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호와 창훈
한참을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떠나온 곳을 뒤 돌아보니 희미하게 보이는 걸로 봐선 한참 걸어왔나 보다.
”얼마나 더 가야 도착할까?”
몸은 힘들지만 감각은 점점 예민해진다. 그냥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무렵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조그마한 집인 줄 알았는데 5층 정도 높이의 건물이다.
’생각보다 크네.’
빛은 꼭대기 층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건물은 짓다 말았는지 콘크리트 상태로 되어 있다. 주변은 어둡고 꼭대기 층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이 어딘가 잘 어울리진 않는다.
예민해진 감각은 ‘올라가지 마!’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사는 해봐야 직성이 풀릴 거 같다. 건물 앞에 도착했다. 발걸음을 옮겨 올라가야 하는데 두려움이 몸을 지배한다.
’정신 차리자. 일단 가보는 거야. 확인해 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자.’
가지고 온 랜턴을 켰다. 빛이 있으니 그래도 심심한 위로가 된다. 건물은 짓다가 말았는지 투박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고 곳곳에 포대자루가 쌓여 있는 모습이다. 건물에 사연이 있는 것 같아 호기심이 동했지만 참기로 했다.
지금은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마침내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올라와서 그런가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불빛이 보인다. 불빛이 비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의자와 책상이 있고 많은 양의 양초가 세워져 있다. 의자에는 누군가 있는 거 같은데 아직 잘 보이진 않는다.
”저기요. 거기서 뭐 하세요?”
용기를 내서 크게 불러봤다. 누군가 있는 건 확실한데 움직임도 목소리도 전혀 들리질 않는다.
'조금 더 가까이 가봐야지.'
머리가 긴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다. 뒷모습이라 성별까진 모르겠다.
”저기. 여기서 뭐 하세요 저 좀..”
말을 다 끝마치기 전에 휙 돌아서는데 너무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눈이 번쩍 떠졌다. 온몸이 땀에 절어 있다.
’꿈이었구나.’
요즘 들어 악몽을 꾸는 편이다. 이상하게 꿈이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비슷한 꿈을 며칠 전에도 꿨던 거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늘 꿈은 생각보다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일단 까먹기 전에 메모라도 해놔야지.'
시간을 보니 8시 30분이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다행히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라 조금 더 여유를 부려도 괜찮을 거 같다.
오늘은 정말 하기 싫은 헬라어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언어적인 재능은 없는 편인 거 같다.
”승호야. 같이 가자.”
친구 창훈이다. 같이 수업을 듣다가 친해졌는데 좋은 녀석이다.
”승호 너 다크서클이 왜 이렇게 진해졌냐?”
”너도 만만치 않은데. 이상한 짓 좀 그만해라.”
”무슨 소리야. 신성한 신학대 캠퍼스에서. 너야말로 그러지 마라.”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요즘 잠만 자면 악몽 꿔서 미치겠어.”
”그래? 나도 요즘 악몽 때문에 죽겠는데. 무슨 꿈이길래?”
”자세히 얘기해 주고 싶은데 일어나기만 하면 금방 까먹어서 나도 좀 갑갑해.”
”으이그. 근데 악몽인 거 같긴 해?”
”응. 확실히 악몽이야. 일어나면 땀으로 몸이 젖어 있고 기분이 항상 좋지 않아. 너무 갑갑해서 요즘은 일어나자마자 기록하려고 메모장을 머리 위에 놓고 자. 꿈 내용이 좀 더 확실해지면 그때 말해줄게.”
”힘들겠네. 그래 기억나면 꼭 얘기해 줘. 나도 요즘 꿈 때문에 어디 하소연도 못하겠고 마음고생하던 참인데. 내 얘기 좀 들어줄래?”
”아 미안. 내 얘기만 하느라 네가 꾼다는 악몽 얘기는 깜빡했네. 그래 무슨 내용인데?”
”얘기하자면 좀 길어서. 수업 끝나고 저녁 먹으면서 얘기 나눌까?”
”뜸 들이긴. 알았어 이따 얘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