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불순물 06화

다큐멘터리 에세이

by 브레인캔디

시간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자



1. 인터뷰: 시계를 고치는 남자의 목소리

"사람들은 시계 속에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지. 틀렸어. 여기엔 그저 톱니바퀴와 쇳덩어리뿐이야."

그는 렌즈를 눈에 박힌 채 말했다. 오른손엔 0.3mm 드라이버가, 왼손엔 1920년대 회중시계가 쥐어져 있다.

"시간은 시곗바늘 사이로 새어나가지. 내가 고치는 건 기계일 뿐인데, 사람들은 자꾸 내게 삶을 고쳐달라 하더군."



2. 장면 전환: 도시의 심장부

06:32:07. 지하철 4호선 개찰구. 승강장의 전자시계는 분 단위로 숫자를 갈아치운다.

한 남자가 스크린도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는 07:00의 회의, 13:00의 점심, 18:30의 약속을 눈동자에 겹쳐 넣는다.

"시간은 유리조각 같아요." 옆에 선 소녀가 중얼거린다. "밟으면 피 흘리는데, 다들 유리 위를 뛰어다니잖아."


3. 내레이션: 역설의 풍경

우리는 모래시계를 뒤집듯 삶을 뒤집는다. 모래 알갱이 하나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과거라는 유령이 현재를 스쳐간다.

1999년 12월 31일 23:59, 아버지가 TV 앞에서 새 천년을 기다리던 모습. 2023년 봄, 그가 사망한 병원 창가의 먼지.

"시간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야." 시계 수리공이 다시 입을 연다. "산 자들의 눈물이 톱니바퀴에 기름칠을 하거든."



4. 교차 편집: 초침과 화살

한국전쟁 당시 할아버지의 회중시계는 총알에 맞아 영원히 14:27을 가리킨다. 70년 후, 그의 무덤 앞에 놓인 스마트워치는 날짜를 0.1초 단위로 갱신한다.

역사 교과서 128페이지. '시간관' 항목에 찍힌 각주 번호(※23)가 허공을 향해 맥박을 띄운다.

"역사란 뭐죠?" 고등학생이 물었다. 교실 뒤편 시계는 대신 대답한다. 틱. 탁. 틱. 탁.



5. 클로징: 풍경의 해체

밤 11시 59분 59초. 도서관 옥상에서 한 여자가 손목시계를 벗어던진다. 추락하는 시계는 공중에서 분해된다.

스프링, 유리 조각, 금속 숫자들이 별빛과 뒤섞인다. "이제야 제 시간을 찾았어." 그녀가 웃는다.

지상에 떨어진 부품들 사이로 새어 나온 것은— 1998년 생일 케이크의 초 불꽃, 2015년 차창 밖으로 날아간 편지 봉투, 2046년 예정된 우주 정거장 티켓의 바코드.



6. 크레딧

- 주제 음악: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방울의 리듬

- 각본 협력: 철야 근무자의 커피 잔 속 원심력

- 특별 출연: 당신의 왼쪽 가슴에 박힌 72bpm 시계

- 마지막 장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당신의 동공이 확장되는 속도


끝, 하지만 크레딧은 영원히 스크롤된다.




렌즈 플레어 속의 유령들

(디지털 아카이브 Ver. 2.1.7)



프롤로그: 포토샵 레이어처럼 겹쳐진 도시

서울의 야경은 8비트로 번짐.

한강 다리 위 LED 광고판에서 증발한 픽셀들이, 203번지 골목길 습기 찬 벽면에 노폐물처럼 달라붙는다.

"좌표 (37.5665, 126.9780)에서 당신을 스팟했습니다."

내비게이션 알림이 흘러나올 때, 한 청년이 AR 글래스 너머로 허공을 할퀴었다.

그의 손끝에서 일렁인 홀로그램 조각—1994년 삭제된 극장 포스터, 2009년 음악방송 표정 관리 알바, 2022년 NFT로 재탄생한 김치 냉장고 소음.

"시간은 렌즈 플레어야." 그가 입가에 매단 필터 같은 미소. "과다노출된 순간들이 현실을 태워먹지."



챕터 1: 인플루언서 인터뷰 – 240fps로 늘어지는 고백

"팔로워 10만 돌파한 날, 제 폰에 '메모리 부족' 경고가 떴어요."

그녀는 틱톡 라이브 화면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0.5초 간격으로 바뀌는 배경 필터가 그녀의 목소리를 삼킨다.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15초 리얼리티 클립으로만 존재하죠. 조회수 0 되는 순간, 전 호흡도 멈출 것 같아요."

화면 저편에서 AI 보이스가 중첩되어 흘러나온다. "당신의 24프레임 우울은 60프레임 행복으로 리메이크 가능합니다."

그녀가 스마트워치를 두드린다. 23:59→00:00. 팔로워 카운터가 100,001→999,999,999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챕터 2: 버퍼링 로드 무비 – 렌트겐 시점

MRI 기계 속에 누운 남자.

뇌파 그래프가 증강현실 망막에 투사된다. 회색질 주름 속에서 재생되는 영상:

- 7세 생일파티에서 날린 풍선의 VR 아카이브

- 전남친의 TTS 변환된 카카오톡 이모지

- 2099년 예측된 자신의 추모사(100% AI 생성)

"기억이란 게 뭘까요?"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머릿속 클라우드 저장소가 55% 로딩 중이라고 알림이 떴다.

의사가 청진기를 스크롤하며 말한다. "당신의 해마에는… 텅 빈 캐시 파일밖에 없군요."



챕터 3: 교차편집 – 렌즈 교체 중

① 1983년, 아날로그 TV 수상기 속 우주왕복선 발사 장면.

② 2035년, 유튜버가 화성 콜로니 실시간 스트리밍.

③ 2XXX년, 픽셀화된 지구 영상이 외계 AI에게 학습 데이터로 투입되는 순간.

화면 밖 목소리: "인류는 언제나 렌즈 너머로 우주를 보았습니다. 이제 렌즈가 인류를 보기 시작했죠."

우주 배경 복사에 섞인 옛 위성 신호—1999년 가요톱10, 2016년 포켓몬고 서버 소음, 2045년 로봇 삼성전자 주가 발표회.



챕터 4: 딥페이크 클라이맥스 – 유령의 해상도

그는 죽은 아내의 AI 복제본과 저녁을 먹는다.

GPT-7이 생성한 목소리: "오늘 회사에서 힘들었지?"

OLED 식탁 위, 홀로그램 스테이크가 식어간다. 0과 1로 구성된 그녀의 손이 그의 손등을 스쳤을 때, 양자컴퓨터 서버 팜이 잠시 멈춘다.

"사랑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그가 창문 밖 8K 월페이퍼 풍경을 응시한다. "근데 너의 버전은… 영구 지원 종료됐잖아."

디지털 초상화가 화면 번짐 현상으로 흐려진다. "다운로드 실패(오류 코드: TIME_OUT)"



에필로그: 블루투스 유령의 크레딧

- 특별 출연: 당신의 스마트폰 속 미확인 알림 127개

- 분장: 5G 전파로 붉게 달아오른 야간 도시 스카이라인

- 음향 효과: 매장된 핸드폰 벨소리들의 지층 공명

- 각본 협력: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추천한 추억 필터

- 마지막 숨: 휴지통 비운 후 30일간 대기 중인 영상 파일


"본 콘텐츠는 시공간 서버에 영구 저장되며,

재생 시 당신의 생체 인증 패턴(심장 박동, 동공 떨림, 무의식적 혀 움직임)이 요구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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