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자포스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할 때였다. 브랜드데이(Brand day)라는 행사를 맡아 진행했다. 컨설팅을 받는 회사의 직원들을 초대했다. 마케팅 부서는 물론이고 제품개발팀, 인사팀까지, 그 회사에서 올수 있는 사람들은 다 오라고 했다.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첫 질문을 던졌다. “이 브랜드는 세상에 어떤 가치를 주나요?” 직원들의 생각이 다 달랐다. 놀라웠다. 그들은 더 놀라워했다. 대표님은 충격을 잡수셨다. 이럴수가. 우리 모두 동일한 눈으로 브랜드를 바라보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그날은 영점조준의 시간이 되었다.
당시에 내가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한 브랜드가 자포스였다. 자포스 직원들이라면 분명 저 질문에 통일된 의견을 낼텐데. 자포스 직원들을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그건 거의 확신이었다.
콜센터로 고객을 감격시키기
자포스는 온라인으로 신발을 파는 회사이다. 1999년에 설립되어 지금은 2조원 가치의 기업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파는’ 아마존이 먼저 알아봤다. 2009년 12억 달러를 주고 인수해버렸다. 경영권을 보장한 주식교환 형태였다. 아마존은 약속했다. 앞으로도 너희는 안 건들게.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해. 그대신 너희를 곁에 두고 우리가 좀 배울게. 아마존은 자포스에 빠졌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일을 자포스만큼 잘하는 회사는 없었다. '고객 경험'에 관해서라면 아마존도 끝을 보는 회사였다. 천하의 아마존도 자포스의 '문화'를 배우고자 했다. 도대체 어떤 문화이길래.
온라인으로 신발을 파는 회사는 고객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제한적이다. 한군데 있기는 하다. 고객 콜센터.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서. 인도에 있는 업체에 아웃소싱 하는 부서. 자포스는 이 투박한 ‘전화 창구’를 혁신했다. 무려 21세기에. 24시간 운영했다. 스크립트 따위는 없었다. 대신 직원들이 개성을 담아 고객에게 말을 걸었다. 유머러스하게, 유연하게, 친절하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의 재고가 없을 때는 경쟁업체의 웹사이트를 검색해주었다. 새벽에 전화를 건 고객이 피자 가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문을 연 피자집을 알려줬다. (피자 가게 문의를 한 사람은 CEO 토니 쉐이였다.) 농담을 던지는 고객에게는 더 웃긴 농담으로 응대했다. 콜센터가 뭐 이래? 신선했다. 유쾌했다. 자포스를 경험한 고객들은 전도사가 되었다. 자포스 브랜드의 팬을 양산하는데는 콜센터 하나로도 충분했다.
자포스 컬쳐북
자포스 직원들은 즐겁게 일한다. 동료들과 사이가 무척이나 좋다. 직원을 뽑는 기준이 독특해서 이다. ‘회사 밖에서도 같이 놀고 싶은 사람인가’. 똑똑한 사람은 많다.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줄 능력자들도 많다. 그런데 사적으로도 교제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당신의 회사 동료들을 생각해보라. 음…여기까지) 이 기준에 통과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일을 한다. 모두가 스스로를 행운아라 여긴다. 이렇게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신나게 일할 수 있다니. 일은 놀이가 된다. 유쾌한 문화가 생성된다.
자포스가 5년째 되던 해부터 기업의 문화를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직원들 모두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자포스 문화가 당신에게 어떠한 의미인가요?" 답변을 받아 오타 수정 외에는 편집하지 않았다. 그대로 책으로 발간했다. 이름하여 ‘자포스 컬쳐북’. 매년 업데이트 했다. 이 과정에서 자포스가 추구하는 10가지 핵심가치를 뽑아 냈다. "서비스를 통해 ‘와우’ 경험을 선사한다." "재미와 약간의 희한함을 창조한다."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 등. 그 다음부터는 실천이었다. 자포스의 모든 직원들이 외웠다. 체화했다.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좋은 의견이긴 한데...우리의 핵심가치에 맞는거야?) 핵심가치는 공기가 되었다. DNA가 되었다.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가 되었다. 아마존을 포함한 모든 기업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자포스의 문화가 되었다.
자포스는 행복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브랜드 하나 만드는 것이 간단했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브랜드가 어떻게 비춰질지를 결정한다. 광고로 물량 공세를 하면 그럴 듯한 브랜드 하나가 탄생했다. 일방적이었다. 광고에 반응하는 시대였다. 세상이 변했다. 지금은 기업의 일거수 일투족을 고객들이 지켜본다. 속일 수가 없다. 아무리 광고를 잘 만들어도 마카다미아 땅콩 하나로 추락한다.
기업 문화의 토대는 창업자가 세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허브 켈라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다. 월마트는 샘월튼이다. 자포스는 토니 쉐이이다. 아 저 사람처럼 하면 되는구나. 직원들은 참고할 롤모델이 생긴다. 닮는다.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모두 한 방향을 본다. 기업 문화의 시작이다. 이 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위대한 창업자가 회사를 떠난 후에 브랜드의 영혼도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회사 입구에 동상 하나 세워놓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명문화 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되새겨야 한다. 그 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모두가 창업자의 생각을 입어야 한다. 창업자가 되어야 한다.
자포스에는 토니 쉐이가 있다. 지난 19년간 자포스를 이끌어 온 이 아저씨부터가 '자포스다움'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언제나 빡빡머리에 티셔츠, 청바지 차림이다. 말투는 친근하고, 유머러스하다. 진지하다. 직원들은 토니를 껴안는다. 볼뽀뽀를 하고 “I love him” 이라고 스스럼 없이 말한다. 직원들 자리 사이에 널 부러져 있는(?) 그의 책상을 보고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나름 억만장자 회장님인데… 모두가 그를 사랑한다. 자포스의 문화다.
자포스는 2009년 회사의 비전과 사명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세상에 행복을 배달하는 회사’ (토니 쉐이가 지은 책 제목의 이름도 ‘딜리버링 해피니스’이다.)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지 이유를 파고 팠더니 결국 ‘행복’ 이었다. 따지고보면 행복이 별건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놀듯이 일하는 것. 이 즐거움을 고객들에게도, 협력사에게도 나누어주는 것.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것이 지금까지 자포스가 추구해온 행복이다. 자포스의 문화다. 자포스의 직원들은 행복을 배달한다.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서, 재미있게, 놀면서, 희한하게. 자포스는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한 문화다. 행복한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