로맨티스트였지만

은영의 일이라면 만사를 다 제치고 달려와주고 진정으로 은영을 아끼는 상남자같은 스타일.

은영은 맹자와도 꽤 오랜 시간을 사귀었고 이런저런 많은 추억과 싸움들을 쌓아가며

시간은 흘렀다. 결국 어느 작은 오해로 인해 은영은 맹자와도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맹자와의 이별에 또한번 사랑의 덧없음을 느끼며 이 나이에 이제 누굴 만나나...하던 중

공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4년만이다.

한번 만나고 싶다고ㅡ

은영은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면서 왠지모를 설레임도 느껴졌고

이제 나이도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 전남친 오랜만에 보는 것도 쿨한거 아냐? 라며 합리화시키며

공자를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공자는 여전히 훈남이었고 3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이제 조금

어리게 보이는게 아닌가.

서로 잘 지냈냐. 어떻게 지냈냐 근황을 묻기도 하고

오뎅에 사케한잔 하면서 살짝 취기가 돌자 우리 사귈때 너 그랬지~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그렇게 집으로 오고 다음 날 공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ㅡ은영아. 나 너 다시 만나고 싶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어. 그땐 너와 나의 사회적 위치가 너무 달라 부담스워서 그랬지만...

   지금은 자신있어. 한번만 더 기회를 줘.

   다시 널 놓치고 싶지 않아...

은영은 싫지 않았다. 하지만 덥석 승낙할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다.

지난 4년간 그를 잊고 새로운 남자도 만나고 했던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렇다고 이렇게 용기를 내 다시 다가온 그 남자를

이렇게 놓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거다. 뭥미...

은영은 답장을 보냈다.

ㅡ 공자야. 아직은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

    나도 너 오랫만에 보니 참 반갑긴한데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건 겁이 나고

    만약 니가 정말 진심이라면 우리 처음부터 조금씩 해보자

이후로 공자와 은영은 주말마다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공자는 예전처럼 여전히 sweet 가이였다.

은영을 데리고 4년전에 함께 봤던 그 연극을 다시 보려고 티켓을 준비해놓고

은영이 건조하다는 한마디에 모 차트에서 1위했다는 수분크림도 사서 선물했다.

그 다음주에는 맹자와 사귈때는 꿈도 못꿨던 근교 카페에 가서 로맨틱하게 와인도 주문해주고

케익에 1이라는 숫자를 꽂아 '우리 이제 처음부터 시작하자'라는 달콤한 말도 해주었다.

하루종일 로맨틱하고 달콤한 공자의 이벤트와 말에 도배가 된 은영은 자신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4년전. 그때 감동 쓰나미 먹고 했던 그 이벤트와 말들.

30대가 된 지금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이다.

방 한구석에 놓여진 선물과, 케익과 수분크림. 와인 등을 바라보며 은영은 생각했다.

대체 왜이러지...

예전처럼 설레거나 감동이 되거나 하지가 않았다.

결국 은영은 공자에게 말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나 너랑 예전처럼 돌아갈 자신이 없어.

 미안. 내가 이젠 많이 변했나봐.."

그녀는 남자를 보는 기준이 달라진 걸까.

아니면 공자의 뻔한 이벤트 스타일에 신물이 난 것일까.

아니면 이제 30대가 되어 감동을 느낄 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 후에 만난 맹자 스타일의 사랑에 길들여진 것일까.

아니면 예전엔 순수하게 사랑했다면 지금은 은영의 결혼이라는 부담 아래 

공자의 스펙이라는 것이 신경쓰이는 것일까.

4년 전 그녀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고 미련이 남지 못한건지.

공자 이후의 삶의 경험들이 그녀로 하여금 남자에 대한 기준을 바꿔버린건지.

30대가 되니 설레이는 마음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기에 그녀가 영악해져버린 것인지.

그녀는 아직도 그 정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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