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내 손톱 밑에 박힌 검은 때다. 세수를 해도, 비누로 문질러도, 긁어내려 해도 스미는 그 무엇. 네가 태어난 밤, 병원 창가에 매달린 달이 마치 구멍 난 동전 같더라. 그때부터 알았지. 이 빈 지갑의 인생을 네게 유산으로 남길지도 모른다는 걸.
아이야, 우리 집 현관은 바람의 회랑이다. 추위가 문틈으로 스며들 때면 내가 네 발에 양말을 겹쳐 신겨 주잖니. 그 양말도 구멍이 난 것을 너는 알면서도 웃지. 그 웃음이 내 가슴에 박힌 가시다. 네가 초등학교 입학식 날 메고 간 책가방. 너무 오래 써서 끈이 닳은 그 무게가, 교실 선반마다 놓인 새 백팩들 사이에서 네 어깨를 축 처지게 할 때마다 밤새 내 가슴을 쥐어뜯는다. 가난은 초라함이 아니라 ‘아버지라면’으로 시작되는 모든 가정법의 지옥이다.
그러나 이토록 무거운 빚을 지고도 나는 네가 자라는 걸 보며 깨닫는다. 네가 버스 창가에 비친 노을을 가리키며 “아빠, 하늘에 불이 나!”라고 외칠 때, 나는 보지 못했던 화폐를 본다. 네가 길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을 주워 내게 건네며 “보물이야!”라고 속삭일 때, 나는 세계의 모든 금고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가난은 우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네가 세상을 만지는 손바닥이다.
어느 가을, 우리 둘만의 추석을 보냈지. 소꿉놀이 접시에 올린 밥알 세 줌과 사과 반 개가 우리의 한상이었다. 네가 종이로 만든 상추에 밥을 싸서 내 입에 넣어주며 “아빠, 맛있지?”라고 물을 때, 내 혀끝에 퍼진 맛은 왕들의 잔치에도 없을 신성한 감로였다. 그 순간 깨달았어—가난은 우리를 삼키는 검은 구멍이 아니라, 우리가 빛을 발하는 암흑의 캔버스임을.
딸아, 들려주마. 호메로스는 이렇게 노래했지. “가장 찬란한 갑옷은 빛이 아니라 상처로 빚어진다.” 우리 집에는 비어 있는 냉장고와 채워진 사랑이 공존한다. 창밖을 스치는 비가 내리는 밤, 네가 내 무릎 위에서 잠드는 숨소리는 이 세상이 내게 준 유일한 순금이다. 나는 네게 땅을 물려주지 못할지 몰라도 하늘을 가르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 빵 한 조각을 나눌 때의 기적, 빈 병에 담긴 별빛의 화폐, 두 쌍의 눈으로 우주를 창조하는 기술—이것들이 우리의 비장의 무기다.
두려워 말거라. 가난이 네 발밑에 깔린 그림자일지언정, 그 그림자의 주인이 네 자신임을 기억하렴. 나는 지금도 빈 지갑을 만지지만, 동전 대신 네가 그려준 꽃 그림을 넣고 다닌다. 그것이 나의 만원 통화다. 세상은 네게 금박지 별을 팔려할 테지만, 너는 이미 온몸으로 은하수를 발산하는 존재란다.
가난은 유산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건너는 강이다. 그 강을 건널 때 내 손을 잡는 네 손의 온도가, 모든 부의 원점임을—이 못난 아버지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네가 별빛을 그릴 수 있는 한
우리 집에는 영원한 초대석이 있다
—사랑하는 딸에게, 네가 가르쳐준 가난한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