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원
기도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식당 뒤편으로는 산과 연결되어 있었고 기도원 주변을 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바스락 소리가 들려 식당 뒤편을 좀 더 걷고 있는데 토끼가 보인다.
”와! 토끼.”
연호는 토끼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시 시작한다. 연호의 걸음에 놀란 토끼는 잽싸게 뛰어 산속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나 무서운 사람 아닌데. 이리 와봐.”
사람 말을 알아들일리 없는 토끼는 계속 도망가고 그 거리는 겨우 연호 걸음걸이로 다섯 발자국 정도 차이를 유지 중이다. 눈앞에서 멀리 사라졌다면 쫓아가지 않았을 텐데 토끼는 애매한 차이를 유지하며 연호를 유혹한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기도원에서부터 꽤나 멀리 걸어와 있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빛이 간헐적으로 비추긴 하지만 살짝 어둡다.
”나 너 그만 쫓아갈래. 이제 돌아가야겠어.”
말을 끝마친 연호가 돌아섰을 때 앞에 길쭉한 뭔가가 눈앞에 있었다. 깜짝 놀란 연호는 그대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준호는 어떤 여자에게 쫓기고 있다. 여자의 손에는 송곳 같은 게 들려 있고 창백한 얼굴과 대조적으로 빨간 피가 눈에서 흐르고 있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으며 옷에는 눈에서 흐른 피가 묻어 점점 빨갛게 물든다. 준호는 영문도 모른 채 도망 중이다. 다만 잡히면 큰일 날 거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있을 뿐이다.
”뭐야! 저리 가!”
달리면서 소리를 질러본다. 하지만 쫓아오는 여자는 송공을 치켜들고 원망의 눈빛을 쏘아대며 달려온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가슴이 터질 거 같다.
’더 이상 못 달리겠어. 쓰러지면 어떻게 막아야 하지?’
일단 여자의 손을 붙잡고 유도 기술을 사용해 뒤로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는 가능한 상황인데 실제로는 어떨지 확신이 안 선다. 하지만 계속 달리다간 그나마 있는 체력마저 다 사라져 버릴 거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요령 있게 뒤로 넘어지면서 앞으로 돈다. 여자의 얼굴이 정면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어? 저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틈에 여자의 송곳이 눈앞까지 다가온다. 송곳과 눈까지의 거리는 대략 5cm.
’아.. 당한다.’
송곳이 시야에서 점점 커지며 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으아아악!” 꿈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할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꿈이다. 눈이 찔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떴다 감았다를 여러 차례 반복해 본다. 딱히 아픔이 느껴지진 않는다.
’휴.. 다행이다. 그나저나 그 여자가 하필.’
잠에서 깬 준호는 심한 갈증이 느껴져 방문을 열고 나가 부엌으로 이동한다. 냉장고를 열고 물을 찾는다. 은색 스테인리스 병이 여러 개 보인다.
’할머니는 맨날 헷갈리게 정말. 어떤 게 물인지 모르겠어.’
똑같이 생긴 병이 여러 갠데 보통 그중에 하나가 마시는 물이다. 할머니는 약초로 끓인 물도 좋아해 쓴 맛을 싫어하는 준호는 꼭 보리차만 마시는 편이다. 일단 따라서 마셔보기 전에는 어떤 게 보리차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찍기가 잘되기만 바라며 컵에 따라본다.
’아! 젠장. 결명자.’
제일 싫어하는 물이다. 다른 병을 꺼내 다시 따라본다. 이번에는 보리차가 맞았다.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한 컵을 비워낸다.
’얼마나 잠들었던 걸까?’
방에 돌아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저녁 11시였다.
’한참 잤네. 요즘 피곤하긴 했어. 그래도 잘 잤다.’
방 한편에 상이 차려져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엔 덮개가 있었다. 보지 않아도 할머니가 저녁상을 차려놓은 걸 알아챈다. 문득 오전에 할머니한테 퉁명스럽게 대했던 모습이 떠오르며 미안해진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화만 잔뜩 내고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본다. 밥 생각이 없었는데 차려진 밥상을 보니 식욕이 생긴다. 자리에 앉아 덮개를 열어본다. 김치찌개, 계란말이, 분홍 소시지 구이, 고등어조림, 김치, 김, 멸치 볶음. 상에는 준호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잘 먹을게요 할머니.’
오랜만에 집에서 먹는 집밥이 오늘따라 더 맛있다. 밥과 국이 식었지만 그래도 맛있다. 한참을 먹다가 다시 꿈에서 본 여자가 생각났다.
’난.. 시키는 대로 밖엔 안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