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를 읽고…….
1. '무기력'이라는 단어만큼 내게 어울리지 않는 말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게도 극심한 무기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난 그때 여러번 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무기력을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는 상태'라고 했는데 그때의 내가 딱 그 상태였다.
하고 싶은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눈이 떠지니까 눈을 뜨고,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고, 학교에 가야 하니까 가고, 집에 와야 하니까 오는 것일 뿐이었고 잠이 들 때마다 제발 아침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곤 했었다.
2. 여러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어떻게든 죽고 싶었고, 운좋게 '과로사'를 목표로 하게 되면서 인생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죽을 정도로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20대 초반의 창창한 나이에 어떻게 과로사를 하겠는가?
하루이틀 정도는 잠을 안자도 버틸 수 있었고, 온갖 근육통도 죽은 듯이 뻗어서 자고 일어나면 풀려버리던 때인데 말이다.
그 흔한 코피 한번 흘리지도 못하고 달리던 나는 결국 능력자가 되었고 가는 곳 마다 사장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존재(?)가 되었다.
3. 많은 칭찬을 받고, 인정도 받고, 생각보다 돈벌이도 쏠쏠하니까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은 없었다.
전에 비해서 일은 잘했고, 전에 비해서 많은 능력이 생겼고, 전에 비해서 인정도 받게 되었지만 무기력한 것은 여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군대 제대하고 난 뒤 얼마 후에 내 회사를 차려버린거다.
아주 제대로 과로사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이왕 하는거 돈이라도 화끈하게 더 벌어보거나, 밤에 놀 때도 이왕 노는거 더 미친 듯이 놀아보자는 마음이었고, 더 크게 저질러야 폭주기관차가 망가지거나 엔진이 터져서 폭발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사라진 것 같다.
나의 무기력함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느끼게 되는 무력함은 자주 있었으나 무기력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은 항상 산더미 처럼 쌓여 있었고, 어떻게든 주어진 것을 빨리 끝내거나 여유 시간과 여유 자금을 만들어서 해보고 싶었던 것을 또 해보는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으니까......
3. 20대 중반부터 인생상담을 시작했으니 그것도 벌써 20년이 넘은 거다.
그 모든 상담에 제 값을 받았으면 지금쯤 강남에 아파트 하나 살 돈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을 도와줬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상담요청을 해달라고 하면 '왜? 나한테?'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상담을 해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탁을 저버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를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곳에서 상담을 받아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교시설도 가고 점집도 가고 상담센터도 가고 여기저기 다 가봤던 사람들이 나를 붙잡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곳에서 해소가 되지 않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칠 것 같아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그리고 왠지 나라면 말도 안되는 처방(?)이라도 화끈한 걸 줄 것 같아서.......
4. 그래서 상담도 내 쪼대로 했다.
심리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담이 배워지는 것도 아니었고 내담자 중심의 상담법 같은 건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내 맘대로 했다.
공감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하고 최대한 다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고 다른 관점에서 인생을 살아볼 수 있도록, 나같으면 어떻게 할지 이야기 해주는게 유일한 내 상담 방식이었다.
그게 엄청 인기를 끌었던 거다.
난 분명 공감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줘서 고맙다며 엄청 울며 감동을 하고 다음에는 친구를 데리고 왔다.
두어명이 수십명이 되고 수백명이 되고 수천명이 되고 수만명이 되서 열심히 배우려고 하지 않는 학생들은 2만명 넘게 잘라버렸는데도 우리는 3천명 가까운 정예 멤버가 있을 정도로 (오프라인에만 400명이 넘게 움직였을 정도로) 세력이 커지고 말았었다.
(유튜브가 있던 시절이었으면, 내가 자청보다 잘 됐을꺼라고 아내가 말한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해보라는데…. 쩝…..)
그러니 뭐 더더욱 무기력함과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철학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돈 좀 만졌다는 어린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떠들어대며 살았던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숨이 푹~ 쉬어지지만......
그래도 죽는 것 보다는 그렇게라도 살아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이후에라도 개과천선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짐승 같았던 나를 조련해서 인간으로 만들어준 아내에게 평생동안 내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서 충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5.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게 상담을 요청해왔던 사람들을 보면 기가막히게 발견되는 패턴이 있다. (내담자 중 90%)
첫번째, 하고 싶은게 딱히 없다.
