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각진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랜드부스터 켄 Mar 07. 2023

위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10가지 이야기

1.

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유교 문화, 사대주의, 외세의 침략, 일제강점기 등을 이유로 조선을 평가절하한다. 사실 조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단한 국가다. 조선은 전근대 모든 국가를 통틀어 가장 선진화된 통치력과 행정력을 자랑한다.


특히 권한을 위임하여 예비 리더를 양성하는 제도는 눈여겨 볼 만 하다. 조선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은 임금이 왕세자에게 대신 정무를 위임하는 제도다. 보통 왕의 건강이 약화되었을 때 시행되었다. 태종, 문종, 인종, 광해군, 효종, 경종, 영조, 사도세자,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경험했다.


대리청정은 다음 후계자가 왕위를 이었을 때 자연스럽게 왕의 업무를 감당 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효과가 있다. 이 제도 덕분에 조선은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안정적으로 통치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리더가 그렇게 중요한데도 예비 리더를 양성하는 그럴듯한 체계 하나 없는 대한민국 기업과 비교한다면 조선이 옛 국가라고 마냥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리더십 관련 책 판매량이 항상 자기계발 카테고리의 상위권이라는 현실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2.

조선의 행정 제도 역시 위임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있다. 태종은 정도전이 만든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 직계제를 운영했고, 반대로 세종은 의정부 서사제를 부활시켰다. 의정부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삼정승이 주력인 기관으로 대한민국의 국무총리 및 부총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6조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이루어진 행정 기관으로 대한민국의 행정각부와 역할이 비슷하다. 6조의 수장인 판서는 오늘날의 행정부 장관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두 제도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보고와 결재 라인의 차이다.


의정부 서사제: 국왕 ↔ 의정부 ↔ 6조

6조 직계제: 국왕 ↔ 6조


한 마디로 임금이 보고 받고 결재하는 대상이 정승이냐 판서냐의 차이다. 강한 왕권을 추구하는 국왕들은 전부 6조의 보고를 직접 받으며 실무를 관장했다. 당연히 6조 직계제에서 정승들의 권한은 극히 적었고 명예직에 가까웠다.


의정부 서사제를 부활시킨 세종은 전문가의 판단력을 존중하여 업무를 전적으로 맡겼다. 황희, 맹사성을 정승으로 삼아 국정을 맡기고 평생에 걸쳐 자문을 구했다.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는 신장에게, 조선 고유의 음악은 박연에게, 북쪽의 국방은 김종서와 최윤덕에게 권한을 통째로 위임했다. 적극적인 위임 덕분에 세종은 한글 창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었다. 조선의 전성기를 만든 세종의 리더십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믿지 못하겠으면 일을 맡기지 말고, 일을 맡겼으면 끝까지 믿으며, 책임을 지워 성취하도록 해야 한다.



3.

충무공 이순신이 수군이 아닌 육군을 맡아도 과연 동일한 전공을 세울 수 있었을까?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방 전략은 제승방략(制勝方略)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터 인근 지역에서 징집된 군사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사이 조정에서 파견된 장수가 이들을 지휘하는 방식이었다. 제승방략은 험준한 지형에 토착민의 기본 전투력이 우수한 북방 지역에는 적합했으나 평야가 많은 남쪽 지역에는 부적합했다.


평소 훈련도 대충하고 땅만 파던 농민과 난생 처음 보는 조정 지휘관 손발 한 번 맞춰보지 못하고 전쟁터에 나가니 패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이 일어난지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는 사이 대패한 이일과 신립은 모두 조정에서 파견된 지휘관이었다.


육군에 비해 수군은 상대적으로 위임도가 높은 편이었다. 조선 수군은 항구와 배가 필요하고 배를 다룰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했기에 주둔군의 전투력이 높았다. 충무공이 자체적으로 거북선을 개발하고 화포 중심의 훈련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작전권도 육군에 비해서는 큰 편이었다.


