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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Oct 04. 2015

25. 배려하는 식사에 대하여

먹는 대로 사는 채식 이야기 by 채식 꾸미


사랑하니까! 무거워지는 밥상들.

명절날은 항상 전쟁입니다. 더 먹으라고 하는 식구들과, 더 못 먹겠다고 하는 저와의 전쟁이지요. 이번 명절에는 친정 부모님께 회와 육고기를 함께 주지 말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다른 종류의 단백질을 섞어 먹는 것 만큼 속이 더부룩한 것도 없거든요. 하지만 어머님은 남편이 방문하는 첫 명절이라며, 전복과 닭을 넣어 백숙을 해주셨습니다. 전복은 회가 아니라면서요...ㅎㅎ


 할머님 댁에 방문하면 항상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몸이 아프신대도 불구하고, 계속 요리하려고 하는 할머니와 이를 만류하는 아버지와의 실랑이가 벌어지지요. 아버지가 아무리 만류하셔도 할머니는 또 다시 밥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하십니다. 그럼 아버지는 또 노발대발하며 찾아오시지요.


 이런 아버지는  요리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제게  [삼겹살, 생선, 전]을 가득 만들어서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제가 잘 못 먹는걸 알면서도 "적당히 먹어라" 하시면서 한 상 가득 차려 주시죠. 그 모습을 보며 저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 같다며 함께 허허 웃곤 했습니다.  


 소화를 잘 하지 못하는 제게 과식은 독입니다. 해서 명절날은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아버지나 남편에게도 ' 제발 밥 좀 조금만 먹을 수 있게 도와달라 '하면서 미리 청탁을 해놓곤 하지요. 벌써 몇 년째 이렇게 지내고 있답니다.


 예부터 우리는 '밥을 잘 먹는 것'이 최고 였다고 합니다. 해서 안부를 물을 때도, '밥 잘 먹고 있느냐.'라고 말하지요. 또 인사치레 "밥 한 끼 먹자"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해 봅니다. 잘 먹는 것이 과연 '많이 먹는 것'일까 하고요.






줄어드니 오히려 자유로워진 밥상

 요즘 제 밥상은 무척 소박해졌습니다. 5개 정도 되었던 반찬을 2개 ~ 3개로 줄였습니다. 1개로만 먹을 때도 있습니다.


마 채소밥과 들기름, 간장을 살짝. 그리고 김치와 함께한 밥상



고사리무침, 연근조림, 고구마줄기들깨볶음과 싱싱한 채소쌈




우엉반찬, 새싹을 다시마에 싸서 한입.




곤드레나물, 베이비립, 채썬무와 미소된장 + 들기름을 섞은 비빔밥


반찬이 많다 보니 자꾸만 짜게 먹게 되고, 한 숟가락에 5~6개씩 먹으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소화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시도한 결정입니다. 이후 저는 반찬이 많을 때보다 훨씬 자유로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게 먹으니 비워둔 자리에 행복이 찾아옵니다. 반찬의 가짓수가 작아지니 밥과 반찬의 맛을 더 온전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밥 한 숟가락! 그 맛에서 오는 행복이란, 금수성찬도 부러울 것이 없달까요.


 사실 건강에 좋은 밥상은 소화가 잘 되는 밥상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목적은 영양분을 흡수하여 에너지를 내기 위함인데,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면 음식물이 잘 분해되지 않아 영양분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지요. 해서 과식하는 밥상은 사실은 '소화'면에서 보았을 땐 좋지 않은 밥상입니다. 식사 후 정성스레 깎아 주시는 과일 또한, 소화면에서는 좋지 않은 것이지요.


 하지만 더 해주고 싶은 마음, 하나라도 더 해먹여 주고 싶은 마음을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마음을 '소화가 잘 되는 식사 '와 견줄 수 있을까요. 그분들에게는 배려라는 것이 바로 '이 사랑 가득한 한상'일 텐데 말이죠. 그런 마음을 알기에 저도 잘 먹지 못해 죄송스러울 때가 참 많답니다. 이국주처럼 대식가였다면 어르신들이 참 기뻐하셨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그분들에게 있어 '배려'란 제가 잘 먹는 것일 텐데 말이죠.





이 글을 쓰는 저 조차


 최근 저는 신혼집으로 놀러 온 삼촌에게, 소박하게 준다면서 집에 있는 온갖 재료들로 요리를 해주었습니다. 밥도 심지어 대추와 밤을 섞은 현미밥을 해주었죠. 삼촌을 사랑한다고 주었던 밥상에, 정작 삼촌은 과식하고 배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속이 예민한 삼촌을 배려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어쩌면 삼촌 또한, 절 배려한다고 과식한 걸지도 모릅니다.





 사랑한다면 가끔은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세요. 반찬 하나에도 넘치게 사랑을 담아서요. 잘 되지 않더라도 한 번씩은요. 아주 가끔은요. 그것이 바로 배려하는 밥상이 될 수도 있답니다.


 글을 쓰며 할머니, 할아버지, 시부모님들,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려봅니다.  그분들의 밥상을 생각하니, 전 참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서로 밀고 당기는 전쟁이 되겠지만 말이에요.


 여러분이 배려하는 밥상이란 어떤 것인가요?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 오늘의 글은 제 이야기가 가득했네요. '배려하는 밥상'이란 무엇인지 다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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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대로 산다.

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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