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 위의 연주자

by 브레인캔디

시계 초침은 이제 칼날이다. 쿡, 쿡, 쿡. 공기 속을 가르며 내 두개골 안으로 파고드는 소리. 마감은 추상적인 경계가 아니다. 그것은 내 책상 위에 퍼져 있는 공기의 점성을 바꾸는, 유리처럼 단단하고도 금이 가기 쉬운 현실이다. 키보드 위 놓인 손가락들은 무중력 상태의 우주비행사처럼 떨린다. 각각의 지문 아래로는 뇌리를 스치는 생각의 파편들이, 미완성 별자리처럼 맥박 친다.


* * *


재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안에 있다고 믿었던, 아니 믿어야만 했던 유령 같은 빛이다. 지금 이 순간, 마감의 검은 태양 아래서 그 빛은 차가운 수은처럼 땅바닥에 쏟아져 내린다. 반짝이며 흩어지는 수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내 부족함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나는 그 거울들 속에서 무수히 분열된 자아를 본다. 하나는 비웃고, 하나는 울고, 하나는 공허하게 멍하니 하얀 벽을 응시한다.


문장을 쓴다는 것은, 이 자괴감의 미로에서 길을 찾는 일이다. 아니, 미로 자체를 짓는 일이다. 각 단어는 벽돌이 되고, 각 문장은 복도가 되고, 각 문단은 막다른 골목이 된다. 나는 건축가이자 길 잃은 방랑자이다. "영감"이라는 이름의 지도는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고, 남는 것은 키보드 위에 맴도는 내 손의 그림자뿐이다. 커서는 깜빡인다. 깜. 깜. 깜. 시간을 삼키는 작은 검은 벌레처럼.


* * *


마감의 압박은 물리적인 힘이다. 그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암석이다. 숨을 옥죄는 무형의 손이다. 내 심장 박동은 가속도가 붙고, 땀은 키보드의 글자 틈새로 스며든다. '빨리, 더 빨리!' 이 명령은 내 뇌의 회백질 깊숙이 새겨진 각인이다. 그러나 손가락들은 꼭두각시처럼 뻣뻣하다. 생각들은 꿈틀거리는 실타래처럼 엉킨다. 속도와 정밀도는 서로를 배반하는 적이 되어 버린다.


자괴감은 그 틈새로 스며든다. 차가운 안개처럼. "이게 네 최선이냐?" "다른 이들은 훨씬 쉽게 해내는데." "너는 진짜가 아냐." 이 목소리들은 내 머릿속에서 합창을 한다. 과거의 실패들, 남들의 완성된 작품들, 비평의 메아리들이 모두 합류해 하나의 굉음을 이룬다. 그 굉음 속에서 나의 목소리는, 내 진짜 목소리는, 가냘프게 흔들리다가 사라진다. 나는 내가 쓴 것들을 보며 오직 허무만을 발견한다. 형편없는 모조품. 열정의 잔해.


* * *


그러나 기묘한 순간들이 있다. 마감이라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자괴라는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며, 갑자기 투명해지는 순간.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키보드 소리만이 우주의 유일한 리듬이 되는 순간. 손가락들이 뇌를 거스르고 자신만의 기억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때, 깨진 유리창 틈으로 스민 한 줄기 햇살처럼, 뜻밖의 문장이 튀어나온다. 생경하고도 강렬한 이미지. 날카롭게 정확한 은유. 그것은 계획된 것이 아니다. 마감이라는 극한의 압력 속에서, 자괴라는 암석층을 뚫고 솟아오르는 지하수 같은 것.


그 순간, 재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의 투명함, 그 순간의 유동(流動)이다. 자괴감의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 있지만, 그 빛줄기는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완벽함의 빛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것은 순전한 생존의 빛이다. 존재의 증거. 마감이라는 사선 위에서 간신히 버티는, 그러나 버티고 있는 존재의 끈질긴 빛.


* * *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그것은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일시적인 휴전 선언이다. 어깨의 무거운 암석은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피로라는 모래주머니가 채워진다. 화면 속 완성된 글은 낯설다. 그것이 정말 내가 쓴 것인가? 그 속에는 자괴의 잿더미와 마감의 흠집들, 그리고 그 모든 것 사이로 스민 예상치 못한 빛줄기들이 뒤섞여 있다. 완성은 환상이다. 모든 글은 그저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압력 아래서 포획된 사고의 화석일 뿐.


다음 마감이 다가오면, 시계 초침은 다시 칼날이 될 것이다. 자괴의 안개는 다시 모여들 것이다. 나는 다시 그 미로 속으로, 그 절벽 가장자리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왜냐고? 아마도 그 투명한 순간의 빛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그 순간, 재능의 유령이나 완벽의 환상이 아니라, 단순히 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마감과 자괴라는 거대한 암흑 속에서도 스스로를 증명하는 작고도 강력한 빛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사선, 그러니까 죽음선 위의 연주자다. 악보는 공허하고, 악기는 결함 있으며, 청중은 나의 내면을 갉아먹는 비평가들뿐이다. 그러나 나는 연주한다. 그 끔찍하면서도 황홀한 칼날 위에서, 한 음 한 음, 내 존재의 깨진 멜로디를 연주해 나간다. 그 연주 자체가, 이 고통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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