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무대 위에서 대본을 기다리는 배우이자 작가다

by 브레인캔디

그 문장이 날 찔렀다. 마치 광활한 무대 한가운데 서서,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침묵이 느껴질 때쯤 찾아온 한 줄의 전율이었다.


“네 인생의 배우는 오로지 너다. 관객도, 연출가도, 심지어 대본 작가도 없다.”


그리고 나를 뒤흔드는 마지막 질문.

“그런데 너는 아직도 대사가 적혀오기만을 기다리는 거냐?”


1막: 무대, 그리고 무(無)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서 있는가?


머릿속으로 그 공간을 그려보라. 단조로운 조명만이 의자들을 비추는 공연장. 붉은색 커튼은 걷혀 있고, 무대 위에는 아무런 세트도 없다. 그저 텅 빈 공간, 당신만이 홀로 서 있는 그 공간.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마도, 당신은 무대의 정중앙에 서서, 어디선가 날아올 대본 한 장을, 혹은 무대 밖에서 들려올 연출가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조명이 뜨겁게 내리쬐고, 시간은 흐르는데, 아무런 지시도, 아무런 신호도 없다. 그래서 당신은 그저 서 있다. 발이 저려오고, 목이 메어오지만, 대사 한 마디 뱉지 못한 채.


그러나 잠시 멈춰 보라. 관객석을.


그곳에 누가 있는가? 아무도 없다. 당신의 연기를 평가하고 박수를 보내줄, 혹은 야유를 퍼부어줄 관객은 없다. 당신의 무대를 지켜보는 이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오히려 숨이 트이는가, 아니면 더 큰 공허감에 사로잡히는가?


“관객이 없다는 것은, 당신의 실수를 보는 이가 없다는 위로이자, 당신의 빛나는 순간을 함께 할 이가 없다는 고독이다.”


2막: 유령이 된 연출가, 그리고 사라진 대본


우리는 어릴 적부터 ‘연출가’가 있다고 믿어왔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신이라는 이름의, 혹은 사회라는 이름의 거대한 연출가가. 그가 짠 대로, 그가 정한 장면에서, 우리는 그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딸, 성실한 직원, 헌신적인 부모.


그러나 무대는 비어 있었다. 연출가석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라. 무대 옆날개를 힐끔거리며 “이제 뭐라고 하면 돼?”라고 속삭이는 것을. 아무도 당신에게 “지금 이건 너의 역할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무대 위에서 침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든, 광란의 춤을 추든, 갑자기 무대를 박차고 나가 바다로 뛰어들든, 그것을 ‘잘못된 장면’이라고 규정할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연출가가 없다는 것은, 모든 선택의 책임이 나에게 있음이자, 동시에 내가 선택하는 그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는 자유다.”


그리고 대본. 우리는 마치 삶이라는 두꺼운 대본이 이미 쓰여 있고, 우리는 그저 페이지를 넘기며 줄을 외우기만 하면 되는 존재인 양 살아왔다.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하고, 몇 장에 이르러서는 어떤 대사를 해야 '잘 산 것'이 되는지.


하지만 당신의 손을 보라. 그곳에 대본이 있는가? 아니, 없다. 있는 것은 그저, 하얀 종이와 당신의, 맨손뿐이다.


“대본이 없다는 것은, 당신이 지금 이 순간부터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작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3막: 배우이자, 작가인 너


그렇다. 당신은 이 무한한 무대 위의 유일한 배우다. 하지만 당신은 동시에, 그 무대의 연출가이자, 그 극의 작가이기도 하다.


당신은 지금, 대사가 적혀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연기자’에 머물려하는가? 아니면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꺼지자, 어둠 속에서 당신의 존재마저 사라질까 두려워하는가?


그 두려움을 내려놓아라.


“스포트라이트는 당신이 켜는 것이다. 당신이 있는 곳이 곧 빛의 중심이다.”


당신이 움직일 때, 무대는 생명을 얻는다. 당신이 내뱉는 첫마디가, 그 무대의 첫 번째 대사이자, 그 장면의 첫 번째 줄기가 된다.


지루한 장면이라면? 무대를 박차고 나가라. 바다가 되고 싶다면 무대 전체를 푸른 물로 채워도 좋다. 관객이 없지 않은가? 누가 뭐라든.


대사가 밋밋하게 느껴진다면? 그 말을 뒤엎고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라. “사랑합니다” 대신 “당신의 눈동자에 내 그림자가 비치는 순간, 나는 우주가 된다”라고 외쳐보는 거다.


갑자기 무대 위에서 울고 싶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장면의 전부가 되어라. 울음은 대사가 아니라, 대사를 초월한 몸짓이다. 당신의 몸짓이 곧 대본이다.


“인생은, 문법을 거스르는 용기다. 주어-서술어의 안전한 문장을 벗어나, 조사도 생략하고, 때로는 술어만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그런 삶이다.”


4막: 즉흥극, 그 무한한 자유


이제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완성된 대본’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 우리는 ‘즉흥극’을 하는 배우이자 작가다.


다음 순간 어떤 대사를 할지, 어떤 동작을 보일지 스스로도 모른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당신은 떨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즉흥성이야말로 당신의 인생을, 남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걸작으로 만드는 열쇠다.


누군가는 당신의 연기를 보고 “저건 연기가 아니야, 문법에 맞지 않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비록 관객은 없지만,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유령 관객들이 그렇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라.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이것은 나다. 그리고 나의 문법은, 나만이 정의한다.”


맺음말, 대신 시작되는: 오늘의 대사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무대는 이미 시작되어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더 이상 기다리지 마라. 대본은 오지 않는다. 연출가의 지시도, 관객의 박수도 오지 않는다.


“당신의 손이, 당신의 입이, 당신의 발이 곧 대본을 쓰는 도구다.”


지금, 이 자리에서. 첫 문장을 써 내려가라.


커피잔을 들고 “이 커피는 오늘따라 유난히 쓰다”라고 중얼거리는 것부터가, 당신 인생 극본의 새로운 한 장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회의실에서 뜻하지 않은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당신 무대의 예측할 수 없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네 인생의 배우는 오로지 너다. 그런데 왜 너는, 너 자신이라는 작가가 써 내려간 대사를, 스스로 외우지 못하는 거냐?”


오늘, 당신의 대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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