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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16. 2024

그는 나를 모른다 5

비앙카라고 이름 지은 건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예전 포트리스 2 길드 중 [행성] 길드라는 곳에서 활동할 때 좀 더 특별한 이름이 없을까 찾던 중 발견한 이름이었고 그 뒤로 계속해서 사용하는 아이디가 된 것뿐이다.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체리콕 님이 정말 여자였다니! 얼마나 바보 같이 멈춰 서 있었을까? 그녀가 말을 건네기 전까지는 멈춰 있던 것 같았다.


“저기. 비앙카 님?”

“앗! 아? 네네. 아하하. 체리콕 님 맞으신가요?”

“네 제가 체리콕이에요. 왜 이렇게 한참 동안 멈춰 서 있으셨어요?”


뭐라고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차마 ‘당신이 너무 예뻐서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멋쩍게 웃으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다. 그렇지만 별로 뾰족한 방안이 떠오르진 않는다. 일단 말을 걸어야 해.


“체리콕 님? 혹시 식사하셨어요?”

“아직이요. 아직 5시 정도밖에 안 됐잖아요. 배고프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아참 언제 나오셨어요?”

“음.. 제가 홍대를 잘 몰라서. 한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어요.”

“아.. 전화라도 하시지 그랬어요.”

“민망해서요. 저도 이렇게 누구를 만나보는 건 처음이기도 하고.”


말끝을 얼버무리며 그녀가 부끄러워했다. 그런 모습조차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계속 서있기는 좀 그런데 그럼 카페라도 갈까요?”

“네 좋아요. 그리고 만나서 반가워요. 이렇게 진짜 만날 줄은 몰랐어요.”

“저도 진짜 신기해요. 제 게임 인생을 통틀어서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에요. 저 앞에 카페 있는데 가서 잠깐 얘기 나누고 괜찮으시면 저녁 먹을까요?”

“저녁.. 까지요?”


아. 혹시 잠깐 보는 걸 전부로 생각하고 나온 거려나. 그녀는 상당히 고민하는 듯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생긋 웃음을 띄운다.


“그럴까요?”


‘허락의 의미? 허락인가! 이렇게 이쁜 여자가 나랑 밥을 먹겠다고 허락하는 거야?’ 


“뭐 즐거운 일이라도 생기셨나 봐요? 갑자기 웃음이?”

“아.. 아니에요. 마침 저도 저녁 먹을 사람이 없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아 제가 친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아..”

“알았어요. 카페로 가요.”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로 들어갔는데 역시나 사람으로 꽉 차있었다. 그때 비어 있는 테이블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잽싸게 뛰어가 자리부터 잡았다.


“와.. 엄청 재빠르시네요?”

“아하하. 회사에서 점심 먹고 커피 마시러 갈 때마다 늘 하던 행동이라서요. 여기 앉아 계세요. 뭐 드실래요?”

“사주시려고요? 각자 계산해요 초면인데.”

“에이. 아니에요. 커피 비싸지도 않은데요 뭘. 그리고 일부러 잘 모르는 홍대까지 나오셨는데 제가 이 정도 대접은 해야죠. 말만 하세요.”

“아.. 부담스러운데.”


부담을 주면 안 된다. 절대로 안돼! 하지만 힘이 들어갈수록 상대방이 느끼는 부담은 점점 커질 것이다. 이론 상으로는 충분히 알겠는데 역시나 실전은 어렵다. 게다가 그녀가 너무 이뻐서 차마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겠다.


“네. 그러면 전 따뜻한 카페라테 한잔 부탁드려요. 다음에 제가 살게요.”

“네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방금. 다음이라고 했다? 분명 다음? 주문을 하러 가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다음이라는 말이 머리에 맴돈다. 어느샌가 손잡고 홍대를 걷고 있는 상상까지 하고 있었다.


‘XX 놈! 정신 차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여자라 설레는 건 이해한다. 그것도 너무 심하게 이쁘니까. 설마 내 눈에만 그런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아까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카페에서도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들이 있다. 분명 이쁜 게 분명해.


‘잠깐. 그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여기에 나온 걸까?’


주문을 하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비앙카 님은 친절하네요. 게임이랑 똑같은데요?”

“제가요? 좋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체리콕 님이 진짜 여자일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너무 신기해요.”

“아하하. 그렇죠? 누가 봐도 남자 캐릭터였으니까요. 그냥 전 편하게 게임하고 싶은데 여자 캐릭터로 하면 말 거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뿐이에요. 그리고 취향상 남성 캐릭터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비앙카 님은요?”


넷카마에 대한 설명을 하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나도 뭐 딱히 이상한 짓을 하려고 여캐로 게임하는 건 아니니까.


“저도 비슷해요. 절대 여캐로 이상한 거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요. 여캐로 게임할 때 좀 더 몰입감이 생기더라고요 무슨 게임이든. 그리고 코스튬부터 액세서리가 남자보다 다양해서 그런 부분도 맘에 들었고요. 그리고 믿기 힘드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랑 다르게 디자이너거든요. 그래서 더 관심이 많은 것도 있어요.”

“와.. 디자이너세요? 어떤 쪽인데요?”

“그냥. 앱 서비스 만드는 쪽 UI 디자인하고 있어요. 이게 디자인이라고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암튼 배경이나 은근 티가 안나는 부분 관련해서 작업 중이에요.”

“재밌네요. 사실 전 게임 개발자거든요.”

“개발자라고요??”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직업이었다. 그녀의 직업은 게임 개발자. 내가 하는 일과는 많이 다르지만 아무튼 IT라는 연결고리가 생겨서 신기하다. 어쩌면.. 어쩌면. 그녀와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거 아닐까?


“저희가 함께 하는 [티링] 서버 개발 담당하고 있어요. 제가 게임하는 건 일종의 테스팅이기도 한 셈이네요. 하하.”


‘우리가 함께 하는 게임의 개발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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