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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표 Aug 29. 2020

"나"를 다잡는 일

붙잡아야 할 것도, 붙잡을 수 있는 것도 결국 "나"

어느 정도 구체화된 창업 아이템에 계획을 입혀 피칭 프레젠테이션도 만들었고, 아직 모두 정리되진 않았지만 큰 방향들도 잡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로 치면 5년 이상, 학창 시절까지 포함하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잘 갖추어진 시스템 안에서 살았다. 시스템 안에 산다는 건, 열심히 갈아엎지 않아도 어느 정도 성실하게 눈앞의 일들을 해내면 정돈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실히 나 자신을 돌아보고 다잡아야 할 필요까진 없다. 그렇지만 모든 걸 갈아엎고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면, 그건 고 3 때였다.


고3 9월의 일기들. 종종 마음을 다잡고 싶을 때 꺼내본다.

 고 3의 시간은 전과 다르게 밥 먹는 때 외엔 정해진 시간표도 없고 대부분 자습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나는 나를 붙잡기 위한 몇 가지 새로운 습관들을 세팅했었다. 나는 중학교 때 꽤 모범생-학기 시험 평균 95점을 넘은 적이 수 번 있었고, 대부분 평균 90점을 넘었기에 전교 10등 안에 드는-이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만만히 생각했던 수학에서 50점 겨우 넘는 성적을 처음 받고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엎어져서 과거의 영광만 그리워할 순 없었고, 원하는 대학을 가려면 결국 나를 다시 세팅해야 했다. 그래서 고 2에서 고 3으로 넘어가는 방학 내내 3년어치의 수능을 붙잡고 각 문제가 어떤 단원의 어떤 개념, 어떤 이론이 쓰였고 어떻게 복합이 되어서 어떻게 풀면 되는지 '출제자 시점' 풀이노트를 반복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원칙부터 이해하고 풀이하는 습관은 수능 때까지 이어졌다.

 고3 때는 쉬는 시간도 활용하기 위해서 체크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안쉬는 쉬는시간'에는 수학이나 영어 고난도 문제를 풀었다. 시간을 내서 풀기에는 시험에 나올 확률이 낮지만, 틈나는 시간에 풀어두면 고득점을 받는 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6월 이후에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갔는데, 급식 먹고 매점 가는 습관을 깨기 위해서였다. 매점투어는 매일의 달콤하고 소소한 보상이었지만, 동시에 사라진 점심시간과 빼기 어려운 체중이 쌓이는 일이기도 했다. 같이 도시락 먹는 그룹이 생겨서 20분 만에 소소한 이야기 하며 점심을 먹고 10분 이 닦고 화장실 다녀오고 나머지 30분을 또 각자 자리에 앉아서 공부했다.

 플래너를 꼼꼼하게 적는 편이었는데 계획하는 시간은 야자 시작 후 10분 안에 끝냈다. 나는 내 집중 시간이 40분에서 90분 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맞춰 계획하면 그 이후 시간에는 스톱워치를 꼼꼼하게 키고 잘 실행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깐.. 그때 했던 노력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나를 다잡고 다시 세팅한 경험이 있으며, 그게 내가 원하는 길을 열어준 성공경험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만의 시스템으로 갈아엎을 때이고,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는 막연했지만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것들 몇 가지가 떠올랐다.

This will do!

첫 번째는 좌우명 바꾸기.

꽤 열정적으로 살았던 20대 초반에 비해서 20대 중반의 테마는 "너무 애쓰지는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잘하자"였다. 첫 입사 후 6개월 뒤, 신입사원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경영학과로서 학부 시절 내내 많은 피피티를 만들고 발표를 했기에 자신 있었고, '제가 쓸 만한 인간이고 열심히 잘할 수 있습니다'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갈고닦아 열심히 준비하였고, 사장님의 칭찬은 들었지만 돌아서서 부서 사람들에게는 "너가 그러면 우리가 고생한다. 튀려고, 잘하려고 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회사는 그런 곳이구나. 많은 열정도 노력도 독이 되고 열심히 하더라도 안 하는 척해야 하는 곳.

