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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오피스 와이프같은 소리하고 있네

                                                                                                                                                                                                                                                                                                               

우리는 일터에서 하루의 3분의 1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직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의 반 이상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것.

그러다보니 회사는 나의 삶의 큰 부분이고

그 회사에서 함께 하는 직장 상사, 동료, 후배 등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

바이어의 고집, 고객들의 불평, 상사의 무책임, 끊임없는 야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늘지 않는 통장잔고..등

고단한 사회생활에서 느끼게 되는 여러가지 좋고 나쁜 감정들은 

동료들과 일을 하며, 점심을 먹으며, 커피한잔 하며, 담배를 피며 

동질감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가깝게 만들어 준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유착상태가 되다보니 

<오피스 와이프> <오피스 허즈번드>라는 말까지 나온 것 같다.

<오피스 와이프>나 <오피스 허즈번드>라는 단어는 직장 내에서

배우자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성 동료를 일컫는 신조어로,

이성적인 감정은 없으나 친하게 지내는 동료를 의하는 말이라고 한다.

뭐 이성적인 감정이 없다고는 하는데

사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냉소적이다.

이성적이 감정이 없다면 왜 와이프. 허즈번드를 붙이나. 

<오피스 프렌>이나 <오피스 버디>도 있지 않은가.

나...너무 예민한거야..? ㅋㅋ

암튼, 남녀 직장인 6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전체 직장인 중 29.7%가 오피스 스파우즈(spouse/배우자)가 있다고 대답했고 

그 존재가 업무에 많은 도움과 활력을 준다는 답변이었다고 한다.

반면, 배우자나 연인이 오피스 스파우즈가 있다면

위험 요소가 있고 기분 나쁠 것이라는 답변이 50%.

캬아~ 역시 인간의 모순적, 이기적인 매력..

어째든 이러한 오피스 관계는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부분이긴 했던 것 같으나,

이것이 신조어로 만들어진 것까지 보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격해진 사회적 현상도 있을테고 

또 이런 아슬아슬한 관계를 스스럼 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지.

나는 궁금했다.

오피스 와이프. 그 명확한 선은 어디까지인가.

4년 전 새로운 회사에 이직했을 때 일이었다.

당시 내 나이 30살. 바로 위 송팀장은 41세의 아이 둘이 있는 유부남.

회사에 들어가서 맡은 첫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속으로 흐믓~하고 있는데

송팀장이 말한다.

송팀장 - 미스박, 오늘 잘 끝냈는데 뒷풀이 소주 한잔 하까?

미스박 - 엥. 팀장님 미리 말씀주시죠. 스탭들 다 간거 같은데..

송팀장 - 너랑 나랑 둘이 하지 뭐.

미스박 - 근데 팀장님 술 전혀 못하신다 하지 않으셨어요?

송팀장 - 에이. 난 사이다 먹어도 돼. 같이 소주 한잔 하자~고고

미스박 - (아 뭐야..그럼 나만 술먹으란거야 뭐야. 으...)

나는 갓 입사한 회사 팀장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고 작은 선술집에 들어갔다.

미스박 - 팀장님. 그럼 저도 맥주 마실께요. 

송팀장 - 에이~~소주 한잔해!! 맥주가 무슨 술인가

미스박 - 그래도..혼자 소주 마시기가 좀..

송팀장 - 괜찮아 괜찮아. 난 사이다 마시고도 잘 취해 흐흐흐

미스박 - (아놔...진챠..확마..)

결국 지맘대로 소주와 사이다를 시키더니 내 소주잔에 소주를 흠뻑 따라주는 팀장.

수고하셨습니다 쨔안~! 톡- 잔을 부딪히고

그동안 고생많았다. 첫 프로젝트라 좀 힘들었다. 어쩌구 저쩌구..

시간이 좀 흐르고 나는 팀장님께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미스박 - 팀장님..저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좀 성급한 면이 많아서

             고치려고 노력은 하는데..암튼 많이 배울께요.

송팀장 - 에이..뭐 그런 얘길해. 이번에 보니 일 아주 잘하더만 뭘.

             그건 그렇고 미스박 남친 있어?

미스박 - 네? 아..아뇨 없어요. 작년말까지 만나던 사람 있었는데 헤어졌어요.

송팀장 - 정말?? 에이 미스박같이 미녀가 남친 없다는게 말이 되나

미스박 - 하핫..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없어요. 지금은..

송팀장 - 에휴...미스박. 결혼 그거 있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해보니까...결혼 정말 별거 없어. 결혼해도 외로운게 사람 맘이야.

미스박 - 네..팀장님 그런데 저희 회사 말이에요...

송팀장 - (말 싹둑 자르며) 나 사실 와이프하고도 별로 사이 안좋거든..

미스박 - ...........

송팀장 - 난 그냥 얘기할 사람이 필요한 것 뿐인데..와이프는 나랑 성격이 너무 달라서..

미스박 - 뭐..결혼생활하면 권태기가 올때도 있죠 뭐.

송팀장 - 그래서 말인데 미스박..난 딱 미스박 나이가 좋거든. 나 어때..?

미스박 - 네??? 팀장님 지금 뭔소리하시는거에요(정색하며)

송팀장 - 어라?? 오해하지마. 얘는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내가 뭐 연애하자그랬어? 생사람 잡네

            가끔 이렇게 술도 같이 마시고, 밥도 먹고, 영화보고 뭐 그러자는 거야.

미스박 - (그게 연애 아니냐..씨방새야..)

송팀장 - 허허허. 이 친구 이거 오해했구만.

