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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30. 2024

그는 나를 모른다 2

나보다 최소 10 레벨은 높은 초딩을 따라가는 동안 끝도 없이 말을 건다.


‘14살 수준이 그렇지 뭐.’


지겹지만 가끔씩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럴수록 더 신이 나는지 더 많은 말을 쏟아낸다. 그렇게 도착한 사냥터.


‘어? 여긴. 둘이서 사냥하기엔 너무 힘든 곳인데.’


“님? 잘못 온 거 같은데 빨리 가요. 여기서 잘못 만나면 둘 다 누워요.”

“ㅎㅎ 걱정 마. 센 몹은 가끔 나와서 적당한 애 몇 마리 잡으면 금방 렙업해.”


무책임한 모습을 보며 괜히 따라왔다 싶었던 찰나 몬스터가 나타났다. 하필이면 우리가 있는 곳 바로 근처에서 나타나 버렸다.


“으악!”


[전사는기세 님이 로그아웃하셨습니다.]


이런 XX. 결국 날 혼자 남겨둔 채 컴퓨터를 꺼버렸다. 근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듯하다. 컴퓨터를 강제 종료해도 결국 사냥터에서 죽게 된다는 걸.


‘쯧쯧..’


근데 아까부터 몬스터가 날 쫓아온다. 스태미나가 떨어져서 이제는 걷는 속도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죽을 상황. 적과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렇게 한대, 두대 대미지를 입기 시작하자 HP가 급격히 줄어간다.


‘겨우 모은 경험치였는데..’


자포자기한 채 죽기만을 기다리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다. 딱 봐도 비싼 아이템으로 치장된 캐릭터.


‘고랩이다.’


그는 지나치지 않고 고통받던 날 몬스터로부터 구해줬다.


“감사해요.”

“딱 봐도 여기 올 레벨도 아닌데 왜 왔어요?”

“아니.. 파티원이 있었는데 갑자기 나가버려서요. 도와준다더니 여기로 끌고 와 놓고선 어이가 없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음.. 내가 도와줄까요?”

“네? 그럼 좋긴 하죠..”


그렇게 그와 파티를 맺고 도움을 받았다. 굳이 저랩 사냥터에서 놀지 않아도 되는 그였지만 딱히 상관없다는 듯 몇 시간 동안 함께 사냥을 도와줬다. 그 덕에 내 캐릭터도 빠른 성장을 하게 된다. 그의 닉네임은 체리콕이었다.



우연한 첫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약속한 듯 같은 시간에 접속했고 항상 같이 사냥을 다녔다. 물론 내 레벨이 낮기 때문에 항상 그가 희생을 하는 구조였다. 하루는 그런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기도 하고 궁금해 물어봤다.


“체리콕님?”

“네 왜 그러시죠 비앙카 님?”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랩업은 포기하신 거예요?”

“음.. 뭐 딱히 상관없어요.”

“저랑 다니면 재미없지 않아요?”

“재미로 게임하는 게 아니라서 괜찮아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게임을 재미로 하지 않는다라. 그럼 뭐 하러 하는 거야.


“?”

“하하. 그냥 게임 접으려고 했었는데 그날 만나서 조금 더 연장하고 있는 거라서요.”

“왜요. 레벨도 키워놓았으면서 아깝지 않아요?”

“아깝진 않아요. 이젠 더 이상 같이 다닐 사람도 없고..”


화면상의 캐릭터일 뿐이었지만 그의 채팅 이후의 모습은 씁쓸해 보였다. 마치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저 때문에 일부러 이 시간에 접속하는 거예요?”

“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약간은 그런 것도 있지만.”


알 수 없는 그의 대답.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내가 빨리 레벨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도 게임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틈나는 대로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사실 별게 없었지만 몇 가지 수확은 있다.


1. 일단 그도 나처럼 성인이라는 것
2. 회사원이라는 것
3. 대화의 상대가 필요해 보인다는 것


이거면 충분하다. 실제로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온라인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는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인 것 같다. 최근에 읽은 소설책이 있는데 가슴이 아파서 며칠 동안 밤만 되면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배웠던 피아노 곡을 오랜만에 쳤는데 운율이 너무 구슬퍼 도저히 칠 수가 없었다고도 했다.


‘남자 치고 감수성이 풍부한데?’


그러다 문득 아차 싶었다. 넷카마 행세를 하는 내가 상대방 캐릭터만 보고 성별을 알 수는 없는 일이니까.


‘혹시..’


약간의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나 보다. 어쩌면 그가 남자가 아닌 여자이길 바랐던 건 아닐까? 여자라고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자 조금 더 이해 가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감수성, 행동, 대화. 모든 게 여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도 나에 대해 생각을 해봤을까? 그 뒤로 그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솔직히 물어볼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물어보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지는 인연이 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처럼 우울한 때 게임에서 만나는 그가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괜한 말실수 때문에 사라져 버리면 견디기 힘들 거 같다. 마음을 숨기고 우리는 여전히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비록 게임 속이었지만 말이다. 그와의 순간들이 즐거웠다. 회사에 가있는 현실에서는 빨리 시간이 흐르기만 바랐다.


‘빨리 체리콕 님을 만나서 놀고 싶어. 오늘은 뭘 하면 좋을까?’


이제는 내 레벨도 꽤나 높아져서 둘이서만 파티를 맺어도 웬만한 사냥터는 헤쳐 나갈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접속을 했다. 몇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 늦나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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