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와동 아이들 5

정호네

by 고성프리맨

[주의] 작품의 특성상 비속어가 있음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빠가 나간 지 한참이 되도록 모녀는 아무것도 할 힘이 생기지 않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힘든 시간이다.


”얘들아 미안. 배고프지? 엄마가 빨리 밥 해줄게.”

”엄마!”

”응? 왜 할 말 있어?”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


잠시동안 정적이 흐른다. 다롱이가 불안하게 엄마와 아롱이를 번갈아 쳐다본다.


”아롱아..”

”응.”

”엄마도 이렇게 사는 거 싫긴 해. 근데 너희를 낳아준 아빠잖아. 엄마는 괜찮아. 아빠도 변할 거야 언젠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 아빠는..’


아롱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갑갑한 마음에 혼자 옥상에 올라간다.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어. 기왕이면 자동차에 치어 죽어서 보험금이라도 주면 좋겠네. 제발 죽어라. 아빠 좀 죽게 해 주세요.’


옥상에서 바라보는 일층은 달콤해 보였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왠지 마음도 몸도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빠만 없으면 돼.’


”아빠를 죽이고 싶니?”

”누구세요!”


아롱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린다. 거기엔 하얀 옷을 입은 깡마른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흐릿하게 보이지만 눈빛만큼은 매섭다.


”내가 죽여줄 수 있어. 정말 원하니?”

”귀.. 귀신?”

”죽이고 싶니?”


공포심보다 아빠를 죽여줄 수 있다는 소리에 더 관심이 간다.


”네.. 죽여줘요.”

”몸이 필요해.”

”네?”

”물러서! 아롱아!”


이상한 낌새를 느낀 엄마가 어느새 옥상에 올라왔다.


”신님이시여.. 저희 아이는 신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차라리 제게 강림하십시오.”

”죽이고 싶니?”


아롱이가 엄마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너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리해 주마.”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띤 여자는 그대로 아롱이의 몸으로 흡수되듯 들어간다. 잠시동안 꼿꼿이 서서 강풍을 맞듯 흔들거리더니 그대로 주저앉는다.


”아롱아!”


엄마가 달려가서 아롱이를 잡으려고 할 때 눈이 번쩍 떠지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크게 웃는다. 그리고 미처 잡을 새도 없이 날듯 일층으로 내달리더니 그대로 도로를 달린다.


”아롱아! 돌아와!”


빠른 속도로 아롱이는 엄마의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잠들었던 다롱이도 소리에 깬 듯 옥상에 올라왔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언니는 어딨어?”

”다롱아.. 아롱이가. 아롱이가.”


울먹이는 엄마를 보며 다롱이가 울면서 다가가 안는다.



수와동에서 통장 역할을 하는 옥순이네 집엔 귀하게 얻은 막내아들 정호가 있다. 엄한 시어머니 때문에 옥순 어머니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출산을 해야 했다. 결국 딸을 셋이나 낳고 포기해야 겠다 생각할 즈음해서 느지막하게 막둥이 아들을 하나 낳았다.


”애미야 고생했다. 드디어 우리 집 대를 이을 수 있겠구나.”


시어머니는 눈물을 지으며 옥순 어머니 손을 잡았다. 평생 괴롭게 만드는 시어머니였기에 미움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이라 생각했다.


”저도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어머니.”


그 후 정호가 100일 정도 되었을 때 시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렇게 모질게 대하더니 결국 손자를 보고 나서야 세상을 떠나셨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괴롭히지 마세요. 행복하시길.’


정호는 누나들의 사랑 그리고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하지만 여섯 살 즈음해서 조금 남다른 아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다 같이 잠든 어느 날 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민감한 옥순 어머니는 도둑인가 싶어 황급히 일어났다. 밖으로 뛰어나가보니 정호가 문을 열고 대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정호야! 어디 가니? 오줌 마려우면 화장실을 가야지!”


정호는 대답 없이 대문으로 걸어갔다. 이상하다 싶어 멍하니 지켜보는데 신발도 신지 않았다. 깜짝 놀라 뛰어가 정호를 붙잡는다. 몸을 붙잡자 정호는 휙하니 째려보기 시작한다.


”저.. 정호야? 왜 그러니?”

”이 썅년. 잘 왔다. 나가자! 죽어도 싼 년!”

”정호야! 정신 차려!”


욕설을 내뱉는 아이를 보며 놀라서 등을 세게 때렸다. 하지만 정호는 계속해서 욕을 하며 악을 쓰는 중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가족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호는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졌다.


”정호야! 정호야!”


알 수 없는 몽유병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