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냉정해지기를 강요 받는가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다고 이야기 합니다.
행복하지 않다며 슬퍼하고, 행복할 수 없다며 괴로워 합니다.
불행으로 가득한 표정을 갖고 있는 노인들, 장년들, 청소년들......
모두가 불행한 얼굴을 한 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세대가 아무리 다르다해도 본질적인 고민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살아왔던 시대의 환경이 조금씩 다르고,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일 뿐,
모두가 세가지 고민을 이야기 합니다.
내 자신의 정체성, 다른 이와의 갈등 그리고 비즈니스.
이렇게 세가지를 벗어난 고민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
저는 이 세가지가 사서삼경 가운데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수신제가치국'에 대한 영역을 뜻하는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에 해당하는거죠.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수신의 기준, 제가의 기준, 치국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점인데요.
기준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내 정체성을 결정하고, 나를 바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가정으로 확장이 되고, 주변으로 확장이 되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신도 제가도 치국도 모두 엉망이 되어 버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
저는 그 '기준 확인'을 상담의 시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건강한 나에 대한 정의, 나다운 나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지금의 자신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부모란 어때야 하는가, 자녀란 어때야 하는가, 형제란 어때야 하는가를 물어보고, 친구에 대해서도, 직장동료에 대해서도, 상사에 대해서도, 직원에 대해서도 각기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어때야 하는가를 물어봅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 기준의 근거는 어디에서 온건가요?"
/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대답을 합니다.
이구동성으로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라고 대답을 하죠.
표현은 제각기 다르지만 그들의 대답은 모두 '대중들의 시선', '대중들의 행동', '대중들의 선호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대답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달라봤자 바라는 수준이 조금 다르거나, 색상이 다르거나, 브랜드가 다르거나, 시점이 다를 뿐,
모두가 같은 틀 안에서 찍어낸 것과 다를 바 없는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어느 순간 나는 없고, 대중만 있습니다.
내 시선은 '내가 생각하는 대중의 시선'이라는 프레임을 거쳐서 가족을 바라보고,
친구를 바라보고, 동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시선에 따라 상대방을 판단하고, 손가락질 하고, 정죄하고, 뒷담화를 하면서 그런 행동들이 한데 모여 한층 더 변형된 대중의 시선이 되고, 그 시선은 누군가의 시선을 또다시 뒤덮어 버립니다.
/
그런 대중들의 시선 속에서 일부는 그 시선을 조종하는 기술을 익혀 자기 마음대로 주변을 끌고 가려 하고, 일부는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을 추종하며, 일부는 그 상황에 마지못해 순응하고, 일부는 그 상황을 탈출하려 노력합니다.
환경은 계속 변질 됩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기준인지, 누가 만든 기준인지, 무엇을 위한 기준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계속 변질 되면서 증식해 나갈 뿐 입니다.
결국 그 피로감에 지친 사람들은 그 시선들을 송두리째 무시하게 됩니다.
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동료들을 무시하고,
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무시하고,
결국 그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나 자체를 무시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무시하고, 모든 것에 무관심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일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의 시선에 나를 맞춰보겠다고 부단히 쫓아다니는 것도 지옥 같은 고통인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어차피 동일한 고통,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판단이 서는 것도 무리가 아닌거죠.
/
이처럼 기준이 흐려져 버린 세상을 살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선명한 기준을 가진 사람을 찾아 다니게 되는데요.
그를 알려고 하고, 그에게 배우려고 하고, 그를 따르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교만해지고 변질 되어 버린 그에게 실망하게 되고 상처만 가득 안은채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
저도 마찬가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동안 정말 많은 시간을 낭비했고, 정말 많은 돈을 낭비했고, 정말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습니다.
채우려는 노력을 하면 할 수록 오히려 속이 텅 비어져 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온갖 고통과 공허함으로 가득할 뿐......
현실을 잊기 위한 기술만 늘어나고 있었죠.
그때를 떠올려보면.....
잠깐의 생각만으로도 극심한 고통이 밀려옵니다.
어떻게 그런 삶을 하루하루 살았던 것인지 지난 날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불쌍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
제가 내담자들에게 조언 드리는 것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잠시 나에게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 것' 입니다.
인간의 몸에 대해서는 인체생리학을 공부하면 되겠죠.
마음과 정신에 대해서는 심리학 공부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신학공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를 훨씬 더 객관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줍니다.
나를 벗어나 대중들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구체적인 정보,
인간의 뇌가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우리는 어떤 환경에 영향을 받는지,
우리는 어떤 맹점을 가진 존재인지, 고금동서를 통틀어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류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본질에 대해서 파악을 해보는 거죠.
그렇게 대중의 시선이 아니라, 본질의 시선을 회복하는 겁니다.
우리가 바라 봤어야 하는 나, 우리가 바라 봤어야 하는 옆사람, 우리가 바라 봤어야 하는 세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하나하나씩 알아가는거죠.
/
처음에는 엄청난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그것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동안 쫓던 대중들의 시선이 얼마나 형편 없는 기준 속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것을 쫓아다니고 있던 내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합니다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고,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내 자신을 이해해주고, 용서해주고, 불쌍하게 여겨주고, 안아줘야 한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 자신부터 회복하고 난 뒤, 그 시선으로 바로 옆사람을 바라보게 되는 것....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부질 없는 것들만 쫓아다니고 있는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다가가서 보듬어 주는 것, 함께 울어주는 것, 함께 머물러 주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는거죠.
/
제가 누누이 강조하며 가장 주의 시키는 것은 '절대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 인데요.
이 대목에서 내담자들이 적잖이 놀라곤 합니다.
저희 부부가 엄청나게 사이가 좋지만, 저는 아내를 절대 믿지 않고, 아내도 저를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 드리거든요.
저희와 좋은 관계가 형성될수록 더 자주 말씀 드립니다.
절대로 저를 믿어서도 안되고, 제 아내를, 그리고 저희 부부를, 그리고 여러분이 서로를 믿어서도 안된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 드리곤 합니다.
/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사랑해줄 존재라는 것.......
사람은 변하고, 쇠하고, 사라지는 약한 존재라는 것.....
육체도, 정신도, 마음도 너무나도 연약하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더 빠른 속도로 나약해지는 '한정적인 삶'이 주어져 있음을 인정하고,
주어져 있는 시간 동안 보듬어주고, 아껴주고, 지켜주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삶의 자세'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알고자 했던, 우리가 갖고자 했던,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행복의 끝자락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
온 세상이 이야기 하는 '신뢰'라는 것은......
인간의 절대적인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관계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조직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
그래서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관심 속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무관심 속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