물론 충무공도 조정의 지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충무공이 왜란 중간에 감옥에 갇혀 고문까지 당한 이유는 조정에서 명령한 출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출정하게 되면 왜군의 계책에 걸리게 된다고 간곡하게 설명했지만 결국 충무공은 관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하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충무공은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에게 승리한 명량 해전을 일구어낸다. 조정의 어떤 견제도 없이,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전쟁을 치른 충무공의 역량이 빛났던 대첩이다. 이 승리로 전쟁의 판세는 뒤집어졌다.



4.

중국 역사상 가장 위임을 잘 한 리더가 있다면 한고조 유방이다. 유방은 재산도 배경도 없는 건달 출신이었지만 다른 단점을 다 덮을 만한 뛰어난 강점 하나가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따랐다.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유방은 전략은 장량에게, 행정은 소하에게, 책략은 진평에게, 게릴라 전은 팽월에게, 원정은 한신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공을 세운 부하에게는 아낌 없이 포상했다. 유방의 라이벌인 항우가 공을 세운 부하에게 포상하기 아까워서 도장을 만지작거리다가 다 닳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통이 큰 유방과 대조다. 유방은 이 강점 하나로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통일했다.



5.

반대로 중국 역사상 가장 위임을 못 한 리더는 촉한의 제갈량이다. 제갈량은 정치, 행정, 국방, 경제 등 한 나라의 모든 국정을 독점해서 처리했다. 신하들은 제갈량의 지시와 결재만을 기다려서 움직였다. 이를 두고 위나라의 사마의는 제갈량의 남을 믿지 못하는 성격은 윗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제갈량이 얼마나 위임을 못하는지 알려주는 일화다. 마속은 총명한 인물이었고 제갈량의 신임을 받았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갈량은 가정 전투에서 마속을 선봉으로 임명했다. 마속은 방어진지를 길목에 세우지 않고 산 꼭대기에 세웠고, 위의 명장 장합은 이를 놓치지 않고 산을 통째로 포위하여 보급을 끊어버렸다. 전략적 요충지인 가정에서 패배한 마속은 책임을 지고 참수당했다.


위임의 조건 중 하나는 피위임자의 능력이다. 권한을 소화할 능력이 되어야 위임의 성공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비가 임종 직전 제갈량에게 마속이 크게 쓸 인물이 못 된다고 알려주었는데도 제갈량은 마속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큰 권한을 부여했다.


개인의 역량은 누구보다 뛰어났으나 남을 믿지 못하고 믿더라도 제대로 된 사람을 알아보지 못제갈량의 한계는 그의 사후드러난다. 별다른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한 제갈량의 실책으로 그의 뒤를 이은 강유는 제갈량의 병법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고 번번히 실패하였다. 결국 촉한은 멸망했다.



6.

피위임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이야기 하나 더. 중국의 전국시대, 조나라는 진나라와 상당 지역을 놓고 전쟁 중이었다. 조나라의 백전노장 염파가 3년 동안 농성하며 장기전을 펼치자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진나라에서 한 가지 계책을 쓴다. '노쇠한 염파가 겁을 먹어 진나라와의 결전을 피하고 있는데, 젋고 패기 있는 조괄이 대신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유언비어를 조나라에 퍼뜨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염파가 싸우지 않자 초조해하던 조나라 왕은 조괄을 불러 진나라를 이길 수 있냐고 물었고 조괄은 허세를 부리며 진나라의 유명한 장군 백기조차도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조괄은 명장 조사의 아들이었지만 입으로만 병법을 말하고 실제 능력은 엉망인 인물이었다. 모든 대신들의 반대를 무시한 조나라 왕은 조괄을 전쟁터로 보낸다.


조괄은 도착 즉시 방어를 풀고 공세로 나섰다. 진나라 계책이 통한 사실에 기뻐하며 명장 백기를 파견했다. 백기는 미끼를 던져 조괄을 유인해서 포위했고 항복을 받아냈다. 투항한 조나라 병사는 무려 40만 명이었다. 백기는 240명만 남기고 수십 만에 달하는 조나라 병사를 생매장시켜버렸다. 이 패전으로 조나라는 급격히 무너져서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게 된다.