두번째,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꼭 던진다.
세번째, “저는 못할 것 같아요.” 라는 말을 꼭 한다.
(제이든이니까 할 수 있는거 아니에요? 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들을 상담하면서 나는 억장이 무너지고 미치고 팔딱 뛴다는 동일한 패턴을 20년째 유지하고 있는데 흥미로운건 매운맛으로 강연을 하고 상담을 할수록 인기가 더 좋았다는 거다.
20~30대 때의 난 그들에게 욕 아닌 욕도 정말 많이 했다.
쓰레기 같은 마인드 좀 갖다 버리라고,
10년 뒤에 지금이랑 똑같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당신이 그대로면 주변 사람이 미친다고,
제발 기저귀 좀 떼고 부모로부터 떨어지라고..:…
하지만 신앙이 생긴 뒤로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격이 유들유들 해진 뒤로 주변에서는 내 맛을 잃었다면서 그때로 돌아가달라고 얘기 하기도 한다.
나도 그 맛을 되살리고 싶은데 그때는 무진장 분노했고, 지금은 그 분노가 거의 다 사라져서 어찌 살려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 마음의 평정심은 유지한 상태에서 그 맛만 되살리는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6. 이 책의 서두에 ‘신경증을 당연하게 달고 사는 현대인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다른 사람의 히스토리를 자주 듣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하도 많이 보고 듣고 살다보니 이제는 자세한 자초지종을 듣지 않고 다른 얘기를 나눠도 보이는게 있고 느껴지는게 있다.
상대에 대해 주로 관찰하게 되는 부분은 ‘불안요소’와 ‘회피요소’를 파악하는 것인데 불안요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도 회피요소에 대해서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대화를 많이 나누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실꺼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컨설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디자인을 하기 위해 인터뷰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걱정되는 부분은 어렵지 않게 이야기 하지만 자신과 조직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급하는 걸 꺼려하는 영역은 좀처럼 이야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걸 캐치해내야만 큰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거!)
동일한 주제에 대해 불안과 회피가 함께 작동하는 경우도 많다.
불안하기 때문에 말은 하지만 회피하고 싶기 때문에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속으로는 불안해서 미칠 것 같지만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송두리째 외면하고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그것을 끄집어 올려서 직면해야만 풀리는 영역이 있고,
직면한 이후에도 한발을 힘차게 내딛기 시작해야만 열리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끌어주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발견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
본인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발견하고 있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불쾌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이 대화 속에서 이미 수차례 내비췄고 행동으로도 보여줬고 여러번 확인차 던진 질문과 제스추어에도 동일한 반응을 보여놓고 대놓고 말해주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말그대로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속이 답답해지곤 한다.
7. 안정형을 제외하고는 크게 불안형과 회피형으로 나눠서 관찰하고 있긴 하지만 100% 불안형과 100% 회피형은 있을 수 없다.
51% 이상이 한쪽 유형일 수는 있으나 그 외의 영역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한사람에게 여러 면이 있다고 보기 보다는 한사람 안에 여러가지 인격과 취향이 있다고 보는 것을 선호하고 있고 ‘멀티페르소나’ 라는 키워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페르소나를 분리하는 것의 장점은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다는 점과 죄책감에 빠져드는 정도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사건사고에 대한 정황을 파악하고 원인과 이유를 파악하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그 페르소나의 정체를 쭉 풀어나가다보면 자신이 스스로 그 페르소나를 이해하고 안아주고 성장시켜줄 수 있는 시작점을 발견하게 된다.
한 사람 안에 있는 여러개의 페르소나 중에는 건강한 녀석도 있고 건강하지 않은 녀석도 있고 안전형, 불안형, 회피형 등이 골고루 포진해 있을 수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 있는 ‘사회적인 나’가 어떤 형인지 그리고 ‘일반적인 나’는 어떤 형인지, ‘비밀스러운 나’는 어떤 형인지 파악이 된 뒤에야 비로소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데 수월해질 수 있다.
