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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24. 2024

그는 나를 모른다 1

새로운 이야기를 한 번 써보려고 하는데 이런 내용을 써본 적이 없어서 비정기적인 연재가 될 거 같습니다. 아무쪼록 재미있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날마다 같은 시간 똑같은 곳에서 기다리지만 그는 오늘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혹시 내 탓인가?


‘그럴 리가 없어!’


새벽 2시 30분. 오늘 일정을 위해서라도 잠을 자긴 해야 하는데.


[체리콕님이 접속하셨습니다.]


‘왔다.’


나타나겠지. 나타나라. 내가 있는 곳으로 와 줘. 10분이 흘렀다. 여전히 그는 메시지조차 없다. 아무도 없는 사냥터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지만 결국 그는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흥. 맘대로 해. 나 혼자 하면 돼.’


보스가 리젠됐다. 이까짓 보스 따위 혼자 없앨 수 있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보스를 잡으러 참여한다. 차근차근 그가 알려줬던 방법대로 공격을 해본다. 


‘별 거 아니잖아. 혼자 하면 돼.’


갑작스럽게 렉이 걸린다. 움직임이 둔화되기 시작하더니 그 틈을 타 보스에게 공격을 당한다.


[미노타우로스의 공격력이 증가되었습니다.]


‘큰일이야.. 도망가야 하는데 렉이 너무 심해.’


보스가 쫓아올 수 없는 구역으로 대피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움직임이 둔하다. 이대로라면 얻어맞다가 죽을 상황이다. 하릴없이 공격당하며 죽기를 기다리던 그때 그가 나타났다.


“뭐예요.. 왜 지금 나타났어요?”

“일단 보스부터 잡고.”


능숙한 움직임으로 그가 보스와 나 사이로 틈입하더니 일격을 가한다. 나보다 20 레벨 이상 높은 그는 움직임이 다르다. 늘 봤던 모습이지만 오늘도 역시 멋지구나.


[크워어어. 나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가 죽었습니다.]


“비앙카. 아이템 가져요.”

“필요 없어요.”


한참 동안 말없이 우리는 한쪽 구석에 위치한 곳에 나란히 앉았다. 말을 쓸까 말까 몇 번을 치다 용기를 낸다.


“왜.. 그동안 안 왔었어요?”

“바빴어요. 일이.”

“그래요. 왜 번호도 안 알려줘요?”

“난 지금 정도로도 충분한데요. 비앙카는 아니에요?”

“아니 그건 아닌데..”


우리는 서로의 성별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남자 캐릭터, 나는 여자 캐릭터. 고작해야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사이. 그런 우리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난 또 뭘 기대하고 있는 거지? 캐릭터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복잡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고 늘 생각했다. 서로의 개인정보조차 아는 게 없으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다릴 수밖에. 확신 없는 기다림도 지친다. 나도 모르게 메시지를 쓴다.


“보고 싶었어요..”


미동 없는 그의 캐릭터. 속이 타들어간다. 


‘괜한 말을 했어. 이제 정말 끝이구나..’


“저도요.”


‘어? 뭐라고?’


“정말요?”

“네. 번호 알려줄게요.”


그는 정말로 번호를 알려줬다. 이게 무슨 일이지.


“만날래요?”


이번엔 적극적으로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숨길 수 없이 기뻤지만 채팅만큼은 차분하게 해야 한다.


“그럴까요? 어디서 볼까요?”

“어디가 편한데요?”


‘용기 내서 성별이라도 물어볼까? 아니야.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그가 여자일 것만 같다. 정말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다. 그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사실 중요하지 않다. 순수하게 그가 궁금할 뿐이다. 



우리는 6개월 전에 게임에서 처음 만났다. 일상이 지루해서 찾다가 발견한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


‘양산형 MMORPG구만.’


캐릭터가 귀여웠고 그게 전부였다. 딱히 게임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다. 인기 있는 게임은 많았지만 이상하게 남들이 하는 건 하기 싫어하는 청개구리 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다. 회원가입을 하고 캐릭터를 선택해야 하는 화면. 언제나처럼 고민 없이 여자 캐릭터를 선택했다.


‘이래야 쩔도 해주고 초반에 키우기가 편해.’


딱히 여자행세를 할 마음은 없지만 게임을 편하게 하고 싶기는 했다. 그리고 남자 캐릭터는 이상하게 정이 안 간다. 코스튬부터 시작해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달까. 기왕이면 눈도 즐거우면 좋은 거니까. 캐릭터를 선택하고 사냥터에서 잠시 튜토리얼이 진행된다. 귀찮으니 스킵. 


‘게임이야 뭐 뻔하지. 해보면서 배워가면 돼.’


그렇게 시작한 게임. 욕심은 없었는데 날마다 하다 보니 정이 가기 시작한다. 인기 없는 게임이지만 그래도 초보 사냥터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사기당했어요. tkrlRnsdlek30 사기꾼이니 조심하세요.”


언제나처럼 사기당하는 놈과 사기 치는 놈이 있다. 말도 섞기 싫을 정도로 하찮게 느껴진다. 사회 생활하기도 지치는데 게임에서도 지긋지긋한 모습을 봐야 하다니.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님아. 같이 사냥할래요?”


말투를 보아하니 초딩인가.


“아뇨. 혼자 해도 충분한데요.”

“혹시 여자세요?”


게임 캐릭터와 실제를 구분 못하는 호구 등장. 역시나 호구는 언제나 있다. 일단 좋은 템이라도 받으면 좋겠다 싶어 장단을 맞추기로 한다.


“네.. 오늘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장비도 구리고. 사냥터 가서 죽은 게 벌써 몇 번짼지.”

“에구구. 저랑 같이해요. 저 진짜 세거든요. 나이가 몇 살이에요?”


‘몇 살이라고 하지? 잘 찍어야 하는데..’


“저 13살이요. 님은요?”

“오. 내가 오빠네. 14살인데 ㅋㅋ 가자 내가 지켜줄게. 나만 믿어!”


‘믿긴 뭘 믿어.. 쯧.’


한심하지만 일단 따라나서기로 한다. 그때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지만 미래는 알 수가 없는 법이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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