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나서 vs 시간을 내서
친구 중에 오랜만에 만나면 면전에서 '너는 왜 나한테 전화 안 하냐?'라고 타박을 하는 녀석이 있다. 처음 몇 번은 '그래.. 미안하다.'라고 답을 했지만, 생각을 해보니 연락을 안 한 건 서로 마찬가지인데 타박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얼굴을 봤을 때 자리에 앉자마자 '왜 연락 한번 안 했냐?'라는 말을 듣자 정색을 하고 이야기를 했다.
'연락은 너도 안 했잖아?'
'너도 다른 일에 치여서, 다른 일의 우선순위에 밀려서 나한테 연락 한번 안 했으면서 볼 때마다 무슨 죄인 심문하듯이 그런 말을 반복하냐?
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멀 그냥 지나가는 말에 그리 정색하냐?'
고 화제를 둘리려고 하길래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슨 지나가는 말이냐..?'
'내가 너한테 이 얘기를 볼 때마다 들었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한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고 어색한 공기가 싫어 특별히 이러쿵 저렁쿵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여러 번 들은 달갑지 않은 소리에 꽤 기분이 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그 친구와는 친구에서 '아는 사람'이 되었고 지금도 오가다 만나면 인사하고 모임을 같이 할 일이 있으면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는 추궁 아닌 추궁은 사라졌다.
최근에 태오 작가님의 <당신의 정말로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를 읽었다. 색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거나 어려운 단어와 말을 쓰지 않아도 공감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이어서 시간을 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여러 좋은 내용과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책을 덮었을 때 생각나는 몇 가지 구절 중에 하나가 <시간이 나서 Vs 시간을 내서>였다. 그리고 지난 일도 같이 떠오르면서 나면서 관계와 친밀함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시간이 나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찾아가는 일도 고맙고 친밀함의 깊이를 보여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연락하고 만나야 할 다른 수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해야만 하는 다른 일도 있도 있다. 그런데도, 짬이 났을 때 떠올린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시간을 내서' 연락을 하고 만남을 청하는 것은 더 깊은 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펜을 들고 나한테 갑자기 쉴 수 있는 며칠이 주어진다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를 적어봤다. 막상 적고 보니 몇 되지 않는 이름에 적잖이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좁게 세상을 살고 있었나?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하고.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현실에 충실했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다는 정신승리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는 없었다.
시간이 나서든, 시간을 내서든.
고마운 말과 행동을 나에게 해준 사람들을 생각하고, 생각에만 머물지 않아야겠다. 생각이 전달되고 고마움을 갚을 수 있도록 연락하고 만나고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지금 손안에 들고 있는 슈퍼컴퓨터와 맞먹는 인간관계 유지에 특화된 기기를 활용해 문자와 톡이라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