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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18. 2024

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22 - 완결

“그때 왜 답장하지 않았어?” 

”음..”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후회가 밀려왔지만 돌이킬 수는 없다. 그녀의 입만 긴장한 채 바라보고 있다. 한참 동안 고민하다 멈칫하기를 반복한다. 


”사실 그게 내 이별 준비 방식이었어. 좀 더 직접적으로 너한테 얘기해 줬어야 하는 걸까에 대한 후회는 있었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뜻을 알 수도 있겠지라고 그때의 난 생각했던 거 같아. 네가 메시지 보낼 때마다 많이 울었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서. 근데 있잖아. 현실적으로 우리 사이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어. 널 많이 좋아하지만 나 스스로를 지켜야 했거든.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십 년이 지나서야 가능한 일이 되었잖아.” 


맞는 말이다. 십 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긴 시간. 내가 캐나다로 가는 그때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분명 소영이의 행동이 맞다. 하지만 메시지에 답변 정도는 보내줄 수도 있었던 거 아닌가. 그게 서운했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면 독하게 정을 떼야하는 소영이를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걸까. 


”그래도 답변이라도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나도 그건 후회해. 그때는 독해져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어. 나도 너 보고 싶었어. 마지막 날 공항에 배웅하러 가고 싶었고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었어. 근데 그래서 바뀌는 게 뭐였을까? 한 번은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자리가 생겨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네. 어쨌든 결국 넌 약속한 대로 한국에 다시 왔네.” 

”맞아. 다 맞는 말이네. 서운하다고 느껴지는 건 그냥 감정의 문제일 뿐이니까. 그래도 속이 좀 후련해졌어. 다시 만나서 반갑다.” 

”나도.” 


슬픈 눈으로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흘러간 시간만큼 우리의 모습도 감정도 상황도 모두 변해 있었다. 과거에 누구보다 뜨겁게 만나고 사랑했던 사이였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관계. 누구 탓을 해야 한다면 내 탓이 더 큰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와서 그런 건 대수롭지 않을 뿐이다. 


”같은 회사일 줄은 몰랐어.”

”그러게. 우린 뭐 이렇게 맨날 우연이 겹칠까?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인연인가 싶기도 했어.” 

”인연. 그래 우리 인연이었지.” 


과거형으로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씁쓸해 보인다. 


”아참 만나는 여자는 있어?” 

”지금은 없어.” 

”지금은? 뭐야 너 캐나다 가자마자 다른 여친 만든 거였어?” 

”아냐. 한동안 나도 참 힘들었어. 누굴 만날 여력도 안 됐었고.” 

”그래. 말이라도 고맙네.” 

”넌?” 


내 물음에 소영이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을 한다. 


”나 내년에 결혼해.” 

”어. 그렇구나. 사내 커플?” 

”아니. 기분이 좀 묘하네. 너한테 이런 얘기를 꺼내니까.” 

”괜찮아.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 만나는 사람 있다고 해서 다행이야.” 

”응. 나도 하나 솔직히 말할게. 이해가 안 되겠지만 사실 나 2년 정도는 너 기다렸다.” 

”정말?” 

”거짓말 아니야. 혹시라도 네가 돌아오면 좋겠다 하는 맘으로 버텼거든. 2년이나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어. 주변 친구들이 나보고 얼마나 갑갑해했는지 알아? 차라리 군대 간 남자친구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고. 맞는 말이긴 하지. 이건 짝사랑도 아니고 기약도 없고 연락도 안 하는 이상한 사이였으니까.” 

”힘들었구나 너도.” 

”근데 오히려 그렇게 지독하게 기다리고 나서 감정이 다 정리됐어. 더 이상 미안한 마음도 안 생겼어. 괜히 나 혼자 할 만큼 다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그러다 학교에서 지금 결혼할 사람도 알게 되었어. 내가 힘들 때 옆에서 기다려줬던 사람이거든.” 


이런저런 소영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응어리져 있던 감정의 골도 어느새 사라져 가고 있었다. 물론 아쉬움이 쌓여 미련이라는 감정으로 변해 있던 것까지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고 나서 우리는 술 한잔만 잔을 부딪치고 마셨다. 그리고 남은 음식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첩장. 나오면 줄거지?” 

”어? 그래.” 


예상치 못했다는 듯 소영이가 살짝 놀랐다. 


”괜찮아. 우리는 동창이잖아. 친구 결혼식인데 가야지.” 


잠시동안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 부탁하나 해도 돼?” 

”말해.” 

”별 다른 뜻있는 건 아니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 

”그래.” 


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고마웠어 경남아. 좋은 사람 만나.” 

”결혼 축하해.”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뒤돌아서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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