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장에는 표지가 번지고 귀퉁이가 말린 책 몇 권이 있습니까? 공부하려고 샀던, 혹은 누군가가 추천해 줘서 사두기만 한 그 책들. 당신의 하드 디스크에는 ‘참고 자료’라는 폴더가 가득하지 않습니까? 정리만 되어 있을 뿐, 실제로 활용된 파일은 거의 없는. 당신의 마음속에는 ‘언제 한번 도전해 볼’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영영 잠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곳이 바로 ‘준비’라는 호화로운 성입니다.
우리는 그 성에서 너무도 오랫동안, 너무도 편안하게 머물러 왔습니다. 정보를 더 모으고, 계획을 더 다듬고, 조건을 더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중함’이라고 이름 붙이고, ‘책임감’이라고 치켜세웁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것은, ‘시작’ 뒤에 따라올지 모를 가난과 불안함에 대한 공포입니다.
준비는 사치입니다. 그것은 끝없이 미룰 수 있는 유예의 특권입니다. 그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안전지대입니다. 그것은 ‘내가 만약 진짜로 했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채워진, 공허한 판타지의 왕국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영원히 완벽한 가능성의 나라를 꿈꾸며, 불완전한 현실에 내디딜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이제, 그 사치를 거둬들일 때입니다.
시작의 가난함에 대하여
‘시작’은 정말로 가난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가진 환상 대부분을 앗아갑니다.
‘나는 천재일 수도 있어’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나는 이 일에 서툴구나’라는 콘크리트 같은 현실로 대체합니다. ‘모두가 나를 응원할 거야’라는 따뜻한 기대를, ‘아무도 관심 없어한다’는 침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준비의 성에서는 당신이 주인공이었지만, 시작의 황야에서는 당신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름 모를 여행자 A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가난입니다. 자원이 없고, 확신이 없으며, 보장이 없습니다. 첫발을 내디딘 그 순간, 당신은 ‘완벽함’이라는 사치품을 잃어버린 빈민이 됩니다. 당신의 작품은 졸렬하고, 당신의 행동은 삐걱거리며, 당신의 의지는 매일같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난만이 당신에게 진짜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가난이 주는 선물
가난은 창의성을 낳습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자리에서는 게으른 해결책이 나옵니다. 하지만 자원이 ‘없을’ 때, 당신은 주변의 모든 것을 활용하는 법을 배웁니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던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막다른 골목에서도 길을 만들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준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진정한 나만의 방식을 찾게 됩니다.
가난은 겸손을 가르칩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비워야 할 때 비로소 세상은 당신에게 지식을 채워 넣습니다. 당신의 부족함이 스승이 되어, 더 깊이 보고, 더 낮게 학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가난은 ‘진짜’를 만드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준비의 사치는 ‘가능성’이라는 허상을, 시작의 가난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결과를 만듭니다. 그 결과는 처음에는 보잘것없을지 모릅니다. 초라한 문장, 엉성한 그림, 미숙한 사업 계획서.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이름이 적힌, ‘진짜’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창조의 현장에 서 있음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입니다.
당신의 성을 나서라
그러니 이제, 그 편안한 성의 문을 열고 나오십시오.
서류 더미와 북적이는 자료의 산을 뒤로하고, 맨몸으로 시작의 들판에 서 보십시오. 바람이 선선할 것입니다. 발아래 돌부리가 많이 닿아 불편할 것입니다. 두려움이라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순간, 당신은 비로소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을 것입니다. 당신의 심장은 준비의 나른한 안정이 아닌, 시작의 날카로운 긴장감 속에서 뛰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이 내디딘 그 첫걸음은, 아무리 작아도 ‘과거의 당신’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당신’을 세우는 지진과 같은 일입니다.
“준비라는 이름의 사치를 너무도 오랫동안 누려왔다. 이제 시작이라는 가난을 견뎌라.”
이 문장은 잔인한 명령이 아닙니다. 이는 해방의 선언입니다. 당신을 그 무거운 사치의 족쇄에서 풀어주는 자비로운 허락입니다.
더 이상 준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불완전함을, 두려움을, 가난을 안고 그냥 시작하십시오. 첫 문장을 쓰고, 첫 선을 그리고, 첫 상담 전화를 걸고, 첫 코드를 짜 보십시오.
그 가난한 시작의 순간이, 당신 인생에 있어 가장 값진 부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