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한 첫 반항이 미국유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커오면서 여러 가지 소소한 반항을 했겠지만 대체로 큰 결정은 부모님의 의견과 다르지 않았거나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면서 자랐다고 생각한다. (물론 엄마아빠의 기억은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미국 박사유학을 부모님은, 특히 아빠는 찬성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나는 유학을 준비하고 싶었었고, 다행히 우리 과는 과외를 구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그렇게 과외비로 생활비랑 유학준비 비용을 마련했다. 박사과정 유학이 풀펀딩을 받기 때문에 돈이 많이 안 든다고 말하고 그 말에 동의하지만, 내가 가장 돈이 많이 들었던 때는 유학을 준비할 때였다. 나는 유학원을 쓰진 않고 혼자 준비했음에도, 토플 GRE학원비가 만만치 않았다. 학원비뿐만 아니라 매번 20만 원, 25만 원이 넘는 시험비용도 부담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영어성적들이 마무리되어야 하는 시기에도 성적이 마무리되지 않아, 학원을 무리해서 다녀야 하는 달이 있었다. 아빠한테 20만 원만 보태달라고 했다. 다음 과외비 들어올 때까지 며칠만, 빌려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아마 유학 가는 게 마음에 안 드셨기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지금도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학원이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되었으려나 싶지만, 그때는 그 학원을 못 다니면 큰일 날 것 같아 발을 동동 굴렀다. 당시에는 심지어 학부도 졸업하고 무소속 백수 신분으로 유학을 준비를 할 때라 신용카드도 만들 수 없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체크카드에서 30만 원 정도 미리 빌려 쓸 수 있는 신용카드 비슷한 하이브리드 카드가 있길래, 그 카드를 신청해서 학원비를 냈다.
그때는 정말, 서러웠다. 많이 울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하는 감정이 든다.
다행히도 그 뒤로 미국 박사과정에 붙었고, 그때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고 내 선택을 받아들여주셨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첫째 딸, 큰 딸"이라는 무게로부터 좀 자유로워졌고, 그냥 '나'를 들여다볼 기회가 됐다. 여전히 그 책임감과 무게를 다 내려놓지는 못했겠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역할들이 많아졌고, 또 내가 떨어져 지내는 시간 동안, 동생들이 사회인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무게들이 분산이 되었다는 걸 이번에 한국에 들어와서 많이 느꼈다.
커 갈수록 원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건강한 관계라고 한다. 글쎄, 지금도 원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리고 한국 정서에서 그게 쉽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원래는 사춘기에 반항을 해가면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는 것이라던데. 사춘기에 엄마아빠에게 반항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차가운 하지만 말은 잘 듣는 딸이었다. 유학 가서 몇 년 안 됐을 때 동생이 ‘언니는 이걸 다 어떻게 그 어렸을 때부터 감당했어?’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가 지고 있던 무게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기도 했고, 조금은 인정을 받은 거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거리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떨어져 지내는 동안 각자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게 됐고. 처음엔 반항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어쩌면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