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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24. 2024

서울행 1

“여기가 꿈꾸던 서울이구나..”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처음 63 빌딩에 놀러 갔던 날. 큰 충격을 받았다. 생전 처음 보는 끝도 없이 높은 건물. 그리고 빌딩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과 아파트. 


’내가 사는 곳이 지방이 아니라 이곳이면 좋겠어.’


철없던 난 머릿속에 있던 말을 아빠에게 하고야 말았다.


”아빠. 우리 여기 살면 안 돼? 나 여기 살고 싶어.”

”어.. 채원아.”


차마 살 수 없다는 말을 꺼내기는 힘드셨나 보다. 그렇게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화제를 다른 걸로 바꿨으니까. 어린 나이였지만 느껴졌다. 


‘우리 가족이 서울에서 살 수는 없구나.’


여행 이후로도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는 서울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은 사람도 다르고 건물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를 거 같았다. 우리 집이 위치한 지방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언제까지 후지게 살아야 하는 걸까..’


순간 후지다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내 삶이 그리고 우리 가족이 후지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부모님께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이 생각은 훗날 커서도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난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반드시 인서울 대학교를 가겠어!’


목표는 인서울. 이유는 특별히 만들 필요도 없었다. 서울에서 살고 싶은 게 전부였으니까. 부모님은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딸이 분수에 맞게 좋은 선택을 했으면 했다. 그래도 공부하겠다는 내 모습을 보며 딱히 싫어하진 않으셨다. 


그러다 맞이한 3학년. 갑자기 나보다 공부를 못하던 아이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조사를 해보니 단과반으로 학원을 다닌다고 하는데 그 학원 강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한다. 어떻게든 학원이 가고 싶었다. 그날 집에 도착해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 할 말이 있는데.”

”무슨 얘기?”

”나.. 학원 한 번만 다니면 안 될까? 다른 거 바라지 않을게. 고3이잖아. 학원 하나만 지원 부탁할게요.”


엄마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우리 집 형편 알아. 근데 지금까지 혼자 잘해왔잖아. 한 번만 부탁해 엄마. 나 꼭 서울에 있는 대학교 합격하고 싶어.”

”채원아. 아빠랑 엄마는 네가 꼭 서울에 있는 대학교 가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 이건 내 꿈이잖아.”

”알아. 근데.. 학비도 그렇고 연고도 없는데 거기서 어떻게 지내려고.”


순간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다.


”엄마, 아빠는 돈이 전부지! 내가 원한다잖아! 내가! 학원 하나 보내달라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화가 나서 내뱉은 말 때문에 속이 상할 대로 상한 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때 무슨 이유에선가 엄마도 나를 껴안고 같이 울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미안하다고 하셨던 것도 같다.


결국 학원은 다니지 못했다. 친한 친구한테 이미 공부했던 자료라도 같이 보여줄 수 있냐고 부탁해 같이 볼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닥쳐온 수능.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난 할 수 있어. 꼭 서울로 가자.’


그때의 내게 서울은 꿈이자 목표였다. 서울만 갈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성공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2교시가 끝났다. 오늘 점심은 최대한 속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기름지지 않은 음식을 먹을 생각이다. 채소와 과일 위주의 샐러드. 하지만 너무 차가워서였을까? 점심 식사 이후부터 계속 배가 살살 아프다.


’집중해야 해..’


빨리 수능 시험이 끝났으면 좋겠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흐릿해지려는 정신을 잡아가며 겨우 마지막 교시까지 마무리 지었다. 잘 봤는지 못 봤는지 감이 오진 않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


생각했던 점수에 미치지는 못했다. 시험 보기 전까지만 해도 갈 수 있는 대학교와 과에 대한 선택 폭이 넓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받은 점수로는 갈 수 있는 인서울 대학교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인서울 학교 중 비인기과 정도만 겨우 갈 수 있을까 하는 정도였다.


결국 비인기 학과 중 하나를 선택해 지원을 했고 겨우 합격을 할 수 있었다. 학과에 대해 얘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부모님과는 다툼이 생겼다.


”채원아! 요즘 그런 학과 가면 취업이 안돼. 알겠지만 우리 형편에 학비도 다 지원하긴 힘들어."

”한 학기만 지원해 달라고.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

”휴.. 그냥 취업하면 안 되겠니?”

”엄마! 나한테 돈 쓰는 게 그렇게 아까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 너도 철이 들었으면 알 텐데. 이젠 좀 집에 도움이 되는 선택도 할 줄 알아야지!”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넓어진다. 도저히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다. 


내게 있어 수능과 대학 선택은 결국 가족과의 멀어짐이었다.


’내 인생이야. 엄마, 아빠 인생이 아니라고.’


그렇게 도망치듯 집 밖으로 나왔다. 입학금은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갓 성인이 되려 하는 내게 몇백 이상의 돈은 꿈을 사라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어려서부터 날 이뻐해 주셨던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무작정 할머니에게 갔다.


”채원아. 얼굴이 왜 그래..”

”할머니..”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한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밥부터 차려 주셨다. 오랜만에 맛보는 할머니의 음식. 정갈하고 그리웠던 그 맛 그대로였다.


”채원이가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참 잘 먹댔지. 많으니까 부족하면 말하고.”

”감사해요.”


잘 넘어가지 않는 밥을 집어 깨작깨작 먹고 있으니 할머니가 한소리 한다.


”밥이 맛이 없니?”

”그런 건 아니에요. 걱정 때문에 밥이 잘 안 먹혀요.”


그리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별안간 울음이 터졌다. 


”흐아앙.”


할머니 앞에서 무장해제된 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런 날 말없이 토닥이며 안아주신다.


”학교.. 때문이지?”


우는 얼굴을 들어 할머니를 쳐다봤다. 


‘어떻게 아신 거지?’


”네 엄마한테 들었다. 딸 학비도 지원해 주지 못하는 못난 부모라고. 그래서 미안한데 그래도 방법이 없다더구나. 채원아. 부모님 형편 알지? 가난한 게 죄는 아니다만.. 어쩌겠니.”


말을 마친 할머니는 잠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셨다. 손에는 통장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할미가 줄 수 있는 돈이 많지는 않구나. 그래도 우리 채원이 대학교 가면 좀 보태주고 싶어서 모았던 돈인데. 학비에 보태려무나.”

”할.. 할머니!”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할머니 품에서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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