 물론 이직하면서는 열정과 잠재력을 봐주고 팀과 함께 키우는 매니저를 만난 덕분에 회사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몸에 배어버린 좌우명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결국 나도 모르게 효율적으로 편하게 사회생활하기에 집중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토성 리턴"의 시기이고, 나는 당장은 편하더라도 이대로 살고 싶진 않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좌우명도 바뀌어야 했다. "Don't pray for easy life, Pray to be stronger one" Easy life prayer 가 아닌 Stronger one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무럭무럭 자라날 나무 그리기

두 번째는 나무 그리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무 그리기를 좋아했다. 어떤 나무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들, 그걸 위하여 지켜야 하는 원칙들이 적혀있었고 어떤 나무는 내가 왜 이 진로를 선택했는지 지금까지의 커리어 패스와 그다음 꿈꾸는 모습들이 적혀있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의 나무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내가 좋은 사람 되기" 라던가 "누구를 만나더라도 나 자신을 잃지 않기" "함께 있으면서 변화되는 내 모습이 좋은 사람 만나기" 같은 것들과, 앞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국 나무를 그리는 건,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해내어 믿음을 만드는 일이다. 힘들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결국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나무의 어딘가에 있고, 결국 그 나무는 무럭무럭 자랄 거라는 믿음. 나는 "나무 그리기"라고 표현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Connecting dots"라고 이야기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s,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ing else is secondary.
 - Steve Jobs


나무를 그리는 일-이전의 내가 어떤 발자취로 왔는지, 지금의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방향성으로 그리고 그 방향이 매일매일 쌓여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적어내는 것-은 종종 앞이 보이지 않고 흔들릴 때 명확한 이정표와 믿음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시간

세 번째는 좋은 것들로 시간 채우기.

사람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뿐이다.
첫째, 시간을 달리 쓰는 것.
둘째,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셋째,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3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 오마이 겐이치

결국 핑계지만, 회사를 다니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을 허투루 쓰게 된다. 회사를 가기 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오전 6시 반부터 집에 복귀하는 오후 8시경까지 꼬박이 14시간 반을 회사를 위해 쓰는 셈이다. 게다가 14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일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머지 시간도 보상받기 위하여 어떻게든 쉬게 - 엄밀히 말하자면 날리게 - 된다. 차라리 잠을 자면 모르겠는데 하릴없이 유튜브를 보거나 모바일 게임을 하는 식인 것이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빌 게이츠나 내가 동일하게 갖고 있는 자원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고, 시간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서 잘 되길 바라는 건 귀중한 자원을 땅에 버리면서 높이 멀리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다름없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 3의 내가 그러했듯이 기존의 패턴을 깨고 시간을 촘촘하게 좋은 것들로 채워야 한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운동하기. 멀리 가기 위하여 체력은 필수이기에 귀찮고 땀이 많이 나서 잘하지 않았던 코어 운동 위주로 운동을 시작했다. 2월부터 이틀에 한 번은 꼭 하는 운동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운동을 안 하면 개운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책 읽기와 글쓰기.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움직임을 하면 좋은 신체를 갖게 되듯이, 좋은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써내는 것은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게 할 거니깐! 시간을 채우는 좋은 것들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이번에 고 3 때 다이어리를 다시 읽어 보는데, "Nervousness comes from insufficient practice."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19살 때 이런 글을 써두고 공부를 했단 말이야? 하면서 그때의 내가 기특함과 동시에 지금의 내가 약간 부끄러워졌다. 그렇지만 이제 또 시작인걸. 새로운 토성 리턴을 만들기 시작했으니깐 또 잘 해내면 된다.


앞서 말했던 세 가지 외에도 쓰는 시간 10분 단위로 기록하기, 생각시간과 행동 시간 구분하기, 비전 resetting 하기, grit 기르기, 글귀 조각모음하기 등, 나를 바로잡기 위하여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시도하고 있다. 분명 힘든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내가 원하는 길 위에 있음을 믿는다. 결국 붙잡아야 할 것도, 붙잡을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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