위임은 모든 구성원에게 할 필요 없다. 구성원이 일정 수준이 되어야 권한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무에게나 권한 위임을 하면 위험하다. 칼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들어야 유용하다. 자격 없는 사람이 칼을 들면 주변 사람과 자신까지 다칠 뿐이다.



7.

스티브 잡스는 위임의 대가였다. 흔히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나쁜 리더들이 잡스를 인용하는 건 잡스가 제품의 디테일에 집착하는 모습만 보고 오해한 결과다. 물론 잡스는 애플 초창기부터 넥스트 컴퓨터, 픽사에 이르기까지 고집불통에 나사못 하나까지 본인이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애플에 복귀하면서 잡스는 이전과 다르게 분야별로 가장 똑똑한 사람을 활용했다. 운영을 팀 쿡, 디자인을 조너선 아이브, 소프트웨어는 크레이그 페더리기, 하드웨어는 밥 맨스필드 등에게 맡기는 식이다.


그는 명령하는 대신 구성원과 함께 토론하고 그들에게 영감을 제공헀다. 담당자엑 권한과 함께 열정과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잡스는 애플을 컴퓨터 회사를 넘어 최고의 IT 회사로 성장시켰고 전세계의 크리에이터들에게 다르게 생각하는 영감을 주었다.



8.

미국의 서점 반스앤노블(Barnes and Noble)이 부활했다. 세계적으로도 독서 인구가 하락하고 있는 지금 오히려 매장을 30개 더 늘린다고 한다. 팬데믹에도 매출이 늘었다. 방문한 사람들 모두 입을 모아 그동안 알던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 서점을 경험했다고 한다.


새로운 CEO 제임스 던트는 서점은 지역 공동체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스앤노블의 컨셉을 동네 책방으로 정하고 이를 살리기 위해 던트는 모든 서점이 운영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이전과 달리 책의 진열과 재고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된 서점들은 해당 지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공간을 꾸몄고 이 전략은 통했다.


사무실의 경영진이 현장 담당자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9.

자포스(Zappos)는 미국 최대 온라인 신발 커머스 기업이자, 홀라크라시(Holacracy)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가장 진보적인 조직문화로 알려진 홀라크라시는 조직의 목적과 부합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서클'을 조직하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직위의 계층구조가 아닌 역할의 계층구조를 갖기에 모두가 리더이자 팔로워다. 쉽게 말해 '리더'라는 고정된 직책이 없다. 역할에 따라 리더는 수없이 바뀔 수 있다.


홀라크라시는 전통적인 중앙집권형 조직문화와 다르게 분산화된 권한과 역할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위임 이론을 무력화시킨다. 자포스에서는 리더가 구성원에게 위임할 필요도, 구성원이 리더에게 권한을 위임 받을 필요도 없이 스스로 권한을 가질 수 있다.


극단적인 자율과 책임을 추구하는 방식이 수직 체계에 익숙한 인간에게 아직 이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홀라크라시는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던 권한의 흐름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계속 지켜볼 가치가 있다.


자포스의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10.

위임은 권한 사용의 자율을 허락하는 지시다. 모든 권한을 허락하지 않고 일부 권한을 잘라준다는 점에서 위임은 지시의 반대말이 아닌 지시의 일부다. 그래서 위임은 가장 까다로운 업무 지시이기도 하다. 조금만 틀어져도 구성원은 리더가 본인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구성원의 성장에 관심이 없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위임이 성공하려면 피위임자의 역량도 일정 수준을 만족해야 하고 권한의 사용 범위와 구체적인 가이드를 설정해 줘야 하며 마지막으로 과업의 기대 수준을 합의해야 한다.


만약 권한을 구성원에게 위임할 때 단 한 가지만 알려줘야 한다면 그것은 조직의 사명이다. 조직의 사명을 위해 구성원이 스스로 움직이게끔 하는 지시가 최고의 위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의 본능은 <어린왕자>의 저자인 프랑스의 생텍쥐페리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만약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으도록 하거나 일을 지시하거나 일감을 나눠주지 마라. 대신 그들이 저 넓고 끝없는 바다를 동경하게 만들어라.



끝.

매거진의 이전글 위임에 필요한 기획안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