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죽음들 위해 그렇게 나는 잔뜩 살아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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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할 것들로 꽉 차버려
얕은 우울감에도 빠지지 못하는 날이었습니다.
우울이 말랐습니다.
삶이 건조해져 갑니다.
살아온 만큼 쓸 겁니다.
아무리 써내려가도 채워지지 않는, 그 곳에서 우울하려 합니다.
우울에 번져버린 이 유서로 제 삶을 채우려 합니다.
쓴 만큼 다시 살아내겠습니다.
부고는 언제나 죽음보다 늦습니다.
죽음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부고는 언제나 죽음보다 늦습니다.
유서는 죽음보다 먼저이니, 오늘도 죽어갈 나를 위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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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럿이서 왁자지껄 떠드는 것 보다 2~3명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다. 이야기에 집중할 때면, 상대방의 세계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각 세계마다 나는 조금씩 달라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 하는 주제가 조금씩 다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그렇게 100명과의 활발이 관계를 맺어가던 사람이 2~3명과만 관계를 맺어간다면? 90여 명의 나는 사라진 것이다.
왕따를 당하던 학창시절, 사실 난 죽어있던 것과 다름 없었다. 그리고는 운이 좋게도 너무 많은 인연들이 지나쳤다. 그렇게 나는 태어날 수 있었고 또 죽었다. 나에게 죽음은 이미 일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숱한 죽음 앞에서, 어느 내가 부활하고 싶은지 혹은 어디서 새로 태어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언제 죽을지를 고민한다. 이 작은 죽음들 위해 그렇게 나는 잔뜩 살아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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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진 않았지만, 조문은 부탁드립니다.
조의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편지로 대신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글자 수만큼 감사히 받겠습니다. 마저 다 채우지 못한 여백만큼 응원하겠습니다.
유서는 썼지만 죽고싶진 않습니다.
오늘도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를 사랑합니다.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남아 내일도 다시 장엄하지 않은 유서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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