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를 따고 한국 와서 주변의 박사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의외로 큰 딸인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박사과정 때 만난 언니들을 봐도 큰 딸이 많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게 정말 우연일까?
이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나도 그 “K-장녀”다.
그 표현에 따라오는 책임감, 착한 아이 콤플렉스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자면, 어렸을 때부터 ‘큰 딸은 살림 밑천이지'라는 시대착오적인 말을 주변 어른들로부터 들었다. 그때도 어려서 뭔가 모르겠지만, 찝찝했던 기분이 남아있다. 또 다른 예는 ‘엄마아빠가 혹시 잘못되면 동생들한테 네가 보호자가 되는 거야’ 이런 말들. 그래서 내 몫이 아닌데 내가 갖게 된 책임감들이 있다. 친구들이 욕을 배우기 시작할 때, 누가 심어준 생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는 동생들이 둘이나 있으니까 그렇게 나쁜 말은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어쩐 이유인지 약간의 부채감도 갖고 컸다.
'첫째가 잘 되어야 동생들도 잘 된다.'라는 부모님의 기대와 서포트를 받았다. 그 기대와 서포트가 내가 이룬 것들의 기반이 된 것은 사실이라 감사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들이 내 어깨에 하나하나 쌓이기 시작했다. 첫째라, 아직 동생들에게 들어갈 돈이 적으니 더 좋은 유치원을 다녔고, 그 뒤로도 조금 욕심을 내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거기다 입시를 한번 더 도전하게 되면서 동생들에게 가야 할 서포트를 내가 뺏어왔다 느꼈다. 그리고 그때쯤부터 대학교에 가면 엄마아빠에게 손 벌리지 않고, 등록금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부분은 부모님이 늘 그렇게 말하셔서 그래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동생들 등록금은 다 내주시더라.)
그래야 동생들이 필요한 사교육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 정말 생각도 못했는데, 학부 1학년 1학기에 첫 전액 성적장학금을 받게 됐다. (열심히 했다기보단, 사실 안 놀았다. 당시 우리 과 남자 동기, 선배들은 어차피 교사 될 거니까 학점은 중요하지 않고 열심히 놀아!라는 마인드가 강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놀지 않았을 뿐인데 과탑이 됐다.) 그때부터 성적 장학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고 한 학기를 제외하고는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해결했다.
4.5 만점을 받았는데도 학년이 어리다는 이유로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한 그 한 학기도 과외를 해서 분납으로 등록금을 냈다. 그게 내 나름대로의 책임감이었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게 내가 애써질 무게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동생들이 '언니가 통금시간을 다 너무 잘 지켜서 내가 고생했잖아’ ‘누나가 너무 잘해서 기대가 높아서 힘들었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아, 내가 왜 그랬는지 얘네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엄마 아빠가 정해준 규칙을 잘 따른 이유는 첫째가 모범을 보여야 동생들이 잘한다는 이유를 귀에 박히도록 들은 영향이었고, 내가 대학교 때 학점을 열심히 받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래야 내 등록금대신 너네의 학원비로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건데. 서운했다. 그리고 그 대화를 몇 번 더 겪고는 나도 말해줬다. 이런 이유였다고. 그러고 나니 동생들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부모님도 부모는 처음이니까, 그때는 지금과 같은 이런 정보가 이야기가 없었으니 그러셨을 거란 생각을 하긴 한다. 그래도 이런저런 이유로 고정관념적인 'K-장녀'의 이미지는 내 자아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런 경험들이 나를 ‘모범생’으로 길러냈고, 내게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남았다.
그리고, 이런 무게들이 버거워졌다.
그때, 내게 미국 박사 유학이라는 옵션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