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 테마파크편
#제대로놀기 #전문적으로놀기 #놀이가일이되는게최고다 #메모의중요성 #만화 #고졸의약진
1. 내 인생에 첫 땡땡이는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학교 앞 24시간 만화방에 가기 위해 난 거짓말을 하고
아침 일찍 등교길에 올랐다.
얼마 안되는 돈을 내밀며 한권만 보겠다고 해놓고,
서서 고르는 척 하면서 여러권을 보는 나를 모른 척 해주었던 천사 같은(?) 아주머니가 기억난다.
그러다가 학교에 여러번 지각을 하는 바람에 혼도 많이 났고 내 학창시절의 유일한 상인 개근상을 놓칠 뻔 했던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무렵 만화를 볼 때 마다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아..... 만화를 보는게 일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메모를 열심히 해야만 했다.
뭐든 무서운 속도로 잊어버리고, 기준이 뭔지 모를 상황들만 기억하는 내 머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심각하게 고장이 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만화를 보면서도 메모를 했다.
멋진 대사, 멋진 감동, 그런 순간을 역시 멋지게 기억하고 싶었지만,
난 감동적인 순간까지도 잊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기억력의 소유자 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3. 만화를 많이 봐서인가......
이상한 발상을(?) 많이 해서 머리를 신선하게 만들어주는 재주를 가졌다며 여기저기에서 불러대곤 했었다.
20대 였지만 나도 명색이 인테리어디자인회사 사장이었는데 마치 일을 줄 것 처럼 불러서는 신사업회의에 스리슬쩍 참여 시켜서 떠들게 만들어 놓고는 밥 한끼나 술한잔으로 때우는 형들이 참 많았다.
그래도 고마웠다. 정말 쟁쟁한 학벌의 소유자들이 내 얘기를 메모 하거나 녹음을 따고 있는 장면은 왠지 나를 뿌듯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돈 안주면 그런데 따라가선 안된다며 호구짓 좀 그만 하라고 걱정(?) 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혼란스러웠지만......
간혹 보면 묘한 사람들이 있다.
마치 나라는 인간의 사용매뉴얼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한 사람들...... 그들은 내가 아무리 오지랍을 꽁꽁 싸매고 있어도 여지 없이 해제 시키곤 했다.
4. 지인의 건축사사무소에 놀러갔을 때였다.
강원도 모처에 테마파크를 준비 하고 있다는 사람들과 건축사들이 한데 모여서 신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순수하게 밥먹으러 갔던 자리라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귀만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아이들 놀이문화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오로지 돈욕심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다시 한번 오지랍에 발동이 걸린 나는 그날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럼 이사장이 한번 기획 해볼래요?"
돈이 없는 관계로 건축사에게 비전을 열심히 설득하던 개발상이 갑자기 툭 던지듯 제안을 했고, 어차피 그 장단에 놀아날 생각도 없고, 아이들 정서를 잘 알지 못했던 담당 건축사는 할 수 있으면 하라는 눈치를 건넸다.
그게 내 첫 테마파크마스터플랜 프로젝트......
겨우(?) 첫만원에 두달 동안 다른 일도 못하고 끙끙 대면서, 운영하던 인테리어사무실 직원들의 원성을 한껏 감내해야 했다.
5.성공적으로 마스터플랜이 나오고, 투자결정이 났던 날, 회식 자리에서 한 사람이 돌발질문을 던졌다.
"이사장님은 어느나라에서 MBA 나오셨어요?"
'M......MBA?' 당황스러웠지만 그럴 때에는 직진이 편했다.
"저 MBA는 커녕 최종학력은 고졸 입니다. 하하하..."
회식 자리 모두가 날 쳐다보는데 전부 같은 입모양을 하고 있었다.
'헤엑!!! 고졸???' 이런 입모양(?)
또 질문이 날라왔다.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하셨길래 이런 아이디어들을 낼 수 있는 건가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볼, 북두신권, 원피스,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포트리스..... 등 입니다."
대부분 뭔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일 때 그나마 가장 젊은 축에 속했던 분이 "만화나 게임 제목 아닌가요? 어디선가 들어봤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라고 말씀 하셨다.
"네, 그런 공부를 열심히 하셔야 이런 기획을 하실 수 있는 겁니다."
내가 말하면서도 너무 웃기고 재미 있었다.
6.그 후로 오랜시간이 흘렀고, 난 올해 43살이 되었다.
20대 후반에 건설사업에 회의감을 느낀 뒤로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던 테마파크개발사업.
작년부터 시작된 다양한 조짐들이 한데 합쳐지면서 난 어느새 테마파크개발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하지만 "왜 저 입니까?"라는 나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을 듣고 있자면 내가 듣기에도 난 마치 지금까지 테마파크기획자가 되기 위해 차근차근히 인생을 만들어온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난 어느새 '프로그래머'라고 불리고 있고, '테마파크PM'이라고도 불리면서, 한국과 중국에서 여러 업체들을 소개 받고 있고, 신중하게 프로젝트를 선정해나가고 있다.
7.요즘 만화를 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한 2년 정도는 아주 조금 멀어지는 듯 했던 만화와 요즘 들어 다시 가까워 지고 있다.
그리고 이젠 이게 내 일의 일부이다.
어린시절 수업 땡땡이 치고 만화책 뒤적이던 그 꼬마가 잠시 꿨던 꿈이, 20대에 잠깐 현실이 되었고, 영영 잃어버린거라 생각했던, 아니 그 후로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때의 꿈은 올해 다시 현실이 되었다.
8.아주 잠깐동안만 허락된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놀이가 일이 되는 경험은 항상 그러했듯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신나게 만화책을 보면서 일을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열심히 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