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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21. 2024

40대, 소중한 건 아껴서 소모하고 싶어지는 때

열세 걸음

40대가 돼서라고 하기엔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최근에 깨달은 모습이 있다. 취향에 맞는 소설을 읽거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뒀을 때. 최대한 여운을 오래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나와 달리 재미있는 콘텐츠는 바로 완결까지 직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반대로 난 최대한 아껴가며 조금씩 생각날 때마다 소모하고 싶어 한다.

 

”뒷 이야기가 궁금하잖아요.” 


물론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떨 때는 정말 빨리 보고 싶어 기다려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다 보고 나면 김이 식는달까?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음식도 마찬가지로 먹기 전까지는 그 맛을 상상하며 즐거운 식감을 상상하다 막상 먹고 나면 허탈해진다. 


”나이 들어가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단순히 나이 때문이라면 조금 슬플 거 같긴 한데. 물론 지금 20대에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같은 행복과 재미를 찾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변하기는 했구나. 조금 더 나아가 만나는 사람 그리고 대화에서도 변화되었음을 느낀다. 더 이상 쉽게 친해지고 속에 있는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만큼 상대방에 대해 마음을 열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마음이 열리지 않는 때도 있다. 한때는 그런 내 모습이 갑갑했다. 사람들에게 친화적으로 다가가서 말도 잘 걸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이번 회식 때는 제발 좀 참석하면 안 돼요?” 

”너무 곁을 안 내주는 거 같네요.” 


마지못해 참석한 회식은 즐겁지 않았다. 얼굴은 애써 웃었지만 무슨 말을 하며 어울려야 하는지 이 자리를 통해 무엇이 좋아지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회식은 그런 자리가 아니에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었나. 그래도 시간이 들어가는데. 




소설 읽기도 영상을 보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시간이 들어간다. 예전에는 어렴풋이 생각하던 시간의 소중함이 이제는 더없이 크고 소중하다. 그래서인가 보다. 한 번을 읽거나 보더라도 그 시간을 최대한 음미하고 싶다. 한 번에 불타오르듯 감정을 연소시키고 싶지 않다. 눈치 볼 필요 없이 나에게 충실해지는 게 중요하다. 인생을 살며 가장 중요한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임에도 생각보다 귀 기울이지 못한다.  


”조금만 있다가.. 몇 년 뒤에..”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40대가 된 지금에서도 여전히 예전처럼 모든 걸 뒤로 미루기만 할 수는 없었다.  


’미루다 보니 40대가 되었는데 여기서 더 미루면 어떻게 되는 거지?’ 


결정을 미뤘던 이유는 다양했다. 그래도 이유 하나를 꼽자면 잘못된 결정이 ‘실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학습되어 온 실패자가 될까 봐 무섭고 두려웠다. 그 뒤의 삶은 불 보듯 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내 주변의 평범했던 사람과 다른 삶을 살게 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건 특수한 경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다. 삶의 방식이 좋다 아니다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실패라는 건 애초에 정해져 있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40대가 된 지금 잊고 지냈던 취향을 찾았다. 뒤늦게 알아챈 만큼 내게 다가오는 소중한 것을 함부로 다루고 싶지 않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내게 의미가 있다면 그걸로 됐다.  

’부디 오랫동안 아끼는 것들을 음미하며 살고 싶어.’ 


지금의 마음이 한참 동안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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