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훈의 꿈
수업이 끝나고 창훈이와 다시 만났다.
”뭐 먹으러 갈까?”
”배 많이 고파?”
”아니 적당히.”
”그러면 카페 가서 간단히 먹으면서 대화 먼저 하는 건 어때?”
”그래. 얘기가 더 급했나 보네.”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얘기에 집중하고 저녁은 이후에 먹기로 했다.
”사실 우리 집에 문제가 좀 있어.”
평소 늘 웃는 모습의 창훈이었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우리가 이런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던가?’
그간 가벼운 대화만 주로 했었는데 기분이 묘하다.
창훈이는 꿈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가족사를 먼저 얘기해 줬다. 창훈이 집에는 누나가 3명 있다고 한다. 창훈이는 부모님의 염원을 담아 태어난 소중한 막내아들이었다.
누나들과는 나이 터울이 꽤 있는 편이어서 첫째 누나하고는 12살 차이였고 둘째, 셋째 누나와는 각각 9살, 6살 차이가 났다. 창훈이의 이상한 꿈은 일곱 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 잠을 자다 꿈을 꿨다. 나룻배가 멀리 보이고 가족 전부가 나루터에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안개가 어슴푸레 끼어 있고 물살은 잔잔했다. 물가에 배가 한 척 떠 있었는데 누군가 배 위에 서 있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물을 살펴봤는데 불투명해서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다.
안개가 살짝 걷히고 배위에 있는 모습이 드러났는데어딘가 낯이 익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아는 사람은 아니다. 별생각 없이 쳐다보다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에 핏기도 없어 보이고 몸이 너무 말라있다. 뼈에 살가죽이 걸쳐 있는 느낌에 가까웠다. 얼굴 표정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무표정에 가까웠는데 그렇다고 표정이 없어 보이지도 않았다. 문득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첫째 누나를 보고 있는 거 같았다.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하고 누구도 배 쪽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배가 있다는 걸 모르는 거 같기도 했다. 배에 있는 사람이 천천히 손을 들더니 손짓을 하기 시작한다. 빠르진 않지만 천천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건너오라고 하는 손짓으로 보였다.
첫째 누나는 나루터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손짓에 반응하듯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배가 있는 강 쪽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누나! 가면 안 돼!’
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그의 손짓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누나의 걸음 속도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른 가족들은 누나의 걸어가는 모습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누나의 몸이 절반 정도 강물에 잠겼다. 배와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나의 다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주변은 평화로웠다. 다른 가족들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서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와 누나와 배에 있는 존재만 서로를 의식할 뿐이다. 강을 건너던 누나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도 너무 슬펐다. 어떻게든 누나를 멈추게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배를 쳐다봤는데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어떻게 보면 웃는다기 보다 느낌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누나는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나를 향해 돌아서 있었고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이제는 물이 누나의 입술 근처까지 닿아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누나가 죽을지도 몰라.’
말릴 틈도 없이 울고 있던 누나는 결국 머리까지 물에 잠겨버렸다. 마지막 누나의 얼굴은 나를 원망하는 모습이었다. 슬픔보다 무서움이 더 강하게 전달됐다. 배에 있는 존재는 손짓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안돼 누나.”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큰 누나가 걱정이 돼서 누나 방으로 이동하려고 일어났다. 이른 시간이었는지 약간의 어두운 느낌이 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문밖에 매달린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 놀라 뒤로 넘어졌다. 큰 누나는 그렇게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다. 창훈이가 일곱 살 때 생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