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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25. 2024

서울행 2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집에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떠나기 전날 엄마가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해 마지못해 승낙했다.


”밥이나 먹자.”

”밥 먹고 싶은 기분 아닌데.”

”우리 둘이 외식한 지도 오래됐잖아. 가자. 엄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은 외식을 거의 한 적이 없었다. 


’엄마와 단둘이 나가는 게 얼마 만이지..’


그리고 내일이면 떠나야 하니 식사 한 끼 정도야 같이 먹으면 좋겠지.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냥 동네 음식점 가서 분식 먹자.”

”아니야. 엄마가 정말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 돈 걱정 말고 사 먹자 오늘은.”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그냥. 내일부터 우리 채원이가 집에 없을 거라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해. 실감도 안 나고. 그리고 너무 반대만 한 거 같아 미안해. 아직도 우리 딸이 아기라고 생각했거든. 어느새 다 컸네. 별로 해주지도 못했는데..”


이런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속에 묘하게 슬픈 느낌으로 다가왔다. 감정이 차오를수록 몸에서도 반응이 생기려 한다.


’싫어. 울지 않을 거야. 내가 선택한 일이잖아.’


어색하게 우리는 한동안 땅을 쳐다보고 걸었다.


”엄마. 어렸을 때 내가 돈가스 먹고 싶어서 사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기억나지. 많이 사주진 못했지만..”

”오늘 돈가스 먹자. 나 먹고 싶어.”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어릴 때 몇 번 가봤던 가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동네에 새로 생긴 일본식 돈카츠 집이 있어서 마지못해 가기로 했다. 맛보고 싶던 돈가스는 옛날 경양식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쉽지가 않다.


”채원아. 메뉴가 좀 많아서 그런데 잘 못 고르겠네. 엄마 것도 좀 시켜줄래?”

”알았어.”


외식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보니 어느새 엄마도 나도 가게에 앉아 있는 순간이 불편했다. 그나마 평범해 보이는 기본 등심카츠 메뉴 두 개를 주문했다.


”채원아..”

”응?”

”원망하지?”

”괜찮아.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니까 이해해.”

”미안해. 그리고 이거.”


엄마는 테이블 위에 봉투를 하나 올려놓았다. 딱 봐도 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두툼한 두께. 봉투를 보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뭐야.. 엄마.”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 속으로 끅끅거리며 겨우 울음을 삼켰다.


”한번 잘해봐. 이제 엄마, 아빠 눈치는 그만 보고.”


’돈은 어디서 났어?’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의 내겐 그 돈이 필요했으니까. 


’분명 힘들게 마련했을 텐데.’ 알지만 내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고마워 엄마. 나.. 꼭 서울에서 성공할게.”


때마침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엄마, 아빠. 갈게요."


부모님의 눈에는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아련한 감정.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순간적이었지만 그냥 이대로 다시 부모님 곁에 있고 싶었다.


”가서 힘들면 다시 내려와. 괜찮으니까.”

”그래. 집 나가면 고생이다. 너도 느낄 거다.”


’아차. 정신 차리자.’


부모님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떻게 결정한 서울행인데. 이렇게 바로 포기할 수는 없지.


”걱정 마요. 앞가림 잘해볼게요.”


아빠는 그런 내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결국 마지막 날까지 화를 냈다. 그런 화내는 아빠를 엄마가 겨우 달래서 집으로 들여보냈다.


”미안하다 채원아. 네 아빠가 걱정돼서 그런 거 알지?”

”그런데 표현을 왜 맨날 저렇게 밖에 못하는 거야? 나도 속상한데.”

”이해해라. 그리고 그때 보탠 돈 사실 아빠도 같이 챙긴 거야.”


알고 있다.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다는 거. 하지만 걱정의 모습이 내게 부담이 될 뿐이다.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게, 살던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게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손.


’미안해요. 난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데려다주고 싶었는데 출근해야 해서. 나중에 서울 방문 한번 할게. 도착하면 꼭 전화하고. 알았지?”

”알았어. 걱정 말고 출근 잘해.”

”꼭 연락해.”

”들어가세요.”


캐리어 하나를 끌고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탔다. 다행히 버스에는 앉을자리가 남아 있었다. 이대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면 된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자유로움. 자유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품을 떠나기로 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고 느꼈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크다. 앞으로 서울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두근두근하다. 올라가기 전에 겨우 여성전용 고시텔을 구했다.


’고시텔 생활은 어떠려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엄청 비좁다고 하던데. 방음도 잘 안되고.’


하지만 보증금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은 고시텔 외에 찾을 수 없었다. 작은 돈도 아까운 시기라 일단 올라가면 아르바이트도 구해야 한다.


***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남부터미널행 버스에 올라탔다. 잠시 후 버스가 출발하자 익숙했던 고향과 멀어지는 게 실감이 난다.


’안녕.’


한참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했던 도시의 모습을 눈에 새긴다. 마치 오랫동안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부턴 독해져야 한다. 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인지 속으로 자꾸 시골을 떠나는 주인공처럼 다짐을 한다. 지금의 선택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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