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오퍼레터 사인 후 시작된 진짜 고민
어떻게 혼자 미국에서 박사를 따왔냐고, 어떻게 그 생활을 했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연고도 없고 가족도 없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스레드에서도 스쳐 지나간 글에서 박사학위를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했듯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다.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들 덕분에 미국생활을, 박사과정을 끝낼 수 있었다.
아무 연고가 없는 미국에 가야 한다는 고민은 4월 12일쯤, 오퍼레터에 사 인하 고나서야 시작했다. 친척 중에도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사촌들 중에도 국내 대학원조차 진학해 본 사람이 없었다. 해외생활 그리고 대학원 생활 콤보라는 도전이 내 눈앞에 뚝 떨어졌다. (물론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그런 기분이었다.)
다행인 건, 처음부터 도와주신 분들이 계셨다. 학부 교수님 한 분이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수학과 한국인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러시곤 행동력 넘치시게 바로 연구실에서 그 학교 학과 홈페이지를 검색하시더니 이름 기반으로 한국인을 찾기 시작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내 입장에서 한국인 이름스럽다고 생각한 이름이 한국인이 아닌 경우도 있거니와, 이름이 우리말일지라도 실제로는 한국 문화가 낯선 한국계 미국인일 수도 혹은 또 상상하지 못한 다른 가능성일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았다.
교수님과 함께 몇몇 ”한국인 추정“ 학생들의 이름을 찾았고 그중에서 사진을 업로드해 두신 분들도 있었다. 교수님이 한 분을 골라주시고는 “이 분한테 연락해 보자!”라고 정해주셔서 며칠을 고민하다 교수님 픽을 믿고 나는 그 한국분,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교수님은 크리스천이시지만, 그 순간에 사진을 통해 교수님 나름의 관상을 보고 고르셨다고 기억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돌아오는 9월 XXX 수학과 박사과정으로 입학하게 될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연락을 드리는 것이 실례일까 봐 몇 번 망설였지만 궁금한 것이 있어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 (생략) “
(실제로 내가 쓴 이메일의 일부인데, 쭉 다시 읽어보니 지금의 나보다 확실히 한국말을 잘하는 것 같다.)
이메일에 그 선배는 감사하게도 빠르게 답장을 주셨다.
”지혜 씨,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안 그래도, 이번에 한국인 후배가 오는지 궁금했었는데, 지혜 씨가 오시는군요!”
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 아주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과 내 한국인 중 가장 선배였고, 마지막 학기를 보내시느라 아주 정신이 없으셨을 상황이었을 텐데도, 선배는 내게 친절한 답장을 주셨고 당시 수학과에 있던 모든 선배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셨다. 그리고 나도 아직 모르던 한국인 동기와도 연결시켜 주셨다.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 친절한 이메일을 받고 아주 조금 빛줄기가 보이는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꽤 긴장했어서, 선배의 이메일에 내가 한 답장에는 “긴장하고 있었는데 친절한 답변을 주셔서 감동받았다”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긴장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친절한 답장이 와서 마음이 놓였기 때문일까. 염치를 불구하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 그리고 선배는 아주 친절히 내가 모르던 정보들도 알려주셨다. KSO라는 한국인학생회들이라던가, 아니면 그 해 출국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출국자 모임들이 있다는 것도 그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결국 둘 다 나가보지는 않았다. 낯가림이슈... 그리고 요새는 오픈카톡방이 활발한 것 같은데, 그때는 오픈카톡방의 극초기라 아직 활성화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 외에도 한국인들이 어떤 아파트들을 주로 계약을 많이 하는지, 그 아파트들의 가격은 어떻고 이유는 어떠한지 아주 자세하게 써주셨다. 받게 되는 Stipend는 세금을 제하면 어느 정도 되고, 그 정도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초기비용은 얼마나 가지고 가셨었는지 등등... 여러 정보를 기꺼이 나누어주셨다.
나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현지에서 사는 사람, 그것도 박사과정을 거의 다 끝낸 사람과 직접 이야기하면서 얻는 마음의 안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학교와 첫 인연이었던 이 선배는 집을 구할 때에도 엄청 큰 도움이 되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