8. 난 무기력한 사람을 ‘모든 것으로부터 회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인 나는 학습된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성실하고 밝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때 가장 중요한 질문이 정말 좋아하는게 있는지, 그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라도 하고 있는지, 지금의 일은 좋아하는 일에 속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에리히프롬의 마지막 조교 라이너풍크가 에리히프롬의 글을 다시 엮어서 만든 책인데 작금의 대한민국의 실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에리히프롬은 1900~1980년을 살아간 인물이고 라이너풍크가 이 책을 엮어서 낸 시점도 2000년인데 2022년에 읽어도 전혀 옛날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본능은 수천년 전에도, 지금도, 수천년 뒤에도 똑같을 수 밖에 없다는 점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본질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길 바라고 만족하길 바라고 활력이 넘치길 바란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는 얘기 아닐까?
이 책에서는 무기력을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다.
“무기력은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능감이다.”
에리히프롬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메타인지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메타인지가 높아지는 것이) 무기력을 벗어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의 기본 문제, 즉 모든 심리적,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문제’들이 뒤엉켜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지점에서 내가 나름대로 정리해놓은 메타인지강화법이 상당히 유의미 있게 느껴져서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9. 메타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로 본질에 대한 이해
두번째로 자신에 대한 퍼스널컬쳐코드 정리
세번째로 자신에 대한 시간기준역량 파악
첫번째,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본질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바운더리, 벗어날 수 없는 기준을 이야기 한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우리는 언젠가 필히 아프고 분명히 죽는다와 같이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리,섭리 등을 이야기 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이해와 납득이 선명해야만 그 기준에서 나의 각각 요소들이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왜 벗어났는지, 누구로 인해 벗어났는지, 어떤 사건사고가 있었는지, 지금부터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두번째, 내 개인의 역사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기억할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시점별로 벌어졌던 사건사고를 떠올리고 그 시점별 감정을 기억해내고 기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정리일 뿐이다.
설혹 확증편향으로 인해 일부분 왜곡하고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왜곡이 본질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확인하며 지금 이 순간부터 미래로 향하는 길은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선택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으면 된다.
세번째,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제각기 몇시간 짜리인지 정확하게 정리 되는 것이 필요하며, 시간을 기준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 역량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며 내가 평상시에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집중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시간관리, 집중력관리, 휴식관리 등이 자연스럽게 카테고리별로 나뉘게 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게 아닌거다. (제발! 쫌!)
내가 알고 있는 선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나를 알기 위해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을 필히 명심해야 한다.
이 세가지가 한번에 알게 되고, 정리가 되진 않지만, 알면 알수록, 정리가 되면 될 수록, 나의 위치와 영역 알게 되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고,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용기' 내어 그 다음 스텝으로 한발 내딛기만 하면 된다.
(이때는 그 길을 응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같은 도전을 하고 있거나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의 응원이 더 좋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꺼라 생각한다.)
10. 자기 쪼대로 사는 사람 중에도 두가지 유형이 있다.
본질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 상태에서 쪼대로 사는 사람.....
그들은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 성향을 존중 받기만 바랄 뿐이다.
자기 동굴에서 살다가 본인이 원하는 만큼만 사회에 나와 어울리고 다시 들어가겠다는 건데 개인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이 구분되고 밸런스를 맞출 수 있어야 하고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맞지만 그런 자신이 본질과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라면 '건강한 변화와 성장'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배우자와 자녀에게도 아무런 공동체적 방향성을 제시할 수 없다.
적정 포인트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갈 경우 계속해서 모순이 발견 될 수 밖에 없다.
반면 본질에 대해 지속적으로 더 깊이 알려고 노력하면서 그 방향으로 살아가기 위해 쪼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에리히프롬을 비롯해 고금동서의 수많은 철학가들과 심리학자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삶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어 그런데 하기 싫어
할 수 있어 그런데 할 수 있을까
가고 싶어 그런데 가기 싫어
혼자 있고 싶어 그런데 함께 있고 싶어
내 맘대로 하고 싶어 그런데 모두의 마음에 들고 싶어
사랑은 아파 그런데 사랑하고 싶어
우리의 감정은 이런게 너무나도 당연한거다.
그냥 이중인격은 기본 장착이라고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 우리가 가장 갈등하고 있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하면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내 마음대로 하면서 함께 하고 싶어."
내 쪼대로 하고 싶은 것과 함께 하는 것의 밸런스.
난 그것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 길'이며 개인이 브랜드가 되고 그 브랜드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본형이라고 생각한다.
11. 상담에 대한 고민은 항상 반복 되고 있다.
