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주방에서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뭔가 고민이 있으면 이리저리 서성이는 게 아들의 습관이었죠. 오늘도 역시 잠을 못 이루는 아들이 틀림없었습니다. 에휴, 이 녀석...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는 걸까. 저는 피곤했지만, 무거운 마음에 방문을 열어봤습니다.
"아들, 안 자니?"
"안녕, 아빠?"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인사했지만, 얼굴은 초점이 흐리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잠이 안 와?"
"응... 피곤한데 잠은 안 오고, 계속 뭔가 답답해."
아들의 표정에서 불안이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 학교 진학 상담에서 지방에 있는 대학에 겨우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마음에 남아 있었던 것 같았죠.
고3 여름 방학이 끝날 때까지 개발에만 몰두한 아들, 이제 수능이 100일 남았는데 그동안의 선택이 후회로 남는 건 아닐까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지난 1년 동안 개발에만 집중했으니, 공부는 뒤로 미뤘던 거고. 그래서 대학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잖아?"
"알아, 아빠. 그런데 지금 뭔가 계속 불안해..."
아들이 왜 불안한지 단번에 알아차렸죠. 성적 때문에 좋은 대학에 못 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어요. 솔직히 우리 개발이 성공했으면 대학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텐데, 1년 안에 대박이 날 사업이 얼마나 있겠어요? 저는 그동안의 우리의 노력이 후회로 남을까 봐 살짝 신경이 쓰였습니다.
"왜 그런지 GPT한테 한번 물어볼까?"
우리는 그동안 많은 문제를 AI에게 물어왔으니, 이번에도 답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여러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는데 작은 한 걸음에 집중하라는 GPT. 아빠보다 나은 답변이다.>
'아들, 수능부터 공부해 보라는데?'
'음... 그러게. 가장 작은 한걸음부터 시작하라고... 지금 내가 해야 될걸 안 하고 있었나 봐. 아마도 공부 아닐까? 고3이고 수능이 100일 남았는데 난 학교공부가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수시는 아예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수능으로 대학가려니 그동안 해놓은 게 없어서 성적도 안 나올 테고. '
이제 와서 공부를 안 한 것을 후회하는 것 같아서 살짝 걱정이 되더라고요.
"수능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가 개발에서 성공하면 대학은 그저 간판일 뿐이잖아. 대학 안가도 Coursera나 edX에서도 세계 유명 대학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잖아."
"아빠, 나도 알아. 그런데 혼자서 개발하려니 한계가 있어. 좋은 대학에 가서 친구들이랑 함께 공부하고 개발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지금 내가 가진 능력은 너무 부족해. 유니티도, 피그마도 다 혼자 배워서 사실 너무 벅찼어."
아들이 힘들었다는 진지한 말에 저는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에휴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 내 아들. 우리가 게임도 만들고 앱도 개발하면서 참 많은 걸 경험했었네. 그래. 그렇게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그거 또한 성장의 시작일 거야."
"맞아, 아빠. 내가 지금 답답한 이유도 그거야. 개발도, 공부도 제대로 안 돼서."
새벽 4시가 되어가는 동안 대화는 계속됐습니다.
"그럼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려는 거야?"
"그게 고민이야, 아빠. 수능 100일 남았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음.... 그건 걱정 마. 아빠 생각엔 3개월에 앱하나 만들듯이 공부도 후벼 파면 될 수도 있어. 그게 아마도 단기간에 가장 확실히 결과를 알 수 있는 방법일걸?'
'하하 맞네. 진짜 밤새서 뉴진스 빌리지도 만들고 어라운드도 결국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긴 했었네. 물론 게임출시도 못해보고, 어라운드도 첫 반응은 별로였지만... 비즈니스라는 게 그런 거 같아. 어떤 서비스 하나를 막대한 자본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만들었는데 시장의 반응이 없으면 완전 허무한 거지. 그에 반해 공부는 한만큼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 공부로 실패할 확률이 오히려 훨씬 낮은 거지.'
'아들 많이 컸네? 그럼 이번엔 우리 수능 프로젝트 한번 해보는 거 어때? '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럴까? 목숨 한번 걸어볼까? 어? 갑자기 맘이 좀 편해지네?'
그렇게 아들은 수능 D-100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어이없지만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정했습니다. 꿈도 야무지게 잡은 거죠.
좋은 대학에 가서,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개발을 하고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겠다는 큰 꿈을 꾸게 된 겁니다. 학교에서는 승주가 공부에 큰 관심이 없는 학생으로 보았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은 승주에게 낮은 순위의 지방 대학을 권했죠. 사실 저는 이미 예상했지만, 승주가 기가 죽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뜻밖에 당차게 말했습니다.
"그건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거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이제부터 하면 돼."
"말하는 게 좀 무섭네 아들?"
그 후, 아들은 변했습니다. 매일 밤 독서실에서 미친 듯이 공부하며, 인터넷 강의를 반복해서 돌려보았습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공부는 내가 노력한 만큼 바로 결과가 나오네? 사업보다 훨씬 확실한 것 같아."
그 순간, 저는 아들이 한층 더 성장했다는 걸 느꼈어요. 말속에서 묻어나는 자신감과 냉철함에 부쩍 커버린 느낌이랄까.
스스로 세운 목표를 위해 전념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의 여정을 통해 아들은 공부와 개발이라는 두 길에서 고군분투하며 내면을 단련해 왔고, 그 결과 이제는 어떤 도전 앞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나아갈 준비가 된 듯했습니다.
이제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지난 2년 동안 아들이 얻은 것은 그 어떤 성공보다도 소중한 스스로를 단련하는 법이었고,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강력한 인생의 무기를 장착하게 되었으니까요.
새벽 한 시.
근처 스터디카페의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니, 한쪽 구석에서 불빛 아래 집중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묵묵히 자신과 싸우며 또 다른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그 눈부신 여정이 시작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저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