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길을 잃는 순간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 이 글에는 영화 <매트릭스>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세상을 지배하는 AI와 반중력으로 이동하는 함선의 과학력을 보여준다. 미래의 최신 과학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아이러니함은 과학의 반대 극단인 '예언'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심지어 총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명작 영화에서 예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맥락을 만들 정도로 강력한 키워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네오'지만, 이 주인공을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사람은 리더 '모피어스'다. 모피어스는 언젠가 '구원자'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을 굳게 믿으며, 그 구원자가 네오라고 확신한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모피어스는 네오를 매트릭스에서 찾아내어 구하고 그가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도록 훈련시키고 도와준다. 심지어 네오를 불신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네오를 돕도록 만든다.
모피어스는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을 맞이하여 당황할 때 항상 '예언'을 언급하며 흔들리지 않도록 설득한다. 예언이 이야기하는 미래야말로 모피어스의 비전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인 것이다. 그는 예언을 믿는 자신을 믿었다. 그는 불확실한 상황에 좌절하기 보다 확실한 본인의 신념을 구현하는 쪽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리더다. 그가 있기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비전(Vision)은 미션(Mision)과 더불어 조직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조직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미래에 이룰 꿈이 미션이라면, 비전은 그 미래를 위해 구현해야 하는 구체적 실체다. 꿈을 꾸려면 자야 한다. 꿈이 미션이라면 잠은 비전이다. 미래에 살기 힘든 지구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게 미션이라면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는 우주선을 개발하는 게 비전이다.
흔히 무능하다고 비난 받는 리더는 비전이 없다. 다시 말해 그 리더는 원하는 구체적인 미래가 없다. 혹자는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냐, 점쟁이도 아닌데!'라고 투덜거리지만 이건 잘못된 접근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주인공은 중간에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앞장서서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들을 리더라고 부른다.
왜 비전이 필요할까?
그건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이다.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가장 강력한 본성은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공포다. 특히 무리를 지어 살았던 인간에게 길을 잃는 건 곧 죽음이었다. 그래서 인류는 위치를 만들었다. 동서남북 방향을 만들고 나침반을 만들고 GPS를 만든 이유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길은 물리적인 환경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커리어, 인생 등 사회적인 의미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그래서 인류는 조직을 만들었다. 사회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고. 가족, 학교, 회사, 동아리, 지역단체, 심지어 국가까지 모든 조직은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바다 위 부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살기 위해서다.
그것도 모자라 인류는 리더를 만들었다. 리더는 먼저 가는 사람이다. 팔로워들이 그 뒤를 따른 흔적은 길이 된다. 리더는 길을 만들지만, 리더의 앞은 길이 없다. 오직 아무도 모르는 미래 뿐이다. 그럼에도 리더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이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 팔로워들은 길을 잃으면 미래가 아닌 리더의 등을 보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이기에 비전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회사에서 경제적 안정감을 얻었음에도 리더에게 비전을 요구하는 이유는 길을 잃어서 불확실한 미래를 만나는 게 싫기 떄문이다. 이번 달 월급이 다음 달에도 고스란히 들어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싫어하도록 설계되었다.
불확실성은 인간을 좀먹는다. 인간의 집합체인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에 퍼지는 모호함, 흐릿함, 우연함, 돌발성, 복잡함에 구성원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발버둥은 곧 불안감으로 발산한다. 조직 구성원들이 불안감을 길게 느낄수록 에너지는 더 많이 소모되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조직의 생산성은 떨어진다.
불확실성과 조직의 상관관계는 인간의 '종결욕구'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인간은 우연을 불편하게 여긴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으며, 최소 상관관계라도 찾고 싶어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이렇다 할 이유를 찾으려고 애를 쓰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이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규명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어떻게 해서든 주변의 정보를 모으고 패턴을 파악해서 이 상황에 대한 판단을 끝내려는 인간의 본능이 바로 '종결욕구'다. 종결욕구가 있으면 빠르게 판단하는데 유용하지만 반대로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리더는 불확실성이 조직원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파하고, 비전을 제시하여 이를 최대한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불행하게도 이런 의무를 외면하는 리더는 굉장히 많고, 더 불행하게도 불확실성이 혼란을 일으킨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불확실성을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내버려 두는 무능한 리더는 더욱 많다. 위치상 리더는 조직원 대비 많은 정보를 받기 때문에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만났던 어떤 무신경한 리더는 심지어 나에게 정보를 전달했다고 착각하기까지 했다. '응? 그거 내가 말 해주지 않았어?'