특히 내가 하는 상담 자체가 일반적인 상담과는 많이 다르게 해결중심상담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사정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록 효과가 좋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면 안되는데.....)
당연히 슬프고, 괴롭고, 아프고, 덩달아 환장할 수 밖에 없다.
당장 남편놈을 쫓아가서 쥐어박고 싶고, 동료를 쫓아가서 귀싸대기를 날리고 싶은 마음이 훅 올라온다. (폭력을 싫어하지만 상상은 한다. 성인군자 아님)
내가 뭐라고 남의 인생에 이렇게까지 관여를 하나......
내가 뭐라고 이렇게 남에게 왈가왈부 하나......
그냥 프로덕트만 다루고, 돈벌이 이야기만 하면서 편하게 살아가면 되지......
뭐 이렇게 피곤하게 살려고 하나......
뭘 그렇게 사람들을 일일이 신경 쓰려고 하고 남의 집 아이들에 신경을 쓰고 대의 정의 같은 걸 따지는 건지..... 성인군자라도 되고 싶은 건가?
내면에도 외면에도 과거도 지금도 구석구석에 지저분한 생각들도 많이 있는 나인데.....
나도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고, 성장하는 중인데 뭐 그렇게......
최근에도 몇몇 사람에게 들었던 표현대로 나는 '위선자'인가?
뭐~ 나를 띄염띄염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욕망덩어리인 나의 면모를 보고, 사람들을 케어하려는 나의 면모를 보고 그것을 간단하게 연결하면 사람들을 통해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사람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뭐~ 사람을 띄염띄염 보면서 판단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본인들이 깨달을 때까지 그냥 그렇게 사시라고 하는 수 밖에......
'엄청 외로울텐데...... 공허할텐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들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다.)
12.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네가지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 시점의 모습(Dot)만 보는 사람,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미래로 이어지는 선(Line)을 보는 사람,
그 선과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선들이 이루고 있는 면(Area)을 보는 사람,
그 면들이 이루어나가게 되는 공간(Space)를 보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Dot만 보는 사람은 그 시점의 사건사고에만 집착한다.
Line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을 이해한다.
Area를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을 더 깊이 알 수 있다.
Space를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의 꿈과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상대방의 Space를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Area를 보는 사람이 되고 싶고,
최소한 Line을 보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Dot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특정 지점에 멈춰 세운채 그 지점의 비디오만 반복적으로 틀고 있거나 그 지점에 말뚝을 박고 족쇄를 채운 상태로 뒤돌아서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10명을 도와주면 절반은 도망간다.
남은 절반 중 절반은 족쇄를 풀지만 잘 걷지는 못한다.
그 중 절반은 걷기 시작한다.
그들의 걸음마를 보는 순간은 마치 내 아이들이 걷기 시작했을 때와 같은 감동을 준다.
오직 돈벌이 때문에 상담을 한다면 진작에 때려치웠을 것이다.
욕하고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크고 길었다면 당연히 때려치웠을 것이고,
족쇄를 풀고도 걷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먹은 고구마에 체했다면 당연히 때려치웠을 것이다.
열명의 한명, 백명의 한명이 보여주는 그 걸음마......
그 걸음마가 주는 감동, 그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렇게 걸어가다가 뛰어가고 엄청난 성장을 이룬 뒤에는 나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99%다.
자신의 찌질한 삶을 모두 다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엄청나게 불편해 하는 것 같다.
사회적 성공을 이루고 돈도 잘 버는 경우는 아예 문자도 받지 않는다.
왜지? 내가 돈 빌려달라고 할 것 같은가???
그런데도 계속 이 길을 걷는 것은......
정말 그 걸음마 하나에 꽂혀 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p.s
이런 글을 쓰고 나면 상담이 늘어난다.
그런데 가끔 정신과전문의를 찾아야 할 것 같은 난이도가 찾아오곤 한다.
그건 내가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물론 메타인지가 떨어지는 경우 그런 판단도 어렵겠지만 신경증은 마치 감기와도 같은거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심한 경우는 독감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고.....
병원에 가서 전문의와 대화 나누는 것을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전문의와 함께 하고, 성장을 하고 싶을 때 나를 찾아주길 바라고 있다.
제이든 / 슈퍼제너럴리스트
커뮤니티디벨로퍼 & PFC브랜드액티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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