            미스박 생각보다 순진하네. 알겠어 알겠어. 요즘은 다들 직장생활 하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거야

            

난 그날 돌아오는 길 송팀장에게 - 팀장님 오늘 하셨던 말씀은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 라는

문자를 보냈고, 그 이후로 나의 사회생활은 순탄치 않았다.ㅋㅋ

33세, 주석씨.

그는 6살 어린 20대 후반으로, 한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어느 토요일 낮, 그녀의 집에서 TV를 보며 빈둥대고 있는데

여자친구의 휴대폰으로 "까톡! 까톡! 까톡!"

여자친구가 화장실에서 똥싸는 동안 혹시나 하고 확인을 해봤더니

장대리 - 소연아 뭐하냐. 

            아우 오늘 날씨 더럽게 좋다야.

            이럴 때 한강가서 시원~한 맥주한잔 마시면 좋은데, 콜??

주석씨, 여자친구에게 추궁 시좍.

주석 - 야. 장대리라는 사람한테 계속 까톡이 오는데 얜 무슨 주말에까지 연락해?

여친 - 아~~ 장대리?? 걔 우리 옆팀 동료야~

        우리 회사에서 내가 그나마 젤 친한 사람.

주석 - 너 나 만나는거 얘기 안했어?

여친 - 무슨 소리. 당근 했지. 오빠랑 오래만난거 얘도 알고 있어. 

         에이~ 그런 관계 아니야. 지금 질투하는거야?? 히히

주석 - 그게 아니라 남친 있는 애한테 무슨 주말에 이런 문자를 보내.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여친 - 에이참 오빠 정말 그런 관계 아니라니까.

         워낙 친하니까 그냥 심심해서 보내본거겠지.

주석 - 나는 뭐 사회생활 안해봤고 여자 동료 없냐?

         아무리 친해도 주말에 이렇게는 안해!!

여친 - 아니 오빠...아니라는데 왜 이래. 사람 의심하는거야?

         얘랑은 진짜 회사 동료 사이일 뿐이고, 심지어 남자로 보이지도 않는 애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있지. 무슨 이런걸로 화를 내, 아 진짜 기분 나쁘네..

주석 - 야!! 기분 나쁜건 나지. 넌 아니라하더라도 이 새끼 맘은 모르는 거잖아!!

         너 걔한테 앞으로 남자친구가 싫어하니까 따로 이런 사적인 문자 보내지 말라고 해

여친 - 오빠..나 회사생활 말리는거 보고 싶어?

         얘도 아무 감정없이 편한사이라 보낸건데 내가 그렇게 말하면 걔가 얼마나 민망하고

         어이가 없겠어. 그나마 친한 회사사람 한명 거리두고..내 입장은 생각도 안해?!

오피스 와이프건 오피스 애인이건

사실 사회생활에서 싱글끼리의 끈적끈적한 관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부남, 유부녀, 남친, 여친.

이렇게 충실해야 하는 존재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감정은 없으나 친하게 지내는 동료'는 늘 아슬아슬한 영역이 되는 것 같다.

사람이 감정과 이성이 몇대몇의 비율이냐는 질문에 사람은 100% 감정적인 동물이다-라고 대답한

심리학자의 글을 본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감정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를 통하여 감정의 결핍을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말이다.

한 사람을 통해 자신의 모든 감정의 결핍을 채울 수는 없다고 본다.

아빠로부터는 부성애. 엄마로부터는 모성애

형제로부터는 또 우애, 친구간의 우정, 연인간의 애정. 스승에 대한 공경 등.

이렇게 관계 별로 사랑이라는 감정의 이름이 다른 것은 

분명 그 종류가 다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함께 일하는 상사를 통해 스승에 대한 공경이나 배움이 아닌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을 기대하거나, 자신의 이성적 관계의 결핍까지 채우려한다면

그 사람은 더이상 나에게 상사가 아닐 것이다.

물론 그 관계에서도 발전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법과 도덕, 양심에서 벗어난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그 역할 기대에 대한 선을 긋지 못할 때가 많다.

남자친구에게 아빠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고, 여자친구에게 엄마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욕망인 것이다.

오피스 얘기하다 너무 비약적인 얘기까지 들먹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 내 친구가 한 기사를 보고 격노하여 보낸 문자가 있다.

- 야!! 아버지가 친딸을 성폭행했다는 기사가 또 떴는데, 대체 이런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럴 수가 있을까??

범죄를 저지르는 대부분은 사람들의 심리적 발달이 위축되어 있다고 한다.

부모와 병적인 관계이거나 부모가 역할 모델을 제대로 수행 못한것.

심리적인 발달이 위축된 사람들은 건전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잘못을 통해 올바른 것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지 아닌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기준으로 대부분 정상인에 속하는 

잘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우리가 살면서 애매한 것. 모호한 것들 앞에서 우리의 기준은 혼란스럽다.

회사생활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잊어버리고,

회사생활에서 건전하고 건강하게 맺어야 할 관계의 기준을 흐릴 수록

우리는 심리적 발달이 위축되어 있는 즉,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정신과 심리의 유아기적 사고가 그 선과 기준을

흐릿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회사생활은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운 사회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배를 탄 동료는 값지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가 내 와이프, 남편, 남친, 여친에게 필요로 하는 감정과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이 동료들에게 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건전하다는 것은 19금 내용을 빼라는 게 아니다.

법과 도덕, 양심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

홀로 구석기 시대. 일부다처제 제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선은 분명히 알고 있을 터.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생각한다면 뻔뻔하게 모른 척하지말고 지금이라도 역할 분리 하기를.

그냥 와이프 역할도 나중에 질릴텐데,

무슨 얼어죽을 직장에서까지 와이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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