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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r 30. 2024

노력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스물여섯 걸음

"자 이번 중간고사는 알려준 범위에서만 낼 거다!"

"아아아.. 좀 더 알려주세요.."

"이 정도면 다 알려준 거지 이 녀석들아. 쉽게 냈어."


거짓말이었다. 쉽다고 하면 항상 어렵고 교과서에서만 낸다더니 범위를 벗어나서 나온 문제도 껴 있고. 그럴 때면 잠시 동안이지만 선생님의 머릿속에 침투하고 싶었다.


'저 사람의 뇌에 있는 정보 중에 시험 문제와 관련된 것만 알고 싶어.'


매번 이런 식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며 그럴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당연히 내가 꿈꾸던 치트키가 발동한 상황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노력하는 건 싫지만 쉽게 성과는 또 얻고 싶은 마음이라니.


어쩌다 친한 친구가 좋은 성과를 내면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저 정도야. 노력만 하면 가능한 수준 아니야?'


내가 하는 노력은 대단하고 힘든 것, 타인의 노력은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기라도 할 줄 알았나 보다.




1.

"야 XX이 얘기 들었어?"
"뭔데?"
"걔 이번에 XX 대학교 합격했다던데?"
"진짜? 흠.. 이번에 물수능이어서 덕 좀 봤나 보네."
"그렇지? ㅋㅋ"


2.

"야 XX이 XX에 입사했대?!"
"장난 아니네. 근데 거기 뽑는 인원 늘리지 않았어?"
"그렇다고는 하던데. 그래도 대단하긴 하지."
"우리도 지원했으면 충분히 가능성 있었어. 뭘."




남을 깎아내릴수록 가벼워지긴커녕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내가 보일 뿐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시샘하고 질투했단 말인가. 그가 내게 잘못한 거라곤 친구라는 관계로 엮여 있다는 거 하나.


'그래. 친구를 잘못 둬서 그래.'


점점 못나지고 있었다. 커지는 열등감. 노력만 하면 나도 충분히 저 위치에 있었을 거라는 허세까지 장착했다.


대충 하는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단지 혼자 만만하게 생각하던, 비슷하다고 여겼던, 친구라고 묶여 있던 사람의 잘된 모습이 부러웠던 거다.


못난 생각은 하다 보면 점점 더 못나지는데 문제가 있다. 처음엔 작게 시작했던 비교였는데 점점 비교의 크기가 커져가면서 상대방이 하는 모든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의 삶이 초라해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더 나아져서 비슷해질 생각은 하지 않고 반대로 내가 있는 위치로 상대방을 끌어오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결국 노력은 귀찮고 피곤하고 힘드니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아집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이십 대 중반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한 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그 사이 친구 중에 자리 잡은 애들이 조금씩 생겼다. 하나 둘 자리 잡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노력하며 열심히 사는 동안 제자리걸음만 반복했으니.. 당연하게도 바뀐 건 없었다. 오히려 그나마 있던 빛마저 사라져 버린 지 오래.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현실은 더 이상 어리지 않았고 노력의 양은 변하지 않았으며 가지고 싶은 건 많았다.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불공평하다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세상 탓을 하는 내 모습에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아버지의 모습. 어느새 나도 똑같아지고 있었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절대로 난 아빠처럼은 안 살 거야!'라고 다짐하고 살았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영락없는 판박이였다. 부전자전. 결국 나 또한 비슷한 삶을 살게 돼버리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결코 아버지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불공평하다며 탓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공평한 걸 찾는 게 오히려 힘든 게 아닐까?


'나를 위한다면 자위를 할 게 아니라 채찍질을 했어야 했어.'


뒤늦게 찾아온 생각과 고민. 현생을 잘 살아내려면 극복해 내야 한다는 생각. 처음으로 위기감이 노력의 원동력으로 작동했다. 비로소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갈 초석이 생겨난 순간이었다.


[이제 꿈에서 깨세요 용사여.]


달콤했던 나만의 세계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초라한 본모습을 받아들이고 개선할 시간이 되었다.

이번엔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피하지 않고 왜곡되지 않은 내 모습을 마주하기로 했으니까.


'생각보다 더 심하게 망가져 있더라도 놀라지 말자. 차근차근하면 돼.'


지하실 같은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내 모습을 힘겹게 꺼냈다. 생각보다 상태는 더 좋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받아들였고 부족한 점을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


"야! 뭐 하냐? 답지 않게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술 마시게 나와! 헛소리하지 말고. 아 빨리!"


사이가 멀어질까 두려워서 만나던 사이도 정리하고 조금씩 조금씩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변화는 생각처럼 확 느껴지진 않았다.


잠시 며칠 동안 혹은 몇 달 동안 노력한다 해서 티가 날 정도로 바뀌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건 내 삶이고 나만이 바꿀 수 있는 일.


노력은 가랑비에 젖어가는 옷처럼 서서히 사람을 바꿔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거 같았지만 꾸준히 노력했다. 결국 여러면에서 과거와는 많은 차이가 생겼다.


그래서 노력의 힘을 믿는다. 이십 대 중반의 내가 평범하게 살기를 꿈꾸며 노력했던 것처럼, 40대의 난 직업으로서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소망한다 지금의 부족함을 노력이 메꿔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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