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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20. 2024

그는 나를 모른다 6

“정말이에요? 티링 개발자라고요?”

“네에. 진짜예요. 신기하죠?”

“허.. 네.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설마. 내 뒷조사를 한 건 아니겠지? 개인정보는 함부로 볼 수 없는 거니까. 내가 뭐라고 뒷조사를 했겠어. 너무 앞서가진 말자.


“근데 뭐 티링 플레이하는 게 단순히 모니터링 차원에서 하는 건 아니에요. 진짜 고생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싸늘해서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이 게임이 재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뭐 저 혼자 그렇게 한다고 망해가는 게임이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체리콕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마이너 한 성향의 게임을 찾아다니는 성향이긴 했지만 분명 티링의 게임성 자체는 훌륭했다. 스토리도 좋고 적과 싸울 때 타격감도 나쁜 편이 아니었으니까.


“저도 공감해요. 제가 좀 유저수가 적을 거 같은 게임을 하는 성향이긴 한데. 그중에서도 티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게임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파티원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많아서 좋았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저희도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역시 비앙카 님이 알아봐 주네요 하하.”


걱정 반 의심 반으로 만난 우리는 생각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그녀도 나도 게임이라는 공통 주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함께 온라인상에서 보낸 시간도 한몫했다고 본다. 우리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있었고 늘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호감 비슷한 게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난 그랬으니까. 처음의 어색함도 많이 사라질 즈음 그녀가 말을 꺼냈다.


“비앙카 님. 좀 배고프지 않아요?”


저녁을 먹자는 신호인가!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먼저 밥 먹자는 얘기를 꺼내 준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식사 갈까요? 혹시 어떤 음식류를 좋아하세요? 밥? 면? 국물?”

“뭐예요. 설마 다 미리 준비해 놓은 거예요?”


그녀가 싫지많은 않은 듯 수줍게 웃었다.


“그럼 면 어때요?”

“미리 알아봐 놓았다기보다는.. 살짝? 아하핫. 제가 예전에 홍대에서 자취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조금 부심이 있어요. 사람들 잘 모르는 곳에 있는 파스타 집이 하나 있는데 가 보실래요?”

“오호. 좋아요. 저 파스타 진짜 좋아하는데!”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는 길에 그녀를 쳐다봤는데 역시 이뻤다. 앉아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일어서니 풍기는 느낌이 남다르다. 긴 생머리에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있는 모습 어디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정신 차려! 니가 마음에 들어 하면 뭐 할 건데?’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자꾸만 데이트하는 기분이 드는 것까지 없애진 못하겠다.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도 계속해서 그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여기에요. 좀 조그마하긴 한데 괜찮으세요?”

“와.. 이런 가게가 있네요. 신기하다. 간판부터 뭔가 이태리 스럽네요? 맛을 안 봐도 맛있을 거 같은 기분이에요.”

“제 입맛엔 정말 맛있는데 체리콕 님한테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저도 꽤 오랜만에 오는 거라 살짝 긴장돼요.”

“뭐 어때요. 그럼 식사는 제가 살게요.”

“아! 아니에요. 제가 데려왔으니까 제가 살게요. 차라리 다음에 커피 사주세요.”

“아까도 얻어먹었는데..”

“오늘은 그냥 제가 사도록 해주세요.”

“미안한데. 알겠어요. 그럼 너무 비싸지 않은 걸로 먹을게요.”

“여기 적당한 가격대의 음식만 팔아서 비싸진 않을 거예요.”


정말로 식사까지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러려는 것뿐이지 절대 흑심이 있어서가 아니다..라고까진 못하겠네. 인정한다. 그래 약간 잘 보이고 싶었다. 근데 내가 아닌 다른 누구였어도 체리콕 님을 실물로 봤다면 분명 나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이가 되기를 꼭 바라는 건 아니다. 단지 좋은 관계로 알고 지내기만 해도 충분하다.


“안녕하세요. 자리 안내해 드릴게요. 이쪽에 앉으시겠어요?”


능숙한 점원의 안내 후 자리에 착석했다. 메뉴를 펼치기 전에 점원이 설명을 한다.


“두 분이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저희 가게엔 와 보셨을까요?”

“감사합니다. 예전에 몇 번 와봤는데 조금 분위기가 바뀌었네요.”

“그러시군요. 잊지 않고 다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메뉴 고르기 힘드시면 저희가 커플메뉴도 제공하는 데 구성이 나쁘지 않아요. 한번 참고해 보셔도 좋으실 거 같아요. 그리고 SNS 리뷰 이벤트 하시면 하우스 와인 2잔을 제공해 드리는데 참여해 보시겠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점원이 말을 쏟아내 당혹스러웠다. 그때 체리콕 님이 나섰다.


“네! 리뷰 남길게요. 그리고 커플 메뉴로 할게요.”


그리고 나를 보고 한쪽 눈을 찡긋한다. 커플메뉴라. 커플메뉴. 커플.. 음식 메뉴 때문에도 이렇게 설렐 수 있구나.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되는데 자꾸 별거 아닌 것에도 의미가 생기려고 한다. 분명 그녀는 큰 뜻이 없었을 텐데 말이지.


“네 그럼 와인이랑 식전 빵 먼저 준비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점원이 메뉴를 챙겨 사라지자 살짝 안도감이 느껴졌다.


“제가 마음대로 메뉴 정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도 여기 오랜만에 와서 메뉴 보면서도 좀 헷갈리더라고요.”

“보통 커플 메뉴가 가성비가 좋길래 저도 모르게.. 그리고 비앙카 님이 조금 당황해하시는 거 같아서 말을 가로챘어요. 기분 상하신 거 아니죠?”


기분이 상할리가요!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을 뿐인데. 같이 저녁 먹을 수 있는 자리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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