보통 조직에서 리더나 고위직 인사가 하는 애매모호한 말에서 혼란은 시작된다. 조직원 대부분은 정보를 얻기 힘든 위치에 있으므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데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애둘러 표현하면 답답할 수 밖에 없다. 높은 사람이라 함부로 질문하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추측하고 해석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한다. 불확실성에는 확실히 비용이 든다.
불확실성이 만연한 조직에는 항상 소문이 들끓는다. 정보가 비교적 많거나, 높은 사람과 가까운 소수의 선동자가 의견을 내고, 스피커 역할을 맡은 자들이 소문을 유포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안정감을 찾고 싶어하는 귀 얇은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소문을 믿어버린다. 여기서도 조직적 비용이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정보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비용부터 그 정보 속에서 진실을 골라내야 하는 비용까지...... 나아가 조직에 대한 신뢰도까지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조직 개편이 단행된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하자. 비서실에 친한 동기가 있는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인사팀의 누군가가 술 먹으면서 큰 소리로 떠든 것일 수도 있다. 직원들은 만나기만 하면 조직 개편 이야기만 한다.
"야, 소문 들었어? 김과장 이번에 황팀장님네로 팀 이동한데."
"와, 진짜야? 그렇게 황팀장님하고 그렇게 술 먹고 담배피고 온갖 알랑방구를 다 뀌더니 기어이 갔네. 대단하다."
"정팀장님은 어쩌냐?"
"뭘 어쩌긴 어째, 본인이 무능해서 에이스 놓친거지. 김과장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냐. 근데 기획안 10개 올려도 1개 올라갈까 말까라잖아. 정팀장님이 꽉 잡고 보고를 안하는거지."
"왜 안해?"
"낸들 아냐? 소문에는 정팀장님이 박본부장님에게 밉보여서 보고할 때마다 깨지는 바람에 슬슬 피해다닌데. 덕분에 올라가는 보고서도 적으니 실적도 밑바닥이고. 정팀장님 팀원들만 불쌍하지."
인사팀 직원들은 이때마다 곤혹스럽다. 카톡이 매번 울리고 전화받기 바쁘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소문과 찌라시가 카톡과 입을 통해 널리널리 퍼진다. 첩보전이 따로 없다. 누가 소문 퍼뜨렸냐고 소리를 질러봐도 범인이 나올리가 없다. 어디로 옮겨질지 모른다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일이 손에 잡힐리가 없다. 이 회사는 알게 모르게 직원들의 생산성이 10%나 감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까?
나는 조직 개편이 문제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예측 할 수 없는 게 문제다. 불확실성이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는 통제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누군가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다. 조직 개편을 하려면 육하원칙에 따라 명확하게 기준을 통보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쓸데 없는 이야기에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부르며, 불안감은 모든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궁극적으로 생산성을 좀먹는다. 마케터의 업무의 예를 들어보자. 마케터의 입장에서 기획이란 무형의 대상을 유형화하는 과정이자 결과다.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규정하고, 일정과 비용을 수립한다. 그 안에서의 실행계획을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케터의 직무는 명확함이 요구된다.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피드백은 위와 같다. 마케터가 기획안을 올렸을 때 리더가 이렇게 대답하면 그 기획은 망한거다. 맞다고 하든지, 아니면 왜 아닌지 설명하고 수정할 점을 이야기해 주든지, 아니면 실무자와 토의를 해보든지, 그것도 아니면 실무자의 판단을 믿고 밀어줘야 한다. 아니면 피드백을 언제까지 줄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잘 모르겠다고 기획안을 깔고 뭉개면 어쩌란 말인가? 기획안이 빠르게 돌지 않으면 명백히 생산성이 저하된다.
