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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부스터 켄 Jan 14. 2020

브라더십을 악용하는 리더

부족한 리더십을 브라더십으로 채운다.

※ 이 글에는 드라마 <미생>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속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장그래(출처: tvN)


드라마 <미생>에는 브라더십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영업 3팀 팀장인 오상식(이성민)은 회사에 낙하산으로 입사한 장그래(임시완)를 못마땅하게 여겨 일부러 거리감을 둔다. 그러던 어느 날 장그래의 실수로 회사 기밀 문서가 노출되어 부서 전체가 혼나고, 오상식은 장그래에게 화를 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장그래가 아닌 영업 2팀의 잘못이었다는 걸 알게 된 오상식은 집에 가려는 장그래와 야근하려는 김동식까지 붙잡아 회식을 한다. 미안함이 가득한 회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문제의 영업 2팀을 만나게 된 오상식은 '너네 애 때문에 우리 애만 혼났잖아!'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 다음이 킬링포인트다. 한바탕 소동을 겪고 방 안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긴 장그래는 슬며시 미소 아닌 미소를 짓는다. 자신을 '우리 애'라고 부른 오상식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배척당하던 장그래가 처음으로 소속감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다.




나는 직장에서 나이 많은 남자가 나이 어린 남자를 직급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본인을 '형'으로 칭하는 현상을 '직장 내 브라더십'이라고 부른다. 한국 남자들에게 이런 '직장 내 브라더십'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보이는데, 이 현상은 나이로 서열을 따지는 유교적 가족문화, 조직에 먼저 들어온 선배를 예우하는 학교문화, 수직적 계급을 중시하는 군대문화를 학습한 경험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직장 내 라더십은 보통 나이 많은 남자가 먼저 시도한다. '야, 정섭아. 사석이니까 말 편하게 할게? 형이 요즘 너를 지켜보고 있는데......' 여기서 아랫사람은 생각한다. '이 사람이 나를 동생처럼 아끼는구나.'하고 감동받은 아랫사람은 상대방을 '형'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담배 피거나 술 마시는 등 사석에서만 부르다가 메신저로, 전화하면서, 파티션 너머로, 심지어 회의실 안에서도 호형호제를 하게 되면서 사무실까지 번진다.


공과 사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의 관점에서 본다면 직장 내에서 호형호제하면 안된다. 엄연히 책임과 권한으로 분류한 직급과 직책으로 상대방을 부르지 않는 것은 무시하는 행위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미생>의 예시에서 보았듯이 브라더십은 직장 동료끼리의 친밀감을 다지고 소속감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암묵적으로는 허용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대놓고 거부하기도 그렇다. 상대방에서 친밀감 있게 '형이 말이야...'라고 접근하는데 매몰차게 '팀장님이 무슨 형이에요? 저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잖아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여기서 '팀장님과 친해져서 손해볼 건 없다'는 생각으로 그냥 넘긴다.


나쁜 리더는 이 브라더십의 효용을 십분 이용한다. 본인의 부족한 리더십을 브라더십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본디 리더십이란 업무지식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조직의 구성원을 이끄는 것은데, 이게 잘 안되면 브라더십에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게 된다. 


사회적 지위인 조직의 '리더'는 조직 구성원에게 업무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형'이라는 가족적 지위까지 가지게 되면 그의 지시는 '거부할 수 없는 지시'가 된다. 가족적 관계에서는 'excuse'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가족끼리는 비효율적인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도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될 수 있다. 가족이니까. 서로 힘들더라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니까.


현식아, 형이 힘들다.
너도 힘든 거 아는데, 이번 일 한 번만 같이 해보자.


이런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거부할 수 있는 팀원이 몇이나 될까? 팀장의 입장에서 보면 업무과중이라 지시하기 힘든 일이라도 이를 형의 입장에서 '부탁'해서 처리할 수 있다. 리더십으로는 설득이 어려운 일이라도 브라더십으로 접근하면 공감대가 형성되니까 더 일처리가 쉬워진다. 리더에게 꽤 쓸만한 도구다.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리더는 적다. 브라더십이 한 번 통하면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된다. 브라더십으로 구성원을 통솔하는 리더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구성원을 보며 자신이 리더십이 있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자신의 리더십을 점점 잃게 된다.  


조직 구성원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다. 브라더십으로만 일처리를 하게 되면 조직 구성원들의 책임과 권한이 모호해진다. 본인이 팀원의 입장에서 업무를 보는 건지 동생으로서 형을 돕는 건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니까.


조직 입장에서도 좋은 게 없다. 브라더십이 조직에 만연하면 온갖 부조리가 발생한다. 능력으로 따지면 승진할 수 없는 김대리가 '내 동생'이라는 이유로 진급하고, 남자끼리의 관계에 끼지 못하는 여성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사기가 떨어진다. 형동생이라는 명목으로 라인과 생기고 자신들의 이권을 위한 정치싸움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정말 순수한 의도로 직장동료와 혹은 선배와 호형호제하며 사이좋게 지낼 것이다. 그 순기능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이 브라더십은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다. 파벌을 이루어 중요한 의사결정이 회의실이 아닌 이들끼리 이루어질 수 있으며 정보의 유통도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조직 구성원들의 업무적 사고를 흐려놓아 정확한 업무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내일 발표하는조직개편안인데 형한테만 먼저 보여줄게요."


운 좋게도 나는 이러한 브라더십의 유혹을 이겨냈다. 아니, 정확히는 쓰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나는 광고대행사 AE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3년차에 팀장을 달았다. 남자팀원들이 나와 동갑이거나 나이가 많았다. 당연히 브라더십은 쓰려고 해도 쓸 수 없었다. 순수한 실력으로만 팀원들을 리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지금 갖추게 된 실력은 어쩌면 그 상황에서 발휘할 수 밖에 없었던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으로 대우받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펼쳐야 했다.


물론 유혹도 많았다. 친하게 지내는 광고주들,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협력하거나 갈등하는 제작팀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실제로 술자리에서 호형호제하자는 요구도 많았다. 정말 힘들어서 도움을 얻기 위해 해본 적도 있었으나 곧 접었다. 결국 이 브라더십도 진정한 형제애가 아닌 남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대를 이용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직장에서 만난 사람은 철저하게 직급과 존댓말로 대한다. 전 직장 동료도 마찬가지다. 너무 야박하지 않냐는 평가가 있을 수 있으나, 나는 성인끼리는 나이에 관계없이 존중한다는 의미로 존댓말을 쓰는 게 맞다고 믿는다. 이런 나의 신념에 굳이 예외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상대를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 상대방이 나를 호칭하는 단어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대화가 펼쳐지는데, 상대방은 나를 형이나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는데, 나는 끝까지 직급이나 ~씨를 붙여서 말한다. 제 3자가 들으면 꽤 희안한 대화였을 것이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선후배 문화, 군대까지 있기 때문에 이 브라더십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브라더십의 장점은 살리되 단점을 방지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오늘도 부족한 리더십을 브라더십으로 때우는 자격미달의 리더가 당신의 앞날을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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