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46 - 완결

동이 틀 무렵 2

by 고성프리맨

“꺼져라! 다 죽여버리겠다.”


악에 받친 김시헌은 가시 돋친 듯 온 힘을 짜내며 고성을 질러댄다. 하지만 승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올 뿐이다.


”제발.. 가줘.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내가 어떤 치욕을 겪었는데.”

”너 때문이다! 너의 무능력함이 여기 있는 모두를 죽게 만든 거야.”

”내 안에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생각해서라도 가엾이 여겨다오..”


김시헌의 모습과 표정이 다양하게 변한다. 애원하기도 하고 협박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어떻게든 승호가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며 처절하게 몸부림을 친다.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7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버려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대 사대까지 벌한다.”


승호는 성경을 읽으며 다른 한 손으로 김시헌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승호의 손길이 닿자 김시헌은 뜨거운 불이라도 닿은 듯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성경을 읽는다. 푸른빛은 머리를 타고 얼굴로 내려온다.


”살.. 려. 줘.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어떤 죄든 다 받겠습니다.”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덜미가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덮은 승호는 그대로 성경을 들어 김시헌의 머리와 양 어깨를 한 번씩 두드린다. 천천히 김시헌의 영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푸른빛은 점점 강해진다. 이제는 김시헌도 검붉은 색이 아닌 푸른빛으로 변했다.




살아왔던 순간이 떠올랐다. 죽임을 당한 순간. 김시헌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 꿈꿔왔던 세상.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 억울하다. 이제야 겨우 뭔가를 해보려던 참인데.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나만 죽어야 하는가. 이대로 죽는다면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비통하고 원통하다. 내가 바라던 꿈은 잘못되지 않았다. 방해하는 인갈들이 잘못한 것이다. 신이 있는가? 무엇을 위한 신이던가. 내 목소리에 한 번이라도 귀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나를 벌하려는 방식이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달게 받아주마. 하지만 난 죄를 인정하지 못하겠다. 김시헌의 마음속에서는 끝없는 분노가 커져간다. 하지만 점점 영이 흩어져 가며 그 마음도 점점 꺾이기 시작한다.


’또다시 어둠이 드리워지는구나.. 두 번째 어둠이구나.’


그렇게 하릴없이 김시헌의 영은 흩어져 버린다. 남은 자리엔 철환의 성경이 떨어져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어둠이 찾아왔다. 쓰러져 있는 철환과 홍심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싸움의 흔적도 찾을 길이 없을 정도로 고요하고 적막한 밤이다. 무엇이 원통했을까? 무엇이 억울했을까? 알 수 없는 물음과 죽음만 남긴 채 김시헌은 사라졌다. 고요가 찾아온 가운데 철환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교주님!”


정신을 차린 승호가 황급히 철환에게 달려간다. 철환의 모습은 살아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이겨져 있다. 입에서는 거품 같은 피를 힘 없이 토해낸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본인의 무능함 때문에 철환이 죽어간다는 사실이 승호를 힘들게 한다. 그런 승호를 힘 없이 바라보며 철환은 겨우 힘을 짜내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승호의 손을 잡는다. 깜짝 놀란 승호가 쳐다보자 눈가에 살며시 미소를 띠다 잠시 후 숨을 멈춘다.


”교주님? 교주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제는 더 이상 평범해지지 못할 것이란 걸 깨닫자마자 많은 사람이 죽어버렸다.


”제게 왜 시련을 주십니까! 듣고 계시다면 제발 저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누구를 향한 외침인지도 모르겠다. 신일 수도, 자신일 수도,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눈을 채 감지도 못하고 죽은 철환의 눈을 덮어준다.


어두움으로 둘러 쌓인 주변 풍경 속에 혜리와 홍심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차가워진 철환을 뒤로한 채 승호는 일어서서 발걸음을 홍심에게로 옮긴다. 홍심의 창백한 얼굴은 싸움 이후 더 창백해져 있다. 숨을 쉬는지 손을 코에 대보았다. 다행스럽게 숨을 내쉰다. 하지만 무리한 힘을 운용한 직후라 홍심의 상태도 좋지 않다.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에 살짝 홍심의 어깨를 건드린다.


”홍심 님. 홍심 님.”


홍심의 눈이 슬쩍 떠졌다. 흐릿한 눈으로 승호를 바라보다 잘 보이지 않는지 여러 번 눈을 깜빡인다.


”승.. 호 님?”

”네. 저 알아보시겠어요?”

”네..”


힘없는 목소리로 홍심이 말을 하려다 멈춘다. 아무래도 몸에 힘이 없어서인 거 같다.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김시헌은 사라졌어요.. 홍심 님과 교주님 덕분에요. 그리고 죄송해요. 제가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김시헌이 죽었나요? 다행..이에요.”

”네.. 그리고 교주님은 돌아가셨어요. 제 탓이에요.”

”네? 결국…”


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 홍심은 눈물을 흘린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승호의 마음도 아파졌다.


”살려주세요!”


혜리가 정신을 차렸는지 도움을 요청한다.


”혜리에게 가줘요 승호님. 전 괜찮아졌어요.”

”네. 홍심 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혜리에게 뛰어가서 혜리를 살펴본다. 혜리의 몸 곳곳이 찢겨 있어 피가 흐르고 있다. 고통 때문에 혜리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있다. 그 모습을 본 승호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해졌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너무 아파요.”


혜리의 말에 승호가 정신을 차린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전화부터..”


다급하게 119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런데 낯이 익네요.”

”저를 알아보시나요?”

”아! 혹시 제 꿈에 찾아오셨던 그분이신가요?”

”네 맞아요. 창훈이 친구 승호라고 해요.”

”창훈이.. 친구. 그렇구나. 창훈이는 같이 있어요?”

”여기 왔을 때부터 창훈이는 없었어요.”

”몸이 너무 아프네요. 제 상태가 어떤가요?”


정확한 상태를 알 수는 없었지만 흐른 피와 찢긴 상처 부위들에서 좋지 않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 빨리 가긴 해야 할 거 같아요. 여기가 좀 외져서 오는데 시간이 걸리긴 할 거예요.”

”죽지는 않을까요?”

”절대 죽지 않아요.”

”고마워요.”

”잠깐 주변을 좀 살펴보고 올게요.”


승호는 일어나서 주변상황을 살펴본다. 죽은 철환의 모습도 다시 보고 홍심의 모습도 보인다. 싸움의 흔적 때문인지 어지러이 돌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찬찬히 살펴보고 나니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아까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까 내가 만난 분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 힘은 또 뭐지?’


뭔가에 씐듯했던 아까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흉내를 내보라고 해도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신을 만났던 게 아닐까?’


알 수 없는 의문만 쌓일 뿐이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유난히 긴 밤이었다.


’이 모든 게 꿈이길..’


승호는 간절하게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철환의 죽음, 혜리 그리고 홍심. 자신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과제 같은 게 주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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