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원
[주의] 작품의 특성상 비속어가 있음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준호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보다 힘이 센 편이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힘을 이용해 무게 중심을 이동하는 법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은 누구보다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 하굣길에 문제가 터진다.
그날도 평소처럼 조용하게 하교를 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려면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을 여럿 지나야 했는데 하필 담배를 피우던 중학생 네 명을 마주친다. 담배를 피우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마침 잘됐다는 듯 어린 준호를 불러 세웠다.
”야! 야! 이리 와.”
준호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부른다는 걸 알았지만 애써 모른 채하며 가던 길을 가려한다.
”하나.. 이 새끼 봐라 푸하하. 못 들은 척하는데?”
”기분도 그지 같았는데 잘 걸렸다.”
무리 중 두 명이 뛰어가 준호를 붙잡았다. 그냥 보내주길 바란 준호의 소망과는 다르게 결국 중학생이 다가오자 얕게 한숨을 내쉰다.
”와.. 어린 새끼가 한숨? 야 이 새끼 봐라.”
웃으며 다른 무리의 아이를 부르려고 하는 찰나 준호가 다리를 붙잡고 한 명을 넘어뜨린다.
”악! 씨발 내 머리.”
”뭐야!”
옆에 있던 중학생이 당황한 나머지 준호를 발로 차려고 할 때 준호는 옆으로 피하더니 노려본다.
”야! 괜찮아?”
”아아.. 나 머리 졸라 아파. 저 개새끼가 넘어뜨리면서 뒤로 넘어졌어. 죽여버려.”
”야 꼬맹이 이리 와라. 너 오늘 집에 못 가니까 좋은 말 할 때 그냥 와라.”
조금 떨어져 있던 중학생 두 명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준호 쪽을 바라보고 있다.
”야! 뭔데? 쪽팔리게 누워서 뭐 해.”
”아 닥쳐 병신아. 머리 졸라 아파. 와서 이 새끼 좀 잡아봐.”
준호는 앞에 있는 네 명의 중학생의 체형과 주변 공간을 살펴보며 본인에게 유리할만한 위치와 공격 방법을 생각 중이다. 누가 가르쳐 준 적은 없었지만 TV에서 권투선수들이 하던 것처럼 가드 동작도 취한 상태다.
”와. 얘 봐라. 지가 무슨 권투 선순 줄 알아. 얼탱이 없네. 너 우리가 누군지나 알아?”
온갖 폼을 잡으며 중학생이 다가가는 내내 준호는 경계를 풀지 않는다. 천천히 다가오는가 싶더니 주먹을 꽉 쥐고 준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계속 주시하고 있던 준호는 주먹이 날아오는 걸 슬쩍 흘리며 가드하고 있던 손 중 하나를 이용해 상대방의 복부를 때린다.
”컥.”
초등학생이라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준호의 주먹은 생각보다 강했다. 복부를 한 대 맞았을 뿐이었지만 회전력을 실어 때린 주먹이라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 뭐 해 병신들아!”
사태를 지켜보던 나머지 두 명도 피던 담배를 내던지고 달려오기 시작한다. 준호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달려오는 두 명을 노려보며 빈틈을 찾으려 애쓴다. 그때 창문이 드르륵 열린다.
”야이 새끼들아! 잠 좀 자자! 너네 지금 초등학생 다구리 하는 거야? 내가 다 보고 있었다. 이 새끼들 기다려라.”
”아 뭐야. 야 가자!”
”아이씨 나도 데려가!”
웬 아저씨의 호통 한 번에 중학생 무리는 황급히 도망쳤다. 준호에게 당한 아이들도 각자 머리를 붙잡거나 배를 부여잡고 도망간다.
”너.. 얼굴 똑똑히 봤다. 담에 뒤질 줄 알아.”
”뒤지긴 누가 뒤지냐! 정말 뒤지기 전에 집에나 가라 이 새끼들아. 어린놈의 새끼들이 담배나 피워대고 말이야.”
창문에서 호통쳤던 아저씨가 한 바퀴 빙돌아 준호가 있는 골목에 나타났을 땐 중학생들도 멀리 도망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제야 겨우 안심하며 준호는 가드를 내린다.
”야 꼬맹이. 너 어쩌려고 너보다 큰 애들한테 까부냐?”
”감사합니다.”
준호는 그대로 뒤돌아 집으로 가려고 한다.
”어쭈? 무게 잡네. 야야. 잠깐만.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야. 이런 말 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이려나? 하하.”
잠깐 멈칫한 준호는 힐끗 아저씨 쪽을 돌아보고 꾸벅 인사를 하더니 다시 가려고 한다.
”아 거참 성질 급하네. 야! 너 아까 싸우던 거 아저씨가 위에서 사실 다 보고 있었거든? 뭐 어디서 권투 좀 배웠니?”
”눈으로 봤어요.”
”응? 뭐? 그냥 보고 따라한 거라고?”
”네..”
”와.. 너 뭐냐. 자세가 좋던데. 난 또 권투 배운 줄 알았네.”
”그만 갈게요.”
”알았어 알았어. 아저씨가 사실 중학교에서 유도부 코치를 하는 사람이거든. 너 같은 애는 유도 선수를 해야 하는데 관심 없니?”
유도는 잘 모르지만 TV에서 얼마 전에 봤던 올림픽 중계 장면이 떠올랐다.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잡고 넘기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할머니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 돈 없어요.”
”뭐래? 누가 돈 달래.”
”가난해요.”
”나도 가난해 인마. 아저씨가 저기 수와 중학교에서 유도부 코치로 있는 동안은 놀러 와도 괜찮은데 어때 와서 구경 좀 할래?”
”그.. 그래도 괜찮아요?”
”뭐 눈으로 보기만 하는 건데. 그러다 맘에 들면 나중에 중학생 돼서 유도부도 와.”
”가.. 감사합니다. 근데 어떻게 가면 되는데요?”
”너 학교 끝나고 중학교로 오면 한창 형들이 운동 중일 거야. 두꺼운 도복 입고 있는 형들 보이면 거기로 와. 아저씨도 아마 있을 거야.”
”근데 오늘은 왜 집에 있으세요?”
”몰라 인마.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암튼 그리해. 아저씨가 맨날 있지는 않으니까 아저씨 없더라도 그냥 구경하면 돼. 나중에 형들 소개도 해줄게. 내일 보자!”
”네!”
감사한 마음에 준호는 크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집으로 걸어간다. 아까 만났던 중학생 형들에 대한 두려움보다 유도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꼬맹아! 이름이 뭐냐?”
”정준호요.”
”준호. 그래 아저씨 아니 삼촌 이름은 승민이라고 한다. 잘 가라.”
”네 승민 아저씨!”
”저 녀석이..”
승민은 집으로 가는 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품에 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