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성프리맨 Jan 17. 2024

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21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던 소영이가 말을 한다. 


”경남아. 우리.. 회사에서는 모르는 사이다? 내 말 이해하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걸 이해는 했지만 이런 얘기부터 꺼내는 모습이 다소 실망스럽다. 


”응. 그게 맞지.” 

”미안. 그럼 갈게. 인트라넷 뒤져보면 내 연락처 알 수 있을 거야. 편할 때 연락해.” 

”어..” 


잠시 동안이었지만 다시 또 그녀를 마주쳤다. 한국에 올 때마다 마주치는 우연이라니.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 인연이 아닐까라는 미련이 생긴다. 잠시 떠돌던 생각을 숨기고 다시 경영지원팀으로 이동한다. 




”첫날부터 정신없었을 텐데 고생 많았어요.” 

”안녕히 계세요.” 


첫날이라 먼저 가라는 배려를 받았지만 다른 동료들은 인사를 끝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아 있다.  


’야근하는구나. 다음 주부터 내 모습도 비슷해지겠지. 퇴근부터 하자 오늘은.’ 


퇴근길에 전화가 온다.  


’모르는 번호..’ 


”여보세요?” 

”안녕? 번호 저장 안 했어?” 


’소영이?’ 


”아.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어. 난 이제 퇴근 중이야.” 

”그래? 잘됐다. 혹시 약속 있어?” 

”뭐.. 딱히 없긴 한데.” 

”없긴 한데..? 쉬고 싶구나?” 

”아냐.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고.” 

”그럼 30분 정도만 나 기다려 줄 수 있어? 오랜만인데 내가 저녁 살게.” 


’언제나 멋대로 내 마음을 휘젓는구나.' 


그런데 거절하지 못하겠다. 아니 만나고 싶다. 


”그럴게. 여기 회사 옆에 카페 있는데 거기 들어가 있을게 그럼.” 

”응 좀 이따 봐.” 


그토록 연락할 땐 답변 하나 없었는데 얼굴 한 번 봤다고 아무렇지 않게 연락이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혹시 그때 왜 답변하지 않았냐고 화를 내볼까? 아니지. 벌써 10년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지만 잊었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기억은 생각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더 크게 생각났다. 


’후.. 모르겠다. 그냥 만나보자.’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중간에 다시 집으로 간다고 연락하고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몇 번이나 들었지만 전화기만 만지작 거리다 다시 내려놨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그녀와의 만남이 더 기다려지니까.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한다. 난 아직 완전히 잊지를 못한 거 같다.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는 답을 듣고야 말 테다.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문을 쳐다봤지만 아직 그녀는 오지 않는다. 시간을 살펴보니 30분도 조금 지났다. 살짝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없애려 노력 중이던 차에 소영이가 들어왔다.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퇴근하려는데 자꾸 술 마시자고 붙잡는 거 뿌리치느라.” 


시간이 흐른 만큼 제법 소영이도 성숙해져 있었다. 외모도 옷차림도 회사원의 느낌이 난다. 하지만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사귀던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다. 나도 모르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경남아? 뭐야. 나 이상해? 엄청 뚫어져라 쳐다보네.” 

”어? 아! 잠깐 정신이.” 

”밥 먹으러 갈래? 아니면 술 한잔 할까?” 


밝은 곳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식사를 할 자신은 사실 없었다.  


”그럼 술이나 마실까?” 


다소 침체된 목소리로 말을 건네서일까 소영이도 내 눈을 살짝 피한다. 


”그러자.” 


밖으로 나간 우리는 어색하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먼저 말을 걸어볼까 싶다가도 말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 다시 속으로 삼키기를 몇 번 반복했다. 


”경남아.” 

”소영아.” 

”어? 먼저 말해.” 

”아니야. 네가 먼저.” 


아마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엇갈리듯 동시에 말을 꺼냈다 양보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렇지?” 

”그러게. 벌써 우리도 30대네.” 

”믿기지가 않아. 근데 넌 그대로네.” 

”에이 아니야. 많이 늙었어.” 

”야! 아직 서른밖에 안 됐는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어. 아 여기야. 이 집 분위기도 좋고 대화나누기 좋아. 들어가자.” 


가게 안은 살짝 어두운 빛이 감돌고 아직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용히 대화 나누며 술 마시기에 좋아 보인다. 소영이가 익숙한 듯 이것저것 주문한다.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아냐. 난 여기 첨 와봐서.” 


주문을 받으러 온 점원이 사라지자 다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아무래도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하루종일 어색하게 있다가 갈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짝 용기를 내서 먼저 말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