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와동 아이들 6

정호네

by 고성프리맨

[주의] 작품의 특성상 비속어가 있음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호의 몽유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주기는 점점 짧아지면서 최근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증상이 생겼다. 정호 어머니는 아무래도 시어머니의 저주인 거 같아 마음이 찜찜하고 마치 아들의 병이 본인 탓인 거 같아서 괴롭다.


”여보. 어머니를 위해 굿을 한번 해드려야 할 거 같아요.”

”요즘 세상에 굿은 무슨..”

”어머님은 원래 무당집도 잘 다니셨잖아요. 아무래도 정호 몽유병이 어머님 때문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아! 우리 엄마가 당신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어!”


하려던 말을 채 내뱉지도 못한 채 속으로 삼킨다.


”그래도 굿을 합시다. 정호가 계속 이유 없이 저러는 것도 그대로 둘 순 없잖아요.”

”후.. 당신이 알아서 해봐.”


평소 시어머니가 자주 만나던 아롱이 엄마가 문득 떠올랐다.


’한번 집에 초대를 해야겠어.’




아롱이네 집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는 처음 만나는 데 이렇게 다시 무당을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니.. 집 대문이 왜 부서져 있지..”

”거기 전에 학범인가 그 양반이 왔다가 귀신 보고 놀라서 문 부쉈어요.”


밖에 나와 있던 동네 할머니가 얘기를 건넸다.


”귀.. 신이요? 무슨?”

”뭐 자세히는 몰라. 근데 그 아롱이 아빠가 원래 좀 안 좋았던 거 알죠? 원한 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뭐. 에이 귀신 옮겨 붙을까 봐 무서워서 말도 잘 못하겠네. 암튼 그래. 괜히 집 쳐다만 봐도 으스스하고 그런다니까. 이사를 가던가 해야 하는데 원.”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야 하나..’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참에 아롱이와 다롱이가 손 잡고 집으로 걸어오고 있다.


”어. 아롱아 안녕? 다롱이도 안녕.”

”아.. 안녕하세요.”

”어머님은 일하고 있으시니?”

”네에 아마 그러실 거예요.”

”그렇구나. 근데 아롱아 어디 아프니? 얼굴이 안 좋아 보이네?”

”아니에요. 그냥 몸이 좀.”

”그래. 동생이랑 들어가 어서. 아줌마는 엄마 좀 만나야겠다. 잘 있어. 다음에 보자. 아참 이거 가지고 가서 동생이랑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안 그러셔도 되는데..”

”괜찮아. 받아둬.”

”감사합니다.”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아롱이네 아빠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분명 가정폭력도 있을 테지. 불쌍해라.’


아롱이의 힘들어하는 표정을 보니 안쓰러워서 용돈이라도 줘야겠다 싶었다. 아롱이 엄마가 있는 신당은 허름한 빌라의 반지하에 위치해 있다. 아무래도 집에서 무당일을 하기엔 좀 그렇다고 생각해서 따로 구한 게 아닐까 싶지만 알 수는 없다. 바깥 유리에 붙어 있는 살짝 빛바랜 ‘卍’ 자가 보인다. 1층으로 내려가 벨을 누른다.


”아롱 엄마 있어요?”

”안녕하세요 정호 어머님. 들어오세요.”

”아롱 엄마? 눈이 왜 그래요?”


녹색과 보라색 그리고 검은색이 조화롭지 못하게 눈두덩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퉁퉁 부어 있다.


”신을 모시다 보면 자주 생기는 일이니 괘념치 마시지요. 혹시 어머님 때문에 오셨습니까?”

”어? 네네.”


’어떻게 알았지?’


”어머님이 평소 저를 자주 찾아오셨지요. 출산하기 전에도 한번 찾아오셨었어요. 손주의 평안을 위한 부적을 써달라셨는데.. 그리곤 뵐 수 없었네요.”

”아.. 부적 지금도 집에 있는데 아롱 엄마가 써준 거였군요.”

”정호에게 문제가 생겼죠?”

”네.. 다 알고 있나요?”

”휴..”


아롱 엄마의 깊은 한숨소리가 괜히 불길함을 더한다.


”왜 그래요?”

”정호 어머니. 시어머님이 많이 노여워하고 있어요. 지금도 서슬 시퍼렇게 쫓아서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네!?”


너무 놀라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무서워서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제가 어머님한테 그리 잘못한 게 없는데. 어찌 그러실까요?”

”잠시 대화를 좀 나눠보겠습니다. 제가 이상한 말을 하더라도 놀라지 말고 가만히 있으셔야 합니다. 절대 저를 건드리지도 마시고.”

”네에.”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킨다. 아롱 엄마는 손에 방울을 들고 입으로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읊고 있다. 방울 소리가 점차 커지며 아롱 엄마의 눈에서는 점점 검은 눈동자가 사라져 간다.


”이 썅년! 감히 네년이 나를 조롱하는구나. 늘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지 네년은. 내가 죽었을 때 고소해하던 그 표정을 보고 뒤틀리는 줄 알았다.”


한참 동안 아롱 엄마의 입에선 욕설과 저주가 번갈아 터져 나왔다. 당혹감과 공포심 때문에 이 자리를 당장 벗어나고 싶었지만 꼼짝할 수가 없다.


”아.. 아롱 엄마? 제발 이제 그만..”

”네가 그리도 끔찍이 여기는 네 아들놈이 죽으면 정신을 차릴까?”

”잘못했습니다! 제발 정호는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정말 죽을죄를 지은 듯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빈다.


”이제 일어나세요. 정호 어머니.”

”네?”

”어머님의 노여움이 상당히 큽니다. 혹시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신 거 아니신가요?”

”절대 그런 짓 한 거 없어요! 제가 어머님을 모신 게 자그마치 20년이 넘었는데..”

”저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느껴져요. 정호 어머니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으세요. 그게 풀리지 않는다면 집에 화가 미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도와줘요 아롱 엄마. 어떻게 하면 돼요?”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해원굿을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해원굿이 뭔가요?”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달래서 원래 가셔야 하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드리는 의식입니다.”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날짜는 제가 길일을 정해 몇 개 알려드릴 테니 그때 만나서 일정을 정하면 될 거 같습니다.”

”고마워요. 아참 그리고 이거 약소하지만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진행하면서 얘기 주시면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시고 제가 부적을 몇 장 드릴 테니 정호 몸에 꼭 지니고 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이건 미리 써놨던 거긴 한데 제가 오늘 자시에 다른 한 장을 더 써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몇 번이고 하던 정이 어머니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