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8일, 당근마켓이 자사의 모바일 앱 서비스 이름을 '당근마켓'에서 '당근'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홈페이지와 소개 영상을 보면 보면우리가 알고 있는 중고거래 외에 동네가게, 알바, 부동산 직거래, 중고차 직거래, 당근비즈니스 등 다양한 지역 기반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다.이개명은 '지역 기반의 중고거래'를 넘어 '지역 기반의 생활 커뮤니티'로 거듭나겠다는 의도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실 이 발표를 접했을 때 기대보다는 아쉬움이 컸다. 크게 3가지 전략의 부재가 아쉬웠다.
첫 번째, 마케팅 및 홍보 전략의 부재다. 발표 자체가 임팩트가 낮다. 개명한 이름을 인지하고 기억하게 만드는게 가장 중요한 목적일텐데, 보도자료 돌리고 유튜브 영상 하나가 전부인 듯 하다. 과연 이 발표가 평소 사용자들이 '당근마켓'으로 부르던 습관을 '당근'으로 부르도록 바꾸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당근은 이 개명을 통해 자신이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업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공익적 이미지를 갖는다는 건 어마어마한 브랜드 자산을 가진다는 의미다. 이 기회는 당근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요리 재료에서 더욱 큰 임팩트를 가지고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지역 사회의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도 해결하지 못한다. 당근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이미지를 가질 수는 있다.설립 초기부터 내세운 '따뜻한 지역 사회를 만들겠다'는 미션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시점에서 당근이 '따뜻한 당신 근처'라는 타이틀의 컨퍼런스를 열었다고 가정해보자. 당근은 컨퍼런스에 경제, 심리, 고용, 건축, 교통, 행정, 자영업 등 분야별 전문가를 모셔오고 지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이슈로 만들 수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의 장 또한 만들 수 있었다.
이어서 당근은 사업 초기에 세웠던 미션과 함께 기존 및 신규 서비스를 소개하면서 이 서비스들이 다양한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대의명분을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었다. 모두 이 컨퍼런스 하나로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새로운 이름, 당근을 발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두 번째, 제품 전략의 부재다. 이 선택이 최선의 의사결정일지 의문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전 작업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다양하게 만들어놓고 그 중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당근으로 개명한 의사결정은 꽤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다른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모바일 앱 하나로 모든 서비스를 총망라하는 전략을 슈퍼앱 전략이라고 한다. 당근은 기존 중고거래로 모아놓은 트래픽을 수익으로 전환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고, 좋든 싫든 슈퍼앱 전략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앱 하나에 모든 서비스를 넣은 상황에서 당근마켓을 당근으로 바꾼건 당연하다. 당연하기에 예측가능하고 예측가능하기에 신선하지 않고 신선하지 않기에 기억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지역 생활 커뮤니티가 '신뢰 거래'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굳이 이름을 바꿔야 되나 싶다. 꼭 돈으로 거래하는 것만 거래가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발전한 이유는 '신뢰'를 거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 사회를 활성화시키려면 금전 거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 거래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이름은 그대로 두되 의미를 다듬은 '신뢰를 거래하는 새로운 지역사회, 당근마켓'으로 진행해도 무방해 보인다. 의미만 다듬으면 되니까 그게 더 투입되는 리소스 대비 효과가 좋다. 특히 첫 번째 아쉬움에서 밝혔듯이 별 임팩트 없는 발표라면 안하느니 못한 느낌이다.
세 번째, 브랜드 전략의 부재다. 미션과 직결되는 브랜드 전략이 없다는 게 아쉽다. 당근마켓은 처음부터 중고거래를 미션으로 삼지 않았다. 애초에 따뜻한 지역 사회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미션으로 시작했다. 이 탁월한 미션 덕분에 중고거래 사업 컨셉이 지역 기반으로 차별화 되었고, 기존의 강력한 플레이어인 전국구 중고거래 브랜드인 중고나라를 압도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지금부터다. 경영진은 중고거래만으로는 미션을 완수할 수 없음을 전망하고 언젠가 지역 기반 서비스를 추가로 다양하게 할 기반을 생각해야 했다. 여기서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 '당신 근처'의 줄임말인 '당근'을 미리 마스터 브랜드로 만들어 놓고 서브 브랜드로 '당근마켓'을 출시했다면 어땠을까? 그게 힘들다면 아예 기업명을 '당근'으로 하고 서비스 브랜드 '당근마켓'을 내놓는 방법도 있다.
이와 비교할 수 있는 긍정적 레퍼런스는 토스(toss)다. 토스는 처음부터 쉽고 편한 금융을 표방하면서 어렵고 복잡한 기준 금융 카테고리를 혁신하는 사명을 밝혔다. 송금으로 시작한건 트래픽을 늘리기 위한 기반 작업이었고, 결국 지금에 이르러서는 토스증권, 토스페이먼츠, 토스뱅크, 토스인슈어런스, 토스페이 등 다양한 금융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토스'라는 한 단어에 응축한 브랜드 자산이 확장한 개별 사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이 전략을 흔히 마스터 브랜드 전략, 혹은 모(母) 브랜드 전략으로 부른다.
당근은 좋은 미션이 있었음에도 사업 시작부터 제대로 된 브랜드 전략을 실현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 이건 사내에 브랜드 전문가가 없거나, 브랜드 전문가의 제안을 받았어도 그 판단을 하지 못한 경영진의 착오로 보인다.
물론 당근 외에도 브랜드 네임이나 기업명을 특정 산업군이 아닌 알반명사 느낌으로 바꾼 사례는 많다.
2007년 애플 컴퓨터(Apple Computer, Inc.)는 애플(Apple Inc.)로 기업명을 변경하였다. 이로서 애플은 컴퓨터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PC,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산업군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던킨도넛(DUNKIN DONUTS)은 2019년부터 사명을 던킨(DUNKIN)으로 바꾸었다. 68년만에 사명을 변경한 이유는 하락세인 도넛 사업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미 던킨의 매출 중 음료 메뉴 매출이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리디북스는 리디로 브랜드 네임을 바꾸었다. 전자책 뿐만 아니라 웹툰, 웹소설 등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으로 도약하기 위함이었다. 기업명 뿐만 아니라 동명의 서비스 이름도 전부 변경한 큰 변화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런 유명한 기업들도 바꾼 사례가 있는데 왜 당근마켓의 변화가 아쉽다고 하는 것이냐?'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 사례를 진작 공부하고 고민했으면 더 좋은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면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라고 말이다.
물론 국민 서비스를 만든 당근이니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나는 따뜻한 지역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당근을 응원하며, 그들이 진정으로 미션을 완수하기를 바란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당근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