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공간성, 혹은 사라진 간극의 미학

by 브레인캔디

1.

우리는 한때 기다림의 미학을 알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팽창했으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들 속에서 인간은 인간다움을 배웠다. 기다림은 단순한 대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활력 있는 공허함이었으며, 존재의 밀도를 높이는 역설적 풍요로움이었다.


2.

편지는 우편번호를 따라 천천히 걸어왔다. 그 사이 우리는 무수한 가정들을 세우고 무너뜨리며 상상력의 건축사가 되었다. 전화기는 벽에 고정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 주변을 맴돌며 소리의 도래를 기다리는 종(種)이었다. 기다림의 물리학은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었다. 미래에서 현재로 걸어오는 시간의 발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만이 진정으로 현재를 살 수 있다는 역설.


3.

디지털 시대는 모든 간극을 압축했다. 기다림은 시스템의 결함이 되었고, 지체는 곧 실패의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0과 1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즉시성을 요구한다.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할 수 있는 메시지, 보지 않고도 본 것처럼 할 수 있는 경험. 우리는 이제 완성된 결과물만을 주고받는다. 과정은 은폐되었고, 대기 시간은 삭제되었다.


4.

택배 추적 앱에서 화물은 실시간으로 점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 점과 점 사이의 공간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도착지와 출발지만을 바라보며, 그 사이를 연결하는 선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렸다. 물류 시스템의 고도화는 기다림의 공간성을 말소해 버렸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실시간으로 추적 가능한 이 세상에서, 오히려 우리는 더 깊은 불안에 시달린다.


5.

기다림이 사라진 자리에 분노가 자리 잡았다. 1일 배송이 2일이 되면 우리는 시스템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지체에 대한 내성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조금의 지연도 용납하지 않는 까다로운 소비자로 변모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무엇에 이렇게 조급해하는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기다림의 여유가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던 정신의 풍요로움이었다.


6

초문명은 우리에게 초연결을 선사했지만, 정작 우리 내부의 연결은 오히려 단절되고 있다. 기다림의 공백 속에서야말로 진정한 사유가 탄생하는 법이다. 모든 것이 즉시 주어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오히려 생각할 공간을 잃어가고 있다. 상상력은 간극을 필요로 한다. 공백이 채워지기까지의 그 황금 같은 시간들 속에서 인간의 내면은 우주처럼 팽창한다.


7.

어쩌면 우리는 의도적으로 기다림의 공간을 재창조해야 할 때다. 디지털시계의 숫자가 뛰어넘는 시간들을, 고요히 눈을 감고 자신의 내부에서 흘러가게 하면서. 기다림은 단순한 지체가 아니라, 생각이 발효되는 시간이었음을 기억하자.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다릴 수 있었던 그 마음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


8.

기다림의 종말은 인간성의 일부 종말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 초연결 시대에 단절의 미학을, 초속도 시대에 감속의 용기를. 기다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일. 그것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9.

기다림은 공허함이 아니다. 그것은 가득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잠재적 공간이다. 그 공간성을 되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인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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