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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21. 2024

그는 나를 모른다 7

음식이 준비되고 우리는 즐겁게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 샐러드 맛집이네요? 소스가 장난 아닌데요.”

“입맛엔 맞아요?”

“네 훌륭해요! 음식점 잘 골랐네요.”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목으로 꿀꺽 삼켰다. 생각보다 텁텁하고 강해 술맛이 세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조금만 마셨는데도 취기가 살짝 도는 듯하다.


“비앙카 님 술 잘 못하죠?”

“네?”

“얼굴이 벌써 빨개졌는데요?”

“아.. 아니에요. 근데 제가 알코올이 잘 맞는 체질은 아니라서. 조금만 마셔도 얼굴색부터 변하긴 해요.”

“귀엽네요.”

“에..?”


귀엽다고 내가? 이 말은 호감이 있다는 뜻 아니야? 이쯤 되니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자꾸 말리지만 마음이 어디 뜻대로 된단 말인가.


“오늘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어요? 궁금해요.”


그녀가 물어본다. 질문에 답을 잘해야 할 것만 같았다.


“체리콕 님을 꼭 만나고 싶었어요.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한데. 가장 컸던 건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거였어요. 게임하면서 누군가랑 이렇게 오래 대화를 나누고 지낸 적이 없었거든요. 어떨 때는 게임은 둘째치고 대화 나누고 싶어서 한참 기다리기도 했어요.”

“그건 저도 그랬어요.. 그리고 솔직히 걱정했어요. 제가 여자라고 하면 어떤 반응 보일지.”

“하하. 저도 마찬가지잖아요. 저도 어쨌든 반대 성별로 활동했으니까요. 그냥 퉁쳐요.”

“그럴까요? 풉. 참 이상한 사이네요. 그리고 이렇게도 만날 수 있다니. 심지어 만나서 나누는 대화도 즐거워요.”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를 보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미소를 계속 유지시켜 줄 수 있기를. 힘내라 나자신아. 걱정했던 것보다도 훨씬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앙카 님. 근데 하고 많은 게임 중에 왜 하필 티링이었어요?”


음.. 그러게. 무슨 이유가 있었던가? 잠시 생각을 해봤다.


“일단 제가 좋아하는 게임은 귀여운 캐릭터들이 우글 거리는 게임이거든요. 그리고 너무 화려해서 실사 같은 그래픽을 가진 게임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요즘 유행하는 게임들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뭐 딱 하나 꼬집어서 얘기하자면 아기자기함? 그런 게 좋아 보였던 거 같아요.”

“뿌듯하네요. 근데 저희 회사 게임 중에 티링 성적이 제일 안 좋아요. 휴.. 요즘 압박이 많이 들어와요. 아니 내가 뭐라는 거지. 아기자기해서 선택하신 거구나. 그렇죠?”

“네에. 근데 어떤 압박이?”

“아.. 일 얘기라 지루하실 텐데. 괜찮으시면 조금만? 얘기해 볼까요?”

“저 게임업계 이야기 궁금해요. 한때는 저도 게임 쪽으로 취업하고 싶었거든요.”

“오! 안 오시길 잘했어요.”


별거 아닌 얘기에도 우리 둘은 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게임 쪽 힘들어요. 뭐 잘 나가는 게임 쪽이면 모를까.”

“크런치 모드 같은 얘기는 들었었는데..”


[크런치 모드]라 함은 crunch time의 줄임말인데 사전적 의미는 결단이 필요한 타이밍, 중대한 위기 상황 등을 가리키는 단어. 보통 신작 출시를 앞두고 마스터 버전 출시 기한을 맞추기 위해 야근 및 주말 근무를 포함한 강도 높은 마무리 근무 체제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업계 은어이다. IT 업계 전반에 존재하는 악습이지만, 특히 유독 게임 업계 쪽이 크런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이상 나무위키의 설명이다. 


“근데 뭐 크런치 모드 안 한 지도 오래됐어요. 그것도 뭐 초기에나 좀 겪었죠. 지금은 티링 자체가 인기가 없어져 가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개발자도 자꾸 다른 팀에서 빼가요. 저희 팀장님이 티링에 애착이 크시거든요. 회사에서는 자꾸 섭종(서버종료)을 원하는 뉘앙스인데 그때마다 계속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미루셨어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 다른 티링 운영하는 사람들의 애착이 있는 편이에요.”


실제로 티링의 GM(게임마스터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게임 운영자를 지칭한다.)들은 유저들과 소통을 활발히 한다. 이벤트도 다른 게임과는 달리 GM과 함께하는 내용들이 존재했고 많지 않은 유저 사이에서도 이런 운영 방식에 대한 호평이 있었다.


“자꾸만 두려워요. 언제 게임 섭종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사실 요즘 제가 게임 접속 잘 못했잖아요? 그게 뭐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고 고민이 많아서 그랬어요. 차라리 다른 회사로 지금 경력 즈음해서 이직해야 할까? 아니야. 그냥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자.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달래느라 힘들었어요.”

“체리콕 님 이야기 들으니까 어느 회사나 쉬운 데가 없네요.. 티링이 유저수가 점점 줄긴 하죠? 아무래도 요즘 인기 있는 게임은 화려하거나 홍보부터 남다르긴 하더라고요. 저처럼 직접 찾아서 유입되는 유저가 많지도 않을 테니.”

“네 맞아요. 회사에서는 더 이상 홍보비로 많은 금액을 주려고 하질 않아요. 아니면 입소문이라도 타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요소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리고 일정 레벨 이상으로 캐릭터가 성장하고 나면 더 이상 즐길 콘텐츠가 없는 것도 문제죠. 저희도 그래서 맨날 똑같은 사냥터만 돌잖아요. 하하.”

“그러네요. 참 어렵네요. 티링이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전 너무 좋거든요. 지금 수준의 아기자기함 그리고 적당 수준에서 유저 간 대화도 많이 나눌 수 있고.”

“어려운 거 같아요. 으른들끼리의 사내 정치도 있고. 성적도 안 좋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 둘이 만난 거? 우울한 얘기는 그만하고 짠 할까요?”

“하하. 좋아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잔을 부딪친 후 각자 와인을 마셨다. 한 모금 더 마시자 취기는 더해졌고 그런 내 눈에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슬로우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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