책임지기 싫은 리더는 판단을 미룬다. 해당 기획안을 본인이 통과시켜서 올리면 그때부터 팀장 책임이다. 반대로 올리지 않으면 본인의 책임도 생기지 않는다. 생산성 하락은 여기서 발생한다. 기획안을 백날 올려도 타이팅 있게 위에 보고해주지 못하면 자리 차지하는 종이뭉치이거나 용량 잡아먹는 파일에 지나지 않는다. 리더가 판단을 미룰 수록 생신성은 떨어진다.
마케터의 입장에서 1월은 놓치기 아깝다. 새해는 사람들은 새 출발을 다짐한다. 금연, 금주, 다이어트, 독서 등 온갖 결심을 한다. 마케터가 그렇게 돈을 써가며 애원해도 타오르지 않던 욕망이 이때는 활활 타오른다. 새해 결심을 활용한 온갖 마케팅 활동이 필요한 시기지만, 의외로 1월이 고정된 성수기가 아닌 이상 1월에 마케팅을 잘 하는 기업이 드물다.
왜? 다들 책임지기 싫어서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1월에 뭔가를 하려면 당연히 11월, 12월에 준비해야 하는데, 이게 어렵다. 이 시기는 1년의 성과를 평가받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연봉협상과 인사가 아루어진다. 연말에 뭔가를 시도하는 건 어렵다. 실무자는 물론이고 리더도 리스크를 피하고 싶어서 업무를 방어적으로 대한다. 내가 어떤 팀으로 갈지 모르고 리더도 섣불리 결정해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한다.
반대로 조직의 예측 가능성이 높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구성원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왜 기업에 비전, 미션, 핵심가치 등을 정하겠는가? 비전, 미션, 핵심가치는 액자에 예쁘게 걸어서 사무실 벽에 장식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직원들이 한 방향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많은 무능한 리더들이 이 사실을 등한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지시를 내리면서 조직원들이 알아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럭비공을 잡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저기로 튀어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럭비공 같은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이 불확실한 상황에 얽매지지 않고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주어진다면, 그 조직은 안정감 있게 운영될 것이다. 서로가 무엇을 할지 예측 가능하다면 서로를 신뢰하고 나아가 조직을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의 예를 들어보자. 왜 대기업의 비서실장이 힘이 셀까? 회장님의 지시가 명확하지 않고 불확실해서다. 회장님과 임원들의 회의에서 회장님이 지시를 한다고 해보자. 회장님이 뭔가 말씀하시는데 이게 명확하지도 않고 뱅뱅 돌리면서 말하면 상식적으로는 임원들이 바로 질문하여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지시사항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회장님도, 임원들도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임원들은 그냥 알아들은척 하고 넘기고, 회장님도 알아들었겠지 하고 넘긴다. 괜히 질문했다가는 자신이 지시 하나 못알아먹은 무능함이 드러날 수도 있고, 회장님이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면 임원들이 비서실장에게 우르르 몰려가 질문한다. '회장님 말씀이 무슨 뜻이야?' 그럼 비서실장이 최근에 회장님에게 생겼던 일, 만났던 사람 등등 배경상황을 짚어서 추론한다. '이런 뜻이지 않을까요?' 추론이 맞으면 다행히지만 맞지 않으면 회장님한테 혼나고 연말에 좌천당하는 거다.
불확실성이 조직에 혼란을 불러오고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이유가 이렇게 분명하건만, 오늘도 대한민국의 나쁜 리더들은 불확실성이라는 작은 성 안에 꽁꽁 숨어 면피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상황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를 아랫사람에게 떠넘긴 이들 나쁜 리더 때문에 많은 실무자들이 '개떡 같이 말한 것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바다에서 선원들은 앞이 아닌 선장을 본다. 리더라면 자신의 책임감을 외면하지 말고 불확실성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방향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구성원이 안심할 수 있도록 명확한 믿음을 줘야 한다. 구성원이 원하는 건 리더의 옳은 판단이 아니라 리더가 용감하게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결국, 리더의 비전은 리더의 용기를 증명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