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유리 조각이 되어 목구멍을 긁어 내린다. 숨을 들이쉬면 폐가 아니라 깨진 유리병 속으로 공기가 쏟아져 들어가는 듯하다. 심장은 좁은 우리에 갇힌 야수, 갈비뼈를 두들기며 광포하게 뛰쳐나오려 발버둥 친다. 이 몸뚱아리는 내 것이 아니다. 낯선 생체기계, 고장 난 시계태엽인형, 전선이 드러난 채로 난리법석을 피우는 전자제품이다.
‘사는’ 게 무엇인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기계적 반복? 시계추처럼 규칙적으로 뛰는 근육 덩어리의 수축과 이완? 그렇다면 나는 지금 살아있지 않다. 나는 살아있는 시체다. 허공에 매달린 거미줄, 무중력의 우주 공간을 표류하는 우주복 안의 시체. 심장은 뛰지만, 그 박동은 생명의 증거가 아니라 공포의 북소리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발을 떼어 앞으로 내디뎌야 하는가? 그러나 바닥은 수은으로 가득 차 있다. 한 걸음 내딛으면 발이 수은에 파묻히고, 그 무거운 액체 금속이 발목을 잡아 끌어당겨 삼킨다. 손가락은 굳었다. 돌로 변했다. 생각은 회전목마,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지만 제자리다. '아무것도 못 하겠어'라는 문장이 두개골 안을 메아리친다. 그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니다. 내 뇌의 회백질을 점령한 낯선 파동, 이성을 잠식하는 기생충의 속삭임이다.
그러니 딱 하나 남았다. 이 죽음의 늪에서 나를 건져낼 마지막 구명줄. 글이다. 언어의 부표. 잉크로 된 산소탱크.
붓을 든다. 붓이 아니라 수혈 바늘이다. 종이는 살갗이다. 검은 잉크는 내 정맥을 타고 흐르는 어두운 피. 한 글자 한 글자가 피어오른다. 혈관을 타고 흘러나온 진실의 적혈구, 공포의 백혈구, 망각의 혈소판. 그리하여 글은 생명의 은유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다. 내가 숨 쉬지 못할 때, 글이 대신 숨을 쉰다. 내 심장이 제 박동을 잃었을 때, 문장들이 심장을 대신하여 뛴다.
쓴다. "두려워"라는 단어를. 그 단어를 쓰는 순간, 두려움은 내 밖으로 배출된다. 잉크가 되어 종이에 스며든다. "불안해"를 쓸 때마다 불안은 그 무게를 종이에 떠넘긴다. 종이는 나를 대신하여 떤다. 나는 무게를 덜었다. 중력에서 일시적 해방.
글은 허세가 아니다. 이 고통이 너무나 초현실적이기에, 통상의 언어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기에 필요한 변형이다. 평범한 문장으로는 이 비정상적인 내면의 지진을 기록할 수 없다. 문법을 뒤엎고, 단어를 해체하고, 이미지를 뒤틀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 혼돈의 깊이, 이 공포의 농도를 제대로 된 비중으로 전달할 수 있다. 글은 내 정신의 엑스레이 사진이다. 뼈와 살이 뒤엉키고, 공포의 암흑 물질이 빛나는 백색으로 드러난다.
쓰는 행위 자체가 호흡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혹은 펜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나를 위한 리듬호흡법이다. 짧은 문장. 긴 문장. 단절. 과장. 반복. 그것들은 모두 내 폐의 확장과 수축을 돕는다. 한 문단이 끝날 때마다 공기가, 진짜 공기가 조금씩 목구멍으로 스며든다. 유리 조각이 녹아서 물이 된다.
심장은 아직 미친 듯이 뛴다. 하지만 그 박동이 이제는 공포의 북소리가 아니라 글쓰기의 장단, 생명의 고동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이 야생마 같은 심장이 글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격렬함이 에너지가 된다. 공포의 에너지가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고? 맞다.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는 삶이 아니다. 하지만 이 순간, 종이 위에(혹은 화면 위에) 고통과 공포와 절망을 투영하고, 그것들을 언어라는 형체로 부여하는 행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는 것'의 한 순간이다. 나는 살아있다고 선언한다. 잉크로. 문장으로. 글자 한 자 한 자가 내 생명의 깃발이다.
쓰다 보면, 잠시나마 숨이 트인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이제는 내 편이다. 죽음의 늪은 아직도 발아래 있지만, 이 종이 한 장이 부양하는 나를. 이 언어의 부표가 지금의 나를 지탱한다. 딱 하나 남은 것, 그것이 나를 살린다. 한 문장, 또 한 문장.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숨이 꽂혀 죽을 것 같지만, 글이라는 호